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 읽기] 이제는 당당하게 야설을 읽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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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속 성 문화, 사색 / 강영운

<역사 속 성 문화, 사색> 표지. <역사 속 성 문화, 사색> 표지.

루소의 <사회계약론>이 프랑스 혁명을 촉발했다, 쭉 그렇게 생각했다. 간혹 술자리에서 책 한 권이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호기롭게 이야기하며, <사회계약론>을 들기도 했다. 그러나 혁명 당시 민중들이 열광한 책은 <사회계약론>이 아니었다. 1910년 다니엘 모르네라는 한 프랑스 학자는 앙시앙 레짐 말기 파리 사람들이 소장한 장서 목록을 통계로 뽑아봤다. 그런데, 총 2만 권 중 <사회계약론>은 딱 한 권뿐이었다고 한다. 나머지 것들은 대체로 소설, 그중에서도 이른바 ‘야설’이 대부분이었다. 그렇다고 책으로(물론 한 권의 책은 아니지만) 세상을 바꿀 수 있다는 전제가 뒤집어지진 않았다. 그 책이 <사회계약론>이 아닐 뿐. 야설이다.

프랑스 계몽주의 사상가 드니 디드로의 탁월한 명언을 인용해보자. “음란한 것은 나체의 여성이 아니라 치마가 접혀 올라간 여인이다.” 혁명의 지적인 토대를 마련한 디드로가 외설계에도 이렇게 탁월한 통찰력을 가졌다는 점이 새삼 놀랍다. 디드로뿐이 아니다. 혁명의 아버지들은 대체로 야설에 능통했다. 몽테스키외는 <페르시아인의 편지>를, 볼테르는 <오를레앙의 처녀>를 집필했다. 모두 야설이다. 혁명의 아버지들이 포르노를 쓴 이유는 간단하다. 절대 왕정 귀족들의 비도덕성을 공격하기에 그만한 무기가 없었다. 실존 인물을 대상으로 묘사한 난잡한 성관계 이야기는 삽시간에 대중으로 퍼진다.

<역사 속 성 문화, 사색>은 우리가 금기시해 온 성 문화가 사실 얼마나 보편적인 것이며 또한 우리 역사에 큰 기여(?)를 했는지 보여준다. 그에 더해 몰래 야설을 읽는 것에 대해 더이상 부끄러워하지 않아도 될 이론적 근거를 제시해 주는 책. 강영운 지음/인물과사상사/336쪽/2만 2000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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