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리랑카 내전 비극 다룬 ‘저승 누아르’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말리의 일곱 개의 달/셰한 카루나틸라카

<말리의 일곱 개의 달>. 인플루엔셜 제공 <말리의 일곱 개의 달>. 인플루엔셜 제공

<말리의 일곱 개의 달>은 2022년 부커상 수상작으로 스리랑카 작가의 장편소설이다.

피가 강물처럼 흐른 스리랑카의 내전의 비극을 다룬 소설인데 재치 있고, 창의적이다. “삶과 죽음, 육체와 정신, 동서양의 경계를 허무는 형이상학적 저승 누아르, 독자를 세계의 어두운 심장으로 데려가는 진지한 철학적 유희다”라는 심사평을 받았던 작품이다. 옮긴 이는 “역사에 대한 깊은 분노와 아픔에서 출발한 이야기이지만 희생된 사람들을 기억하고 넋을 위로하며 인간 존재의 근원적 문제를 끝까지 잊지 않는 결말의 소설”이라고 썼다.

‘저승 누아르’, 소설 형식이 아주 독특하다. ‘마르케스의 <백년 동안의 고독>처럼 기존의 스토리텔링 방식을 부수고, 낯설고 광활하며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인간성을 드러낸다’.

스리랑카는 불교신자인 싱할라족과 힌두계인 타밀족 갈등이 뿌리 깊다. 16세기 이래 포르투갈·네덜란드·영국의 식민지를 거치면서 그 갈등이 더욱 악화돼 1983~2009년 25년 동안 스리랑카 내전이 벌어졌다.

이 소설은 실제 사건을 모티브 삼았다. 1990년 스리랑카 저널리스트이자 인권운동가였던 리처드 드 소이사가 무장 괴한에게 납치된 다음날 머리에 총을 맞은 시체로 발견됐던 것이다. 납치범 두 명은 경찰 간부였는데 15년간 지루하게 이어진 재판은 결국 증거불충분 운운하며 무죄 판결로 흐지부지됐다. 이 사건에 등장하는 사람들의 실제 이름이 이 소설에 나온다.

스리랑카에 1983년 ‘검은 7월’ 폭동이 있었다. 타밀족 무장단체가 스리랑카 북부에서 정부군을 급습해 13명의 군인이 죽은 사건이 있었다. 13명의 장례식이 열리던 날, 인파가 폭도로 돌변해 타밀족 시민들을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고 살해하기 시작했는데 이 폭동에서 무려 5600여 명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로 인해 25년간 스리랑카 내전이 이어졌던 것이다. 정부군도 학살을 자행하고, 반군도 민간인 학살을 자행했다. 그야말로 스리랑카가 피로 물들었다. “어머니와 딸은 벽돌 아래 묻혔고, 학생 열 명이 타이어를 뒤집어쓰고 불탔고, 농장주는 자신의 창자로 나무에 묶였다.”

소설 주인공 말리는 그렇게 억울하게 목숨을 잃은 민간인들의 사진을 찍는다. “사진이야말로 전쟁을 끝낼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말리는 엄청난 비극의 사진을 찍는데 그것 때문에 살해를 당한다. 과연 그 사진에는 무엇이 담겼을까.

소설에는 내전과 독재, 학살로 얼룩진 비극의 땅 스리랑카의 울부짖음이 들어 있다. “아무나 신을 향해 울부짖지만, 신이 보내는 것은 침묵과 부재뿐이다.” “신에게 기도하는 것은 자동차에게 왜 사고가 나야 했느냐고 묻는 거나 마찬가지야.” “신도 악을 멈출 수 없습니까? 아니면 그럴 의지가 없나요?” “신이 없는 이 우주에서 가장 위대한 살인자는 주사위 놀음이다. 다른 아무것도 아닌, 그저 정글 같은 불운. 우리 모두에게 닥치는 그것.”

소설은 뭘까를 생각게 하는 작품이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계의 전체를 그려내는 것이 소설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쉬 그려낼 수 없다 해도 그 전체를 그려내려는 의지와 그 집요함의 소산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전체는 사회, 역사, 공동체로 표현되는 그것이다. 셰한 카루나틸라카 지음/유소영 옮김/인플루엔셜/548쪽/1만 8800원.


최학림 선임기자 theos@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