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홍역의 귀환?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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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역은 천연두와 함께 조선을 뒤흔든 무서운 역병이었다. 마땅한 치료법이 없으니 그저 질병의 신이 심술부리지 않고 지나가기를 바라는 마음에 ‘손님’이라고도 했고, 심지어 귀인을 대접하듯 ‘마마’라고도 불렀다. 그 두려움이 얼마나 컸는지 짐작이 가고도 남는다. 숙종 33년(1707년) 평안도에 홍역이 창궐해 1만 명 훨씬 넘는 사람이 사망했다는 기록이 〈조선왕조실록〉에 나온다. 1786년 여름에는 한양에도 대규모 홍역이 퍼졌던 모양이다. 구중궁궐도 이를 비껴가지 못했는지 정조의 장자 문효세자가 다섯 살에 홍역을 앓다 숨졌다.

홍역은 지금도 우리나라 제2군 법정 전염병으로 지정돼 있다. 국내에서 처음으로 백신 접종이 시작된 건 1965년이었는데 그 이전까지도 고열과 함께 발진이 나타나 끝내 목숨까지 앗아가는 공포의 질병으로 통했다. 국가예방접종인 MMR(볼거리·홍역·풍진) 혼합 백신이 보급되는 1983년부터 발병이 줄어들었고, 2014년 한국은 세계보건기구(WHO)로부터 홍역퇴치 국가로 인정받았다. 홍역은 그렇게 ‘후진국형’으로 치부되면서 별 관심을 두지 않는 병으로 굳어져 갔다.

그런데 근년 들어 홍역의 발병 추세가 심상찮다. 인류가 정복했다고 여긴 홍역의 귀환이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지난해 전 세계에서 총 28만 명의 홍역 환자가 발생했고, 이 가운데 유럽 지역은 4만 2000여 명으로 전년 대비 45배나 폭증했다. 코로나19에 비해 상대적으로 소홀했던 예방, 백신에 대한 인간의 불신 등의 틈새를 파고든 전염병의 역습이라 할 만하다. 코로나19는 인류에게 옛 전염병의 재발과 새로운 전염병의 창궐 등 더 강한 도전을 예고한 바 있다. 이상기후가 홍역 등 여러 종류의 바이러스 변종을 자극한다는 WHO 보고서는 기후 위기의 주범인 인간에게 경각심을 일러주기에 충분하다.

지난 1일 부산에서 5년 만에 홍역 환자가 발생했다. 지난해 12월 전국에서 8명이 나온 데 이어 올해 들어 부산 확진 사례까지 2명의 환자가 추가로 나온 것이다. 2019년 1월께 한 달 새 홍역 환자가 전국적으로 30명이나 발생한 이후 최대 규모다. 모두 해외 유입에 의한 감염으로 추정된다. 기침이나 재채기를 통해 공기로 전파되는 홍역은 지금까지 알려진 바이러스 중 감염력이 가장 높다고 한다. 당장 이번 주부터 설 연휴에 들어간다. 해외여행을 비롯한 민족대이동이 시작되는 만큼 각별한 주의와 예방 조치가 요망된다. 늘 그렇듯, 방심은 금물이다.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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