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한국인의 회복 탄력성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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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심리학자 에미 워너와 루스 스미스는 1955년 하와이 카우아이섬에서 태어난 신생아 833명의 30년간 삶을 추적 관찰했다. 그 결과는 힘든 환경에서 자랐을수록 학교와 사회 적응이 어려웠고 정신적 문제도 겪는다는 것으로 상식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그런데 연구 참여자 중 극단적으로 열악한 환경에 있던 201명의 성장을 추적한 결과 놀라운 사실을 발견했다. 모두 가정불화가 심하고 부모 한 명 또는 둘 다 알코올중독이나 정신질환을 앓는 극빈 가정이었는데 3분의 1에 해당하는 72명은 학업성적도 우수했고 사회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으며 대학입학시험(SAT) 상위 10% 안에 든 아이도 있었다.

연구자들은 그 배경이 회복 탄력성(resilience)이라는 분석을 내놓았다. 이 아이들은 극심한 역경을 딛고 고무공처럼 다시 튀어 오르는 마음의 힘을 갖고 있었다는 것이다. 회복 탄력성은 시련이나 고난을 이겨 내는 긍정의 힘을 의미하는 심리학 용어가 됐고 경제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용되고 있다. 연세대 김주환 교수가 〈회복 탄력성〉이라는 책을 출간하고 TV 프로그램을 통해 ‘시련을 행운으로 바꾸는 마음의 근력을 키워야 한다’고 주창하면서 우리에게도 친숙한 용어가 됐다. 최근에는 뇌과학 관점에서의 연구도 활발하다. 우울과 불안 등 정신적 문제와도 연결한다.

최근 미국 유명 작가 마크 맨슨이 ‘세계에서 가장 우울한 나라를 여행했다’며 자신의 유튜브 채널에 올린 24분짜리 영상이 화제다. 그는 한국 정신건강 위기에 대한 진단을 1990년대 비디오게임 스타크래프트에서 시작한다. 많은 인원이 좁은 방에서 훈련하며 강력한 사회적 압력과 경쟁으로 성과를 도출하는 성공 공식이 대기업, K팝, 스포츠 등으로 확산했다. 이는 효과적 공식으로 입증됐지만 심리적 낙진을 초래했는 게 그의 생각이다. 극심한 경쟁과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인지 왜곡이 사회적 우울감을 높여 왔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유교적 눈치 보기와 자본주의의 극단적 물질주의가 결합한 결과로 분석했다.

맨슨은 그럼에도 한국인은 어떤 어려움이나 도전에 처하든 돌파구를 찾아왔다며 세계적으로 보기 드문 회복 탄력성이야말로 한국의 진짜 ‘슈퍼 파워’일 수 있다는 평가도 남겼다. 그러고 보면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IMF 외환위기 등을 극복하고 오늘날 세계 속의 한국으로 일으켜 세운 우리다. 정치가 국민을 외면하고 경제가 곤두박질하고 있는 지금이야말로 한국인의 회복 탄력성이 절실한 시점 아닐까. 강윤경 논설위원 kyk93@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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