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운명 바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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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호철 소설가

학창 시절, 친구들과 배낭여행을 떠난 적이 있었다. 무거운 배낭을 메고 산기슭을 헤매다가 발견한 어느 계곡에서 야영할 때였다. 텐트를 설치하고 저녁 준비에 바쁜 우리 앞에 갑자기 백발의 할머니가 나타났다. 외딴 산중에 지팡이를 짚고 등장한 인물에 우린 깜짝 놀랐다. 할머니는 영험한 산에 은거하여 도를 닦는 중이었는데, 젊은이들 인물이 어찌나 출중한지 현신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했다.

뜻밖의 상찬에 우린 말로만 듣던 도인을 실제로 보게 되었다며 탄복했고, 우리의 반응에 고무된 도인은 기꺼이 모두의 미래를 봐주겠다고 선언했다. 우리는 차례대로 할머니 앞에 얼굴을 내밀었다.

첫 번째로 나선 친구는 장차 국회의원이 될 것이라 했다. 두 번째 친구는 판검사, 세 번째 친구는 사업가가 되어 큰 부자가 될 것이라 예언해줬다. 마지막으로 내 얼굴을 본 도사는 혀부터 쯧쯧 찼다. 굶지 않으려면 기술을 배워 피땀 흘려 일해야 하고 그래야 백 원짜리 동전 몇 낱을 얻을 수 있다고 했다. 나는 망연자실했고 도사는 친구가 사례로 내민 라면 두 봉지를 챙겨 홀연히 사라졌다.

상심에 빠진 내 주위로 친구들이 모여 위로의 말을 건넸다. 국회의원이 될 친구는 백 원짜리 동전 몇 개만 있어도 생계가 가능한 정책을 펼칠 것이며, 사업가가 될 친구는 자신의 공장 정문에 취업시켜 줄 것이며, 판검사가 될 친구는 내가 도둑질로 잡혀 오더라도 우리 어머니께 일러바치지 않겠다고 약속해줬다.

그 후, 많은 시간이 흘러 친구들은 각자의 직업을 가졌다. 판검사가 되리라 했던 친구는 프로그래머가 되었고, 사장님이 되리라 했던 이는 교수가 되었다. 국회의원이 될 것이라 했던 친구는 대기업 중역이 되었고, 백 원짜리 동전만 벌어먹는다는 나는 머리를 쥐어짜 글을 쓰는 작가가 되었다. 왠지 나만 맞아떨어진 느낌이었다.

해프닝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사실 나는 그 예언이 꽤 신경 쓰였다. 나름 큰 포부를 가지고 그 꿈을 이루려 애를 쓰기도 했었다. 그런 내 행동은 정말로 사람의 운명이 정해져 있을까 하는 질문과도 연결되었다.

모든 일이 이미 정해졌다는 이론이 있기는 하다. 우주가 탄생하여 물질과 공간, 시간이라는 것이 생길 때부터 우주는 이미 확정되어 있다는 주장이다. 그래서 기억은 ‘과거’라 이름 붙인 데이터일 뿐이며, 끊임없이 움직이는 세상 속 우리의 삶도 필름으로 돌아가는 영화처럼 하나하나의 장면이 확정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자각할 수 있는 것은 언제나 현재뿐이다.

그렇다면 세상 모든 일이 필연적으로 일어나는 걸까? 나는 이런 주장을 들을수록 인간과 생명의 가치에 무게를 더한다. 만약 생명체가 우연히 탄생하였다면, 그래서 우연히 탄생한 종족의 번성만을 위한 삶이라면 일정 수준 이상의 진화는 필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생명체는 더욱 진화했다. 지혜를 가지게 되었고, 본능 이상의 삶을 추구하는 ‘의지’라는 것을 지닌 인간이 등장하였다. 특히 인간은 마치 정해진 길을 걷듯 필연적으로 진화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전혀 다른 해석을 고집한다. 인간은 필연을 극복하기 위해 필연적으로 진화하는 중이다. 모순을 행하고 새로운 우연을 끊임없이 창조해 내는 것이 그 증거이다. 기적을 만들어내고, 또 그 기적이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 되도록 노력한다. 그렇기에 실패는 인간이 감당해야 할 하나의 부산물이 되었다. 인간은 원래부터 필연을 극복하고 운명을 극복하려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가끔 나에게 묻는다. 지금까지 나는 얼마나 내 운명을 바꾸었을까? 그래서 나는 누군가의 교량(橋梁)이 되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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