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벤치 데우는 클린스만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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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장의 테크니컬 에어리어(Technical Area)는 감독이나 코치들이 작전 지시를 내리는 공간이다. 통상 각 팀의 벤치 앞이나 옆에 위치하며 경기장 터치라인에서 1m 떨어진 곳에 표시한다. 감독이나 선수들이 경기 중에 벤치에 있다가 박차고 일어나 주심과 언쟁을 벌이는 경우도 있는데 이 선을 벗어나 경기장 쪽으로 나갈 경우 징계를 받을 수도 있다. 경기 중에 후보 선수들은 대체로 벤치에 앉아 있지만, 감독은 벤치와 이 지역을 오가며 선수들을 향해 끊임없이 작전을 지시하곤 한다.

흔히 ‘축구는 감독놀음이다’라는 말을 한다. 그만큼 감독 역할이 매우 크다는 얘기다. 그래서 이런 말도 한다. “경기의 99%는 선수들이, 나머지 1%는 감독이 만든다. 하지만 감독이 없으면 100%가 나올 수 없다.”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 명문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에서 27년간 지휘봉을 잡았던 세계적인 명장 알렉스 퍼거슨 감독의 말이다. 수치로는 1%에 불과하지만 감독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준다.

감독이 무엇을 보여주어야 하는지에 대한 정답은 없다. 선수 개개인의 개성과 창의력, 자율성도 필요하다. 하지만 경기가 안 풀릴 때는 특정 선수에게 역할을 부여하고, 맡아야 할 상대 선수나 공간을 얘기해야 한다. 그러다 보면 벤치에 앉아 있을 시간조차 없을 때도 많다. 프리미어리그 리버풀을 이끄는 위르겐 클롭 감독은 벤치에 앉아 있는 경우는 거의 없다. 물론 성격 탓도 있지만, 경기 중 선수들을 향해 끝없이 뭔가를 주문하고 지시한다.

아시아축구연맹(AFC) 카타르 아시안컵 축구가 한창이다. 아시안컵을 통해 드러난 위르겐 클린스만 국가대표 감독의 모습을 보면 너무나 실망스럽다. 빈약한 전술로 팬들의 비판을 받고 있는 클린스만 감독은 조별 리그 마지막 경기에선 열정마저도 보여주지 못했다. 경기 중 가끔 일어나 테크니컬 에어리어 쪽으로 갔지만 작전을 지시하는 모습은 좀처럼 볼 수 없었다. TV를 통해 본 국내 팬들은 경기를 지휘하는 감독보다는 구경 온 관중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했다.

16강전부터는 한 번 지면 탈락하는 토너먼트다. 모 아니면 도란 얘기다. 경기 중 상대가 우리의 전략을 읽고 있다면 순발력 있게 다른 작전으로 상대 팀의 허점을 파고들도록 선수들에게 지시해야 한다. 이게 감독의 역할이다. 벤치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는 좋은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감독은 벤치에 앉아 출전 기회를 기다리는 벤치 워머(bench warmer)가 아니다. 클린스만 감독의 열정을 보고 싶다.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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