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법인택시 '미지급 최저임금' 소송, 항소심은 업체 손 들어줘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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택시 기사 64명 청구 금액 약 7억
재판부 “최저임금 회피 시도 아냐”
부산의 다른 소송에도 영향 미칠 듯

부산택시운송사업조합은 지난 9일 오전 부산법원종합청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부산택시운송사업조합 제공 부산택시운송사업조합은 지난 9일 오전 부산법원종합청사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부산택시운송사업조합 제공

‘미지급 최저임금’을 둘러싼 부산 법인택시 기사와 업체 간의 소송전에서 항소심 재판부가 업체의 손을 들어줬다. 1심 판단과는 반대로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하기로 한 노사 합의가 최저임금을 회피하기 위한 수단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것이다.

부산고법 2-1민사부(재판장 김민기), 2-3민사부(재판장 최은정)는 1일 택시 기사 64명이 부산의 택시 업체 6곳을 상대로 제기한 임금 반환 소송에서 1심에서 택시회사들의 패소 부분을 취소하고 원고의 청구를 기각한다고 판결했다. 청구 금액 규모는 총 6억 8727만 원이다.

이번 재판의 쟁점은 2008년, 2013년, 2018년 각 임금협정에서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하기로 한 노사 합의가 최저임금법을 회피하기 위한 시도로 무효인지를 따지는 것이었다.

재판부는 임금 협정 당시 이뤄진 소정근로시간 단축 합의는 최저임금 제도를 교묘히 피하려는 형식적인 합의가 아니라 택시요금 인상과 호출식 영업의 확대 등 택시 기사의 실제 근무 형태가 변경된 사정을 반영한 합의로서 유효하다고 판단했다. ‘최저임금법을 회피하기 위한 탈법 행위’라는 택시 기사들의 주장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원고의 주장에 따르면 결국 택시운송사업의 경우 어떠한 상황에서도 소정근로시간을 단축할 수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되는데, 사용자와 근로자가 기준 근로시간을 초과하지 않는 한 자유로운 의사에 따라 합의할 수 있다는 점을 분명히 한다”며 “이 사건 특례 조항의 적용을 회피할 의도로 소정근로시간만을 단축하기로 합의한 경우를 규제하는 대법원 판결의 법리와도 부합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앞서 2020년 9월 1심 재판부는 택시 회사들이 기사들에게 미지급된 임금 등 4억 6045만 원을 돌려주라며 원고 일부 승소 판결했다.

이번 항소심 선고로 잇따르는 대규모 소송전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부산에서 진행 중인 체불임금 청구 소송은 약 460건이다. 전국에서 소송 건수가 가장 많다. 참가한 택시 기사는 약 3500명으로, 청구 금액을 다 합치면 약 320억 원에 달한다.

소송의 발단은 2009년 개정 최저임금법 시행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최저임금법 개정에 따라 초과운송수입(사납금을 제외한 금액)이 최저임금 산정에서 제외되면서 전국적으로 기사와 업체 간의 갈등이 빚어졌다. 부산의 경우 노사 협의를 통해 기사의 소정근로시간을 줄여가는 식으로 대처했다. 사측이 매년 증가하는 최저임금 상승분에 대응하는 방법이었다.

그러다 경기도의 한 택시업체에서 소정근로시간을 둘러싼 소송전이 발생했고, 2019년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소정 근로시간을 줄여 최저임금법을 피하려 한 업체 측의 행위는 잘못이라고 판단했다.

대법원 판단을 근거로 여태껏 전국 지방법원의 하급심은 대체로 기사들의 손을 들어줬으나, 최근에는 노사 자율 합의를 강조하며 택시업계의 손을 들어주는 취지의 판결이 잇달아 나오고 있다. 특히 지난 4일 대법원은 대구 택시 근로자 8명이 회사를 상대로 낸 소송에서 “최저임금 위반으로 판단한 행위는 잘못된 판단”이라며 원심 판결 중 피고 패소 부분을 파기 환송하며 회사 측의 손을 들어줬다.

부산택시운송사업조합 장성호 이사장은 “천문학적인 소송 금액을 떠안을 뻔한 위기였는데 수술대에서 다시 살아난 기분”이라면서 “법원의 공정한 판결에 감사드린다”고 밝혔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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