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밀해진 북러에 다급해진 미국, 느긋해진 중국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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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북, 러에 무기 제공 시 대가 치를 것”
정상회담 정보 공개 이어 경고 메시지
중국선 "미 동북아 개입이 원인" 주장
"북러 군사협력 강화 모두에 이익" 분석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5일(현지 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브리핑에서 “이전 정부는 정상급 외교에만 관여하면 북한의 미사일과 핵 프로그램을 멈출 수 있다고 믿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접근법을 비판했다. AP연합뉴스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이 5일(현지 시간) 워싱턴DC 백악관 브리핑에서 “이전 정부는 정상급 외교에만 관여하면 북한의 미사일과 핵 프로그램을 멈출 수 있다고 믿었다”며 트럼프 전 대통령의 접근법을 비판했다. AP연합뉴스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상회담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이 경계 수위를 끌어올리고 있다. 반면 중국은 북러의 협력은 양국 모두에게 이익이 될 것이라며 정상회담 실현 가능성에 힘을 싣고 있다.

미 블룸버그 통신은 5일(현지 시간) 익명의 소식통을 인용해 김 위원장이 러시아 극동 지역을 방문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오는 10∼13일 열리는 동방경제포럼(EEF) 기간 푸틴 대통령을 만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 같은 보도는 전날인 4일부터 뉴욕타임스(NYT)를 시작으로 미국에서 급부상한 북러 정상회담 가능성을 재차 타전한 것이다.

블룸버그는 “푸틴과 김정은 사이에 싹트는 ‘브로맨스’(남자들의 우정)는 세계에 위험한 일”이라고 진단하고 국경을 맞댄 북한과 러시아가 경제·군사적 이해 관계에 따라 협력을 모색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미국에서는 북러 밀착을 견제하는 분위기가 역력하다.

제이크 설리번 백악관 미국 국가안보보좌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우리는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공급하지 않는다는) 공개적 약속을 준수하고 우크라이나 사람들을 죽이는 데 쓰일 무기를 러시아에 공급하지 말 것을 북한에 계속 요구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를 지원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대가를 치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베단트 파텔 국무부 부대변인 역시 정례브리핑에서 “우리는 어떤 국가든 러시아의 불법적인 우크라이나 전쟁을 지원하는 조치를 취할 경우 있을 수 있는 후과에 대해 매우 분명하게 밝혀 왔다”면서 “우리는 역내 동맹국 및 파트너들과 적절하게 조율하고 필요시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는 러시아의 부당하고 불법적인 우크라이나 침략 전쟁을 지원하는 단체에 대해 주저하지 않고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미국이 전날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 계획에 관한 정보를 이례적으로 공개한 데 이어 북한을 겨냥한 직접적인 경고 메시지를 날린 셈이다. 미국이 북러 간 정상회담과 무기 거래가 가져올 파장을 심각하게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러시아 입장에서는 우크라이나전에 투입할 무기를 확보하는 데 북한의 도움이 절실하다. 북한은 소련제 탄약과 무기를 많이 보유하고 있고 여기에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전을 치르는 데 필요한 122mm 포탄과 152mm 포탄, 122mm 로켓이 포함된다.

특히 러시아는 우크라이나에 배치한 소련제 T-54 전차와 T-62 전차의 부품도 북한으로부터 구할 수 있다고 무기 전문가 주스트 올리만스가 분석했다. 북한의 무기 지원이 실질적으로 러시아군 전력을 강화하면서 전세에 영향을 줄 수 있는 것이다. 반면 북한이 러시아로부터 원하는 것은 현금, 물자, 기술이라고 블룸버그는 짚었다.

김 위원장과 푸틴 대통령의 정상회담은 북한의 국경 재개방, 우크라이나 전황 등과 맞물려 주목된다.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이날 “은둔 국가 북한이 코로나 사태 이후 천천히 문을 다시 열었다”고 진단했다.

2020년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국경을 봉쇄했던 북한은 지난달 중국과 육로를 통한 인적 교류를 재개하고 고려항공 여객기의 중국·러시아 운항도 다시 시작했다. WSJ은 전문가들을 인용해 북한이 3년 7개월 만에 국경을 다시 연 것은 악화한 경제 상황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반면 중국은 양국의 밀착 관계를 지지하고 나선 분위기다.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 계열 관영 글로벌타임스는 6일 김 위원장의 러시아 방문 가능성을 제기한 NYT 보도를 자세히 소개하며 미국의 동북아 개입이 이 지역을 적대적이고 불안정하게 만들었다는 게 중국 전문가들의 주장이라고 전했다.

추이헝 화둥사범대 러시아연구센터 연구원은 김 위원장의 마지막 러시아 방문이 2019년이라는 점에 주목하며 “당시 러시아는 일본·한국·유럽·미국과 비교적 조화로운 관계를 유지했지만, 2023년 동북아 상황은 근본적인 변화를 겪었고 러시아와 일본·한국 관계는 악화했다”고 말했다. 이어 “이러한 맥락에서 러시아와 북한은 외부 위협에 공동으로 대처하기 위해 안보 협력을 강화했다”고 주장했다. 북러 협력이 주로 군사 안보 분야가 될 것이라며 동북아의 블록화 추세를 고려하면 북러 협력이 양국 모두에게 유익하다는 주장도 했다.

리하이둥 중국외교학원 교수는 “북한과 러시아의 협력 강화는 미국이 강요한 것으로, 잦은 한미 군사훈련이 동북아에 균열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며 현 상황을 미국 탓으로 돌렸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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