[금백종주] 완주기를 쓰고 싶었으나…도전기를 쓰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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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진산 등줄기 걷는 산행
예상보다 긴 거리 체력은 필수

금정산 장군평전에 피어나기 시작한 억새. 금정산 장군평전에 피어나기 시작한 억새.

금정산 동문 가는 길 비안개에 싸인 소나무숲. 금정산 동문 가는 길 비안개에 싸인 소나무숲.

부산에는 훌륭한 산행 코스가 많다. 특히 국립공원 지정을 염원하는 금정산은 지리산 못지않은 수많은 골짜기와 등산로가 있어 시민들의 '녹색 지대'가 되고 있다. 금정산은 낙동정맥이 다대포에서 마무리되기 전 우뚝 솟은 진산이다. 이 낙동정맥의 일부 구간과 금정산 북릉이라 불리는 양산 계석마을~갑오봉 구간을 넣어 금백종주라 부르는 코스가 있다.

금백종주는 주로 양산 계석마을에서 시작해 부산 사상구 주례동 계림초등학교까지 이어지는 도상거리 약 25km에 이르는 구간이다. 걷는 시간만 10시간 이상 걸리는 꽤 긴 코스를 하루에 종주하는 일종의 챌린지가 유행한 지 좀 오래됐다.


장군평전에서 바라본 금정산 고당봉. 장군평전에서 바라본 금정산 고당봉.

백두대간 훈련 코스로

금백종주는 등산을 즐기는 사람에게는 충분히 하루에 완주할 수 있는 코스지만, 초급자나 긴 코스에 익숙하지 않은 이에게는 완주하기 힘든 코스이다. 도상거리가 25km가 훌쩍 넘는 데다 걷는 시간만 10시간이 넘게 걸리기 때문이다. 평지를 10시간 걷는 것도 힘든데 산길을 이렇게 오래 걷는 것은 쉽지 않다.

그래서 험준한 백두대간 코스를 가기 전에 훈련용으로 금백종주를 하는 사람도 있다. 이번에 금백종주에 도전한 것도 설악산 공룡능선이 포함된 백두대간 구간을 가기 전에 훈련용으로 제안받았다.

금백종주는 계석마을에서 시작해 장군봉과 금정산 고당봉, 만덕고개, 쇠미산을 거쳐 백양산을 지나는 코스다. 결론적으로 이번 도전은 실패했다. 가장 큰 이유는 더위와 또 연이은 폭우였지만, 실상은 저질 체력과 의지박약이었다.

그래서 금백종주 도전기라고 쓰고, 정확하게는 금백종주 금정산 구간이라고 이름 붙인다. 이렇게 코스를 쪼개는 것이 무슨 의미랴 만은.

계석마을에서 출발해 산불 체험 등산로 구간~질메 쉼터~다방봉(536m)~736봉~장군봉(734.5m)~갑오봉~고당봉(801.5m)~원효봉(687m)~동문까지 약 12km를 오전 7시 30분에 시작해 오후 3시가 조금 넘어 마쳤다. 7시간 남짓 걸린 여유로운(?) 산행이다.


계석마을에서 시작하는 금백종주 초입. 계석마을에서 시작하는 금백종주 초입.

물의 기운으로 시작하다

온전히 두 끼 식량을 챙겼다. 군데군데 물을 보충할 수 있는 지점이 있지만, 더위를 예상해 얼음 1리터를 배낭에 재워 넣었다. 무게감이 느껴졌다. 도시철도 범어사역에서 양산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렸다. 배차 간격이 꽤 길었다. 버스 배차 안내 표시만 보고 인근 카페에서 미숫가루 음료를 먹느라 여유를 부렸더니만, 어느새 버스는 지나가 버렸다. 원망할 수도 없는 노릇. 다음 버스는 16분 후 도착 예정인데, 도무지 시간이 줄지 않아 지인이 택시를 불렀다. 호출한 택시는 금세 도착한다.

다방삼거리에서 계석마을로 진입해 산행을 시작한다. 길가에 밤송이가 널브러져 있다. 자세히 보니 모두 까서 알맹이는 챙겨간 뒤다. 밤이라니, 벌써 가을이 왔다는 증거다.

양산시에서 등산로를 정비해 산길이 완만하다. 일부 구간은 야자매트도 깔아놓았다. 운무가 깔린 산길을 걷다가 깜짝 놀랐다. 누군가 벗어 놓은 고무신 두 짝이 가지런히 놓여 있다. 섬뜩한 기분이 들었지만, 걱정할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요즘 열풍인 맨발로 걷는 사람이 벗어놓은 신발이었다.

이른 시간, 전날 폭우가 쏟아진 뒤인데도 아침 운동을 하기 위해 산을 찾는 사람이 많았다. 다들 물의 기운으로 흠뻑 젖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산불 피해지 안내판. 산불 피해지 안내판.

산불 체험 등산로 코스

한 아름이 크기 소나무들의 행색이 이상했다. 푸름을 자랑해도 아무도 눈총 주지 못할 상황인데, 숲은 검은 기운이 완연했다. 의문은 이내 풀렸다. 몇 해 전 발생한 산불로 홀라당 타 버린 숲이었다. 긍정적인 것은 불에 탄 나무를 바리깡으로 밀듯이 베어낸 강원도 지역과 달리 그대로 두었다는 것. 숲의 자연 회복을 믿는 산림 행정이 고마웠다. 이제 나무들은 오랜 세월을 지나며 차례로 쓰러질 것이고 햇빛을 충분히 받은 풀들은 무성했다가 결국엔 숲의 천이 과정에 동참할 것이다.

산불 구간 일부에 등산로를 내 '산불 체험 등산로'로 만든 발상도 좋다는 생각이 들었다. 숱 검댕이 숲을 지나며 불조심을 안 할 사람은 없을 테니까.

마을 뒷산인지라 향토적인 유적이 많았다. 소꼴을 하는 목동들이 소에 올라타기 위해 이용한 디딤돌 바위도 있었고, 나무꾼이 지게를 두고 쉰 질메 쉼터도 있다. 질메쉼터에서 또 가파른 산행이 시작된다.


죽은 나무 등걸에 핀 버섯. 죽은 나무 등걸에 핀 버섯.

이맘때 산길은 버선이 지천

산꾼들이 버섯을 대하는 태도는 이래야 한다. 일반적으로 산꾼은 버섯을 탐하면 안 된다. 부산등산아카데미 황계복 강사는 산행하며 버섯이나 약초를 보고 걸음을 멈추는 산꾼에게 "참 가지가지 한다"며 핀잔을 주는 선배가 있었다고 말했다. 산꾼은 오롯이 산을 타야 한다는 말이다. 버섯과 약초는 약초꾼에게,

비가 내리고, 기온이 다소 내려가면서 인근 야산에는 버섯이 하루가 다르게 피어난다. 버섯을 꽃으로 비유할 순 없겠지만, 천상의 버섯 화원이 이맘때 주변 산이다.

노랗고, 기괴하고, 먹음직스럽고, 빨갛고, 희고, 탐스런 버섯이 등산로 곳곳에 불쑥불쑥 솟아있다. 이름을 알 수 없고, 식용을 가늠할 수 없어 무감한 듯 지나친다. 그러나 독성의 금기를 뛰어넘는 유혹이 있긴 하다.

장군봉은 지척이라는데 시간이 꽤 걸린다. 가야 할 길이 천 리라(이때만 해도 완주를 꿈꿨다) 가급적 우회로를 이용했는데 특히 736봉을 앞둔 우회로에서 낮은 길로만 가다가 그 부끄러운 '알바'(길을 잘못 들어 되돌아 오는 일)를 하고 말았다.

미니 산행대의 대장 자리를 후임에게 이양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장군평전 야생화. 장군평전 야생화.

쉿 장군평전에 가을이 왔어요

쉽게 우회할 수 있어 장군봉에는 이번에도 오르지 않았다. 장군봉을 우회하자마자 넓은 초지가 펼쳐졌다. 장군평전이라 이름 붙은 곳이다. 억새가 피기 시작했다. 벼 이삭처럼 고개를 숙인 억새꽃이 지천이다. 이제 날씨가 조금 더 선선해지면 황금빛 억새가 가을바람에 춤을 추리라. 갑오봉에서 아침을 먹는다. 오락가락하던 빗방울은 멈췄다. 더위도 시원한 바람에 정체를 숨겼다. 얼음 녹은 물을 연신 들이켜 몸을 식힌다.

갑오봉은 우회를 해도 되지만, 넓은 평전이 좋아 빠뜨릴 수 없는 구간이다. 내리막이 시작되면서 또 햇빛을 피한다. 습지가 시작되더니 물소리가 장쾌하다. 샘이다.

샘 인근에 미리 온 등산객 한 분이 짐을 풀고 여유롭게 쉬고 있다. 콸콸 쏟아지는 샘물을 받아 목을 축인다. 안부에 내려선다. 금정산 고당봉을 북쪽에서 바라보는 조망지다. 고당봉의 바위군이 빼어나다. 사진 한 장을 남겨 기록한다.

고당봉으로 오르는 길에 '범어사기'라고 각인된 바위가 있다. 절 부지 경계인 모양이다. 잣나무 아래 까먹은 잣 껍데기가 널브러져 있다. 청설모나 다람쥐의 아침 식사 자리다.


금정산 북문. 금정산 북문.

속세의 유혹이 이어진다

고당봉은 오르는 사람이 많았다. 고당봉에서 북문으로 내려서는 등산로는 북적거렸다. 1km 정도의 내리막길인데 피로감이 몰렸다. 북문에서 범어사로 탈출하는 코스가 있다. 이 길을 모르는 사람이 없지만, 아무도 말하지 않았다.

북문 인근 금정산탐방지원센터에서 점심을 먹는다. 여럿이 앉을 수 있는 의자와 금샘 약수가 있어 쉬어가기 좋다. 아예 자리를 펴고 가져온 음식을 뷔페처럼 펼쳐 드시는 분들도 있다. 꿀맛이리라. 북문 하산길 유혹을 뒤로 하고 산성길을 따라간다. 커다란 돌로 만든 등산로가 익숙하지는 않다. 망루를 지난다. 산성 아래 금정구와 멀리 부산 해운대까지 조망이 펼쳐진다. 김유신 솔바위 안내판이 있다. 김유신이 소변을 눈 자리에 심은 소나무라니. 참 특이한 전설이다.

4망루를 지나니 동문으로 가는 내리막길이 펼쳐진다. 그런데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더니 비가 시작된다. 처음엔 가늘다가 점점 굵어진다. 소나무숲이 비안개에 젖어 들었다. 지나온 길을 가늠해 보니 12km가 넘었다. 시간도 재 보았다. 7시간이 넘었다. 그래 이만하면 됐다.

동문에 도착했다. 비를 피하는 두 사람이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영화의 한 장면이다. 길을 물었다. 내려가면 버스정류장이 있다고 했다. 도시철도 온천장역에서 산성마을을 오가는 203번 버스는 15분 간격으로 다닌다. 꼬불꼬불 산성길을 흔들리는 버스에 몸을 싣고 하산한다. 남은 구간은 다음에 하겠다고 다짐한다.


부산일보 | 안녕하세요! 산&길입니다🌿 오늘은 영상은 '부산의 진산 금정산, 금백종주'편입니다! 양산 계석마을을 출발해 장군평전 억새와 소나무밭을 거쳐 펼쳐지는 금정산 정상의 모습🌳 비가 와서 힘들기도 했지만 운치 하나는 끝내주는 금백종주 금정산 구간 우중 산행😮 함께 감상하시죠☺️ ---------------------------------------------------------------------------- 📌유튜브 펀부산 구독하시면📌 🔥재미있고 특별한 영상이 함께합니다🔥 ---------------------------------------------------------------------------- 🔥 부산일보 홈페이지 🔥 http://www.busan.com/ ---------------------------------------------------------------------------- ✏️ 부산일보 "[금백종주] 완주기를 쓰고 싶었으나…도전기를 쓰다" 기사 바로 가기 ✏️ https://www.busan.com/view/busan/view.php?code=2023090418055082403 ---------------------------------------------------------------------------- #백두대간 #금정산 #장군봉 #장군평전 #백두대간산행 #금백종주 #억새

계석마을 대정그린 아파트 옆으로 난 금백종주 초입 등산로. 계석마을 대정그린 아파트 옆으로 난 금백종주 초입 등산로.

소를 탄 바위 안내문. 소를 탄 바위 안내문.


맨발로 걷는 이도 많은 호젓한 산길. 맨발로 걷는 이도 많은 호젓한 산길.

질메쉼터에서 금정산 북릉으로 오르는 경사로가 시작된다. 질메쉼터에서 금정산 북릉으로 오르는 경사로가 시작된다.

군데군데 빼어난 조망지가 있다. 군데군데 빼어난 조망지가 있다.

누군가 세워 놓은 정상석. 작은 크기라 앙증맞다. 누군가 세워 놓은 정상석. 작은 크기라 앙증맞다.


이끼옷을 두툼하게 장만한 나무. 이끼옷을 두툼하게 장만한 나무.

이정표가 자주 있어 거리를 가늠하기 좋다. 이정표가 자주 있어 거리를 가늠하기 좋다.

개발 중인 사송신도시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터. 개발 중인 사송신도시가 한눈에 보이는 전망터.


멀리 금정산 고당봉 정상이 보인다. 멀리 금정산 고당봉 정상이 보인다.

장군평전 초입의 이정표. 우회할 수도 있다. 장군평전 초입의 이정표. 우회할 수도 있다.

갑오봉 정상석. 갑오봉 정상석.

갑오봉에서 내려서면 만나는 샘터. 콸콸 쏟아지고 있다. 갑오봉에서 내려서면 만나는 샘터. 콸콸 쏟아지고 있다.

크기가 어마어마한 버섯. 이맘때만 만날 수 있는 자연이다. 크기가 어마어마한 버섯. 이맘때만 만날 수 있는 자연이다.

호포마을에서 올라오는 이정표를 만났다. 호포마을에서 올라오는 이정표를 만났다.

범어사기 표지석. 범어사기 표지석.

고당봉 정상석. 고당봉 정상석.

북문에서 의상봉으로 오르는 산성길. 북문에서 의상봉으로 오르는 산성길.

제4망루에 도착했다. 제4망루에 도착했다.

산성길 이정표. 산성길 이정표.

우중에 도착한 금정산 동문. 여기서 아쉽지만 산행을 마무리한다. 우중에 도착한 금정산 동문. 여기서 아쉽지만 산행을 마무리한다.




이재희 기자 jaehe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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