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봄의 순환’ 덕분에 우리는 살아간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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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 조기현·홍종원

아버지 10여 년 돌본 ‘영 케어러’
국내 최초 방문진료 의원 원장
이들이 느낀 위기의 돌봄 현장



돌봄은 공기처럼 늘 곁에 있어 평소에는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돌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부산일보DB 돌봄은 공기처럼 늘 곁에 있어 평소에는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돌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부산일보DB

‘돌봄’은 나와 무관한 단어인 줄 알았다. 나이가 들면서 그게 아니란 걸 깨닫고 있다. 우리는 모두 유한한 존재이고 돌봄은 모두에게 꼭 필요한 것이었다. ‘돌봄은 선고된 형벌처럼 다가와서 피할 수 없이 체험하게 된다’고 말한 사람이 있다. 돌봄을 절절하게 체험한 사람이라고 짐작한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에게 나이 든 부모의 돌봄 문제가 닥치고 있다. 이 부모 돌봄은 주로 여성, 혹은 불안정한 일자리에 있는 자녀가 맡게 되는 경우가 많다. 이처럼 돌봄은 가족 가운데 가장 약자가 떠맡지만 정작 돌봄 과정에서 발생하는 중요한 결정은 돈을 내는 힘 있는 사람들이 내린다. 돌봄이 돈을 받는 노동이 되면 돌봄노동자를 무시하는 일로 이어지고, 또 이주노동자에게 돌봄이 떠넘겨진다. 위험의 외주화처럼 돌봄의 외주화가 되는 것이다.

제목에 있는 ‘돌봄’이란 단어와 함께 ‘조기현’이란 낯익은 이름 때문에 자연스럽게 눈이 갔다. 조기현은 스무 살 때 쓰러진 아버지를 10여 년간 돌본 경험을 바탕으로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쓴 ‘영 케어러(Young Carer)’다. 우리는 어린 나이에 부모, 조부모를 돌보는 이들을 효자·효녀로만 봐 왔지만, 영국은 1980년대 말에 이 용어를 만들었다. 2016년 부산 중구가 전국 최초로 영 케어러를 대상으로 ‘돌봄 제공자인 아동·청소년 지원 조례안’을 제정하면서 우리 사회에도 이들이 존재를 드러냈다.

공동 저자 홍종원 씨는 국내 최초의 방문진료 전문병원인 ‘건강의집 의원’ 원장이다. 사회에는 병원에 갈 수 없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이 병원은 그런 분들을 찾아가 필요한 의료서비스를 제때 제공하고 건강 관리를 잘하도록 돕자는 목표를 가지고 세워졌다고 한다. 세상에 이런 병원이 어디 있는지 궁금해서 찾아보니 역시나 서울이다. 홍 씨의 이야기는 밑줄을 긋고 기억하고 싶은 대목이 많았다. 그는 “인간의 자립은 남을 돌볼 수 있는 능력을 확립하는 일이라고 생각한다”는 멋진 말도 남겼다.

이 책은 그렇게 각자 다른 쪽에서 돌봄의 가능성을 사유해 온 두 사람이 나눈 다섯 번의 대화를 꼼꼼하게 엮었다. 한 가지 특이한 점은 출판사의 편집자 김경훈 씨가 대담 진행자로 직접 개입해 책에도 등장한다는 사실이다. 편집자는 사실 책 속에 숨어 있는 중요 인물이다. 그런 편집자가 등장해서 직접 질문을 짜고 진행을 맡아 놀라울 정도로 비효율적으로(?) 작업했다고 고백한다. 아무튼 그 덕분에 돌봄을 잘 모르는 일반 독자 눈높이에서 대담이 이뤄져서 그게 이 책의 장점이 되었다.

다시 앞부분에서 제기한 문제로 돌아가 돌봄이 폄하되는 이유에 대해 생각해 보자. 그것은 돌봄은 생산적이지 않다는 인식 때문이다. 가장인 남성의 노동은 돈을 벌어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받지만, 여성의 가사노동은 돈이 안 되기 때문에 그동안 가치를 인정받지 못했다. 돌봄이 가치 없는 일로 여겨지며 위태로운 상황에 놓였는데, 그것은 한국 사회를 지배하는 생산성의 논리와 맞닿아 있다. 따라서 돌봄을 새롭게 사유하는 것은 한국 사회 전체를 돌아보고 변화를 만드는 일이기도 하다.

책에는 일본에서 차관을 지낸 70대 엘리트 관료가 히키코모리였던 40대 아들을 살해한 사건이 소개된다. 자기가 없으면 아무도 아들을 돌보지 않을 텐데, 아들의 폭력적인 성향이 더 심각해질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나온 행동이었다. 남의 일로만 여겨지지 않는다. 돌봄에 대한 가족 책임을 지금처럼 방치하면 영 케어러가 중년 케어러, 올드 케어러가 된다. 저자들은 가족을 넘어서서 사회가 돌봄을 책임진다는 개념이 보편화될 필요가 있다고 한목소리로 주장한다.

어떻게 하면 ‘좋은 돌봄’을 해낼 수 있을까. 돌봄노동자를 심부름하는 사람 내지는 허드렛일, 집안일 도와주는 사람으로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그래서 장을 보고, 설거지하고, 대소변 치우는 일을 시킨다. 돌봄은 생존과 결부된 중요한 일이다. 돌봄노동자와 관계 맺기는 앞으로 새로 배워야 할 영역이라는 주장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돌봄노동자를 대할 때 필요한 태도는 ‘존중’이었다.

돌봄을 우리를 숨 쉬게 하는 공기에 비유한 대목이 책을 덮고 나도 기억에 남는다. 공기처럼 늘 곁에 있어 평소에는 소중함을 느끼지 못하지만, 항상 우리는 돌봄 속에서 살아왔고 돌봄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돌봄이 순환하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의존하며 살아갈 수 있다. 우리 스스로가 ‘돌봄의 인프라’가 되어 서로를 돌보는 관계를 맺자고 권한다. 조기현·홍종원 지음/한겨레출판/356쪽/2만 원.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우리의 관계를 돌봄이라 부를 때.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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