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보다 잃은 게 훨씬 많았던 우리 어민 ‘냉가슴’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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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어업협정 새 물꼬 트기까지

한국 어선 일본 해역 의존도 높아
어장 상실 국내 수산업계만 부심
8년 추산 손실액 4000억 넘을 듯
독도 분쟁·수산물 수입 등이 변수
일각선 외교적 접근 신중론 제기

지난해 12월 7일 부산에서 대형선망수협과 일본 원양선망어협이 ‘한일 선망 합동 민간협의회’를 열고 있다. 양 조합은 이날 8년 째 답보 중인 한일어업협정 재개를 촉구하는 공동 건의문을 작성하기로 합의했다. 대형선망수협 제공 지난해 12월 7일 부산에서 대형선망수협과 일본 원양선망어협이 ‘한일 선망 합동 민간협의회’를 열고 있다. 양 조합은 이날 8년 째 답보 중인 한일어업협정 재개를 촉구하는 공동 건의문을 작성하기로 합의했다. 대형선망수협 제공

국내 선망업계가 일본과 공동으로 양국 정부에 어업협정 재개를 촉구한 배경에는 해마다 불어나는 손실을 더 이상 두고볼 수 없다는 절박함이 있다. 일본과 달리 조업할 수 있는 수역이 한정적인 데다, 한일어업협정 결렬에 따른 정부 보상도 거의 없었다.

■의존도 높았던 일본의 ‘황금 어장’

일본 배타적경제수역(EEZ)은 국내 수산업계 눈에는 황금 어장이다. 매년 7월 어기가 시작할 때쯤 회유성 어종인 고등어는 일본 EEZ 수역에 있다. 전국 고등어 80%를 위판하는 부산공동어시장의 비수기가 5~9월인 이유다. 따라서 고등어를 주로 잡는 대형선망수협은 한일어업협정 결렬 전 비수기 때 일본 수역에 대한 조업 의존도가 높았다. 대형선망수협 관계자는 “비수기에 일본 EEZ에서 잡은 고등어 양은 전체 물량의 30%를 차지할 정도”라고 말했다.

한일어업협정에 따른 어획 실적도 일본보다 국내 어선이 월등히 크다. 협정 결렬 이전인 2013~2016년 상대국 EEZ에서의 연 평균 어획량은 우리나라가 1만 5078t으로 일본(4247t)보다 3배 넘게 많다. 그만큼 협정 결렬로 인한 국내 수산업계의 피해가 크다는 얘기다. 수협중앙회 수산경제연구원 자료에 따르면 한일어업협정이 중단된 2016년 7월부터 2020년 3월까지 45개월간 관련 업종의 어획 감소량은 6만 3000t, 손실액은 2322억 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올해까지 범위를 넓히면 누적 손실액은 4000억 원이 넘을 것으로 추정된다.

일본 EEZ에 국내 어선이 아예 들어갈 수 없는 탓에 간접 피해도 상당하다. 수협중앙회 관계자는 “대체 어장을 찾아 원거리 조업을 가야 하는데, 일본 수역을 가로지를 수 없으니 출항 비용과 선원 인건비가 훨씬 많이 든다”면서 “해양 사고나 인명 피해 등 눈에 보이지 않는 손실까지 생각하면 업계가 체감하는 정도는 더 클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 수역이 막히면서 국내 제주도 바다에 국내 어선 간 경쟁이 치열해지며 해마다 남획 문제도 발생하고 있다.

■‘무대응’ 일본, 분위기 바뀌나

일본은 그동안 한일어업협정 재개에 미지근한 반응을 보였다. 윤석열 정부 들어 지난해 한일 통화스와프가 8년 만에 복원되는 등 한일 관계에 훈풍이 불고 있지만 어업협정만큼은 예외였다. 우리 정부가 일본 측에 공식 협상을 여러 번 제안했지만 일본에서 거의 반응이 없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일본의 외면은 한일어업협정이 일본보다 한국에 유리하다는 인식 때문이다. 한일어업협정은 양국 모두 할당량이 6만 8204t으로 같다. 하지만 한국은 대형선망을 비롯해 오징어채낚기, 연승 등 여러 업종이 일본 수역에서 조업한다. 반면 일본은 원양선망에 할당량이 집중돼 협정으로 이익을 보는 업종이 적은 편이다.

더불어 일본의 경우 한일어업협정 결렬에 맞춰 자국 어민에게 매출액을 보전해 주거나 기름값 등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 지원액만 2021년 기준 50억 엔(약 491억 5000만 원)에 달한다. 그만큼 협정 결렬에 따른 부작용이 적은 셈이다.

업계는 일본 원양선망어협의 공동 건의에 큰 의미가 있다고 평가한다. 일본이 자국 어민의 불만을 앞세워 협정을 외면한 만큼, 자국 어민의 재개 요청을 무시하기 어렵다는 것이다. 8년간 표류하던 양국 간 협정에 물꼬가 트일 수 있다는 기대가 나온다.

■무리한 요구 가능성도

한일어업협정 재개를 위한 일본과의 협상에 신중해야 한다는 조언도 나온다. 수산 경험과 노하우가 풍부한 일본은 협상에서 우위에 서기 위해 무리한 요구를 할 가능성이 높은 탓이다. 한일어업협정에 정통한 한 수산 전문가는 “일본은 바다를 많이 접하고 있어 협상에 급할 게 없다. 독도 영유권이나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등 정치적 이슈를 협상 테이블에 올릴 여지도 적지 않다”면서 “단순 실무 부서뿐 아니라 외교 계통 등을 통해 정부의 신중한 접근이 필요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일어업협정은 각국 어선이 상대국 EEZ에서 정해진 양과 기간만 조업을 허용하는 일이다. 한국과 일본은 1965년 국교정상화 일환으로 처음 협정을 체결했다. 하지만 1996년 일본이 유엔해양법을 근거로 자국 연안 200해리(약 370km)까지를 EEZ로 선포하며 기존 어업협정을 일방적으로 파기했다. 이에 양국은 1998년 한일어업협정을 다시 체결했고 매년 협상을 통해 이를 갱신했다. 하지만 2016년 한일 관계가 악화하면서 어업협정이 끊겼고 8년간 방치됐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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