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나무는 내 말을 듣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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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계성 수필가

정원의 나무가 갑자기 죽었다. 나이는 35살 정도이며, 우리와 한 뜰에서 산 지가 29년이 된 만리향이었다. 빌라 사람들은 이 나무가 더 이상 싹을 내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다고 혀를 찼다. 만약, 그 옆의 나무도 같이 시들었거나 죽었다면 토양이나 배수에 문제가 생겼을 것이라고 진단했을 것이지만, 그 옆의 키 작은 나무는 올해도 멀쩡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짐작을 말하기 시작했다. “102호네 대신 죽은 것일 거야!”. 그러자 이 만리향이 죽은 이유를 추론할 수 없었던 사람들은 다 같이 “그래 맞아! 102호네 대신 죽은 걸 거야!”라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그래서 빌라에서는 이 멀쩡하던 만리향이 죽은 이유가, 이 나무가 서 있는 화단 청소를 가장 열심히 했고, 그래서 얼굴을 가장 자주 대했던 102호네가 중병에 걸려 병원에 입원하게 되자, 나무가 그 대신 죽은 것이므로, 이제 102호네는 살아서 돌아올 것이라고 예감했다.

102호 안주인은 이 만리향 나무를 가꾸었고, 항상 그 앞에서 사람들과 담소했으므로, 사람들은 ‘102호네’와 만리향을 같이 연상했을 것이다, 그래서 건강하던 102호네가 갑자기 병에 걸려 입원한 일과, 만리향이 갑자기 죽은 것을 연관 지어 생각했다. 만리향의 까닭 모를 죽음에 대한 마땅한 해석이 필요했고, 사람 좋은 102호네의 생환을 바라는 마음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생각이 달랐다. 우선 빌라 사람들이 이 만리향을 과연 정말 좋아했느냐는 것이었다. 우선 고백하지만, 나부터 이 만리향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았다. 의아해할 일이지만, 우선 만리향에는 미약한 분뇨 냄새 같은 것이 섞여 있었고, 너무 짙어서 머리가 아플 지경이었다. 그래서 만리향이 피는 계절이면 나는 창문을 닫고 지냈고, 나중에는 이 지독한 냄새에 독성은 없을까 하는 걱정을 하기도 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이 나무가 성장함에 따라 창 앞을 점점 많이 가리게 되고, 따라서 창으로 투사되는 햇살이 점점 적어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전지 작업를 할 때마다, 나는 빌라 사람들 몰래 전지 작업자에게 부탁을 하곤 했다. “정원 나무가 너무 크면 문을 가려 안 좋지요! 만리향 가지를 좀 더 낮게 치세요.” 그러나 한 해가 지나면 나무는 더 크게 자라있었다. 그래서 나는 다시 재촉했다. “작년보다 더 낮게 치세요!” 나의 닦달에 작업자는 사다리 위에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어느 날 만리향 잎이 시들어 떨어졌고, 봄이 되어도 나무는 싹을 내지 않았다. 우리는 비로소 만리향이 죽었다는 것을 알았다.

사람들은 102호네 대신에 만리향이 죽었다고 했지만, 나는 그 나무가 죽은 진짜 이유를 안다. 사실은 아무도 그 존재를 사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선 내가, 그 존재가 창문 앞 공간과 햇살을 가린다는 이유로 반기지 않았고, 심지어 그 나무가 일 년간 이슬과 햇살을 모은 힘으로 피워 올린, 그 존재의 빛인 꽃조차도 냄새가 심하다고 얼굴을 찌푸렸다. 그래서 나무는 아름다운 존재로 인정받지 못해서 창피함을 느꼈을 것이다. 내가 더 낮게 자르라고 주문하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존재를 부정당하는 부끄러움을 느꼈을 것이다. 그래서 나무는 나를 보고 이렇게 말했을 것이다. “미안해요! 다른 곳으로 옮겨가고 싶지만 그럴 수가 없네요, 새처럼 날 수도 없고 지렁이처럼 기어 다닐 수도 없으니...,”

만리향이 더 미안해하지 않아도 되는 유일한 길은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것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 죽은 나무를 베는 것에 반대했다. 그 이유는 내가 너무 미안했기 때문이다. 나는 나무가 죽고 난 뒤에야 비로소 알았다. 나무는 내가 평소 그에게 하는 말을 전부 듣고 있었다는 것을.

※약력 : 2005년 〈부산일보〉 신춘문예 수필 당선, 법률사무소 근무, 수필집 〈찔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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