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불처럼 번지는 유럽 농민 시위… EU 전전긍긍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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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이어 독일·폴란드 동참
전쟁으로 기름 가격 올랐는데
농가 상대로 친환경 정책 압박
값싼 우크라 농산물까지 수입
유럽 의회 선거 앞두고 변수로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프랑스 농민 시위대가 동원한 트랙터들이 파리 외곽 조시니의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농업정책에 반대하는 농민 시위대는 ‘무기한 파리 봉쇄’를 예고했다. AP연합뉴스 지난달 30일(현지시간) 프랑스 농민 시위대가 동원한 트랙터들이 파리 외곽 조시니의 고속도로를 점거하고 있다. 에마뉘엘 마크롱 정부의 농업정책에 반대하는 농민 시위대는 ‘무기한 파리 봉쇄’를 예고했다. AP연합뉴스

농민 시위가 유럽 전역으로 들불처럼 번지고 있다.

지난달 18일(현지시간) 프랑스 농부들이 트랙터를 몰고 거리를 봉쇄하며 시작된 이번 시위는 브뤼셀과 독일 등 서유럽부터 루마니아, 폴란드 등 동유럽, 이탈리아 등 남유럽까지 번지는 중이다.

31일(현지시간) BBC와 로이터 등 외신에 따르면 농민 시위는 전 유럽으로 걷잡을 수 없이 확산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유럽 농민들은 최근 몇 년 동안 인플레이션으로 인한 경작비 급상승에 신음해 왔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값싼 우크라이나 농산물까지 시장에 유입되면서 생존 한계에 직면한 상황이다.

여기에 유럽연합(EU)의 각종 환경 규제와 관료주의가 성난 농심에 기름을 부었다. 놀란 EU와 각국 정부는 경작지 휴경의무를 한시적으로 유예하는 등 녹색 규정을 연기하고, 우크라이나산 농산물 수입 제한 추진 등의 대책을 부랴부랴 내놓으면서 농심 달래기에 나섰다.

로이터 통신 등에 따르면 파리에서는 트랙터 시위대 일부가 유럽 최대 규모의 농산물 도매시장으로 꼽히는 ‘렁지스 시장’으로 접근하자 정부가 이들을 차단하기 위해 장갑차를 추가 투입하는 등 긴장이 높아졌다. 이 과정에서 교통방해 혐의와 대형 유통업체 창고 침입 시도 혐의로 시위 농민 100여 명이 체포되기도 했다.

벨기에에서는 지난달 30일 유럽의 주요 교역 관문인 제브뤼헤 항구에서 농민들이 진입로 5곳을 막고 시위를 벌인 데 이어 이날은 시위대가 주요 고속도로를 봉쇄하는 한편 브뤼셀 EU 본부 인근까지 트랙터를 몰고 진출했다.

유럽 농민들이 일손을 놓고 분노를 표출하는 이유는 복합적이다.

우선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에너지 가격 등 경작 비용이 대폭 증가했는데 경유 보조금 등 농가 지원은 줄어 농사를 지어도 수입이 쪼그라들고 있는 게 크다. 프랑스 통계청 자료에 따르면 프랑스 농가 소득은 지난 30년 동안 40% 줄었고, 농민 5명 중 1명은 빈곤선 아래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상황에서 EU가 보조금을 줄테니 높은 환경 기준을 맞추라고 농민들에게 요구하는 공동농업정책을 내놔 농가의 불만이 한계점이다.

EU는 생물 다양성 촉진과 환경 보호 등을 위해 농경지 일부를 휴경지로 남기도록 의무화하고, 특정 살충제의 사용을 줄이거나 금지하는 등의 규제를 펴고 있다.

프랑스 정부도 거세지는 농민시위를 가라앉히기 위해 전전긍긍하고 있다. 프랑스 일각에서는 성난 농민들이 도로를 점거한 채 건초더미와 폐타이어에 불을 지르고 지방 행정기관 건물에 거름을 뿌리는 등 시위가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과열되는 양상이다.

브뤼노 르메르 프랑스 재정경제부 장관은 31일 현지 라디오에 “EU와 남미공동시장(메르코수르) 간 자유무역협정(FTA)은 우리 농민에게 좋지 않다”며 “이 협정에 서명할 수도 없고, 서명해서도 안 된다”고 EU를 압박했다.

한편, 오는 6월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프랑스, 독일, 네덜란드 등 유럽 주요 국가에서 농민들의 분노에 편승해 극우 정치세력이 약진할 것이라는 전망도 커지고 있는 실정이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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