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가난한 사람들은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가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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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제 정당화의 심리학 / 존 T. 조스트

체제 합리화로 심리적 안녕 얻어
부정의한 체제 공고화에 악용
체제 '바깥에서 바라보기' 필요

<체제 정당화의 심리학> 표지. <체제 정당화의 심리학> 표지.

선거철마다 궁금해지는 점. 왜 가난한 사람들은 오히려 기업가의 이익을 대변하는 보수 정당을 주로 지지하는가. <체제 정당화의 심리학>의 저자도 비슷한 고민을 했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부의 재분배에 반대하는 걸까. 왜 어떤 여성들은 자신이 남성보다 낮은 임금을 받는 게 마땅하다고 느낄까. 왜 어떤 아프리카계 미국인 아이들은 백인 인형이 흑인 인형보다 더 매력적이고 바람직하다고 믿게 될까.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저자는 그 이유를 ‘체제 정당화’라는 사회적·심리적 과정에서 찾는다. 여우는 담장 너머 포도를 보며 “저 포도는 실 거야”라고 가치 절하한다. 그러나 여우에게 먹을 것이 레몬밖에 없다면, 레몬은 신 게 아니라 상큼하다고 여길 것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은 가치 없게, 피할 수 없는 것은 가치 있게 여기는 심리적 작용이다. 가질 수 없는 것을 원하거나 자기에게 주어진 비참한 현실을 되새기는 것만큼 괴로운 일은 없기 때문에 이를 피하려는 거다. 체제 정당화 이론의 핵심이다.

이러한 심리적 메커니즘을 거쳐, 사람들은 자기가 의지하고 있는 사회·경제·정치 체제를 비교적 공정하고, 합당하며, 정당화되었다고 여기게끔 동기화된다. 동기화된 지각이 다른 부당한 상황으로 위협받으면, 오히려 부당한 상황을 합리화함으로써 기존 동기화된 지각을 지킨다. 이른바 ‘정당화’다. 이를 통해 미국의 가난한 노동자들은 경제 체제의 모순을 지적하는 대신 트럼프를 지지하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여성 가사 노동자들은 인종 관계의 불평등에 불만을 갖는 대신 부유한 백인 고용주와 상생할 수 있다는 점을 다행으로 여긴다.

여기에 체제 정당화를 돕는 또 하나의 보완적 장치가 작용한다. 이는 대체로 문화적 표상의 형태를 지닌다. 사회적 약자에게는 행복이나 도덕성 같은 미덕을, 강자에게는 불행·외로움 같은 악덕을 부여한다. 이를 통해 약자에게 ‘사실 당신들이 더 행복하다’라는 식의 허상을 심는다. 가장 오래된 것 중 하나가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부자가 하느님의 왕국에 들어가는 것은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보다 어렵다’ 같은 것들이다. 불쌍한 부자들이여.

이러한 정당화는 단기적으로 사회적 약자에게 심리적 진통제 기능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장기적으로는 불공정한 체제를 공고화함으로써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약탈만 더해질 뿐이다.

심리적 진통제(사실상 아편이다)의 금단 현상에서 벗어나기 위해 저자는 ‘(집단의) 바깥에서 바라보기’를 권한다. 비틀스는 1964년 9월 플로리다주 잭슨 빌 공연을 앞두고 관객들의 인종 분리를 거부했다. 존 레넌은 “우리는 (흑인과 백인으로) 분리된 청중을 대상으로 공연하지 않는다”고 했다. 폴 매카트니는 흑인 인권 운동에 관한 노래 ‘블랙버드(Blackbird)’를 만들기도 했다. 저자는 젊은 4명의 백인 남자가 인종 문제에 관해 왜 그리 높은 도덕적 명확성을 얻었는지 자문하며 이렇게 말한다. “미국 체제를 바깥에서 보았다는 것이 1964년 비틀스에게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안에서 싸워야 한다. 그만큼 더 어렵다. 책 또한 쉽게 읽히는 책은 아니다. 독서를 '여분의 시간을 즐겁게 보내기 위한 오락'으로 여기는 나같은 사람에게는 끈기를 짜내어 읽어야 하는 다소 상이한 독서 경험이다. 다만 정의롭지 않은 이 세상에 돌멩이 하나 던진다는 기분으로 읽는다면 잠시나마 속이 시원하다. 대신 속 시원함의 몇 배나 되는 물음이 본인에게 다시 던져질지도…. 존 T. 조스트 지음/신기원 옮김/에코리브르/552쪽/3만 5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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