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지역 기업과 예술의 상생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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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독자여론부 선임기자

청년 작가 위한 갤러리 서면에 오픈
기업인이 비영리 목적으로 운영

부산예술후원회도 해외 탐방 지원
메세나 활성화로 지역 경쟁력 높여야

최근 부산 서면에 문을 연 갤러리에 취재 간 적이 있다. 지난달 25일 오픈한 ‘갤러리 범향’으로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범향빌딩 11층에 있다. 내외항 에너지 운송 전문업체인 (주)에스제이탱커를 운영하는 박성진 대표가 갤러리 소유주다. 박 대표는 지난해 10월 부산 중구 중앙동에서 이곳으로 사옥을 옮겼고, 기존 건물주가 회의실로 썼던 공간을 젊은 작가를 위한 비영리 갤러리로 탈바꿈했다. 전시 공간 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는 부산의 청년 미술 작가들을 응원하고, 이들의 작품을 대중에게 알릴 기회를 제공하기 위해서다. 오는 25일까지 열리는 개관 기념전 타이틀은 ‘사랑의열매와 함께하는 부산 청년작가 신년 선물전’. 부산지역 20~40대 청년작가 12명의 회화와 조각을 선보이고 있다. 박 대표는 갤러리를 개관하면서 부산사회복지공동모금회(부산사랑의열매)와 수익금 일부를 기부하는 업무협약도 체결했다.

박 대표가 청년 작가를 위한 비영리 갤러리를 만든 계기가 있었다. 그는 2021년 2월 직장인 예술문화 매칭 프로젝트 ‘슬기로운 중앙동 예술 생활’을 미술감독, 카페 대표와 함께 진행했다. 삭막한 사무실 밀집 지역인 중앙동에 ‘대안공간 아트스페이스 몽상X해든 카페’를 열어 청년 작가들의 작품을 전시하며 직장인들이 일상에서 쉽게 미술을 접하게 하는 것이 취지였다. 이 프로젝트는 지난해 말까지 2년 10개월간 진행된 뒤 마무리됐다. 이 기간 젊은 작가들의 단체전과 개인전 등 전시가 총 20회 열렸다. 하지만 카페가 팔리면서 박 대표는 이 프로젝트를 접어야 했다. 이때 가졌던 아쉬움이 이번 갤러리 개관으로 이어졌다고 한다. 이번 개관 기념전에도 ‘슬기로운 중앙동 예술 생활’ 프로젝트에 참여한 작가 상당수가 이름을 올렸다. 지역 청년작가들에게 ‘갤러리 범향’이란 든든한 울타리가 생긴 셈이다. ‘갤러리 범향’의 탄생은 지역의 특기할 만한 ‘메세나(Mecenat)’ 사례 중 하나다.

(사)부산예술후원회(회장 강의구)가 지난해 처음으로 실시한 ‘부산 청년작가 해외탐방 프로젝트’도 의미 있는 메세나 사례다. 부산예술후원회는 지난해 8월 16~27일 음악, 연극, 무용, 문학, 미술, 건축 분야에서 활동하는 부산 청년작가 8명에게 해외탐방 기회를 제공했다. 이들은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 페스티벌과 궁전박물관, 독일 바이마르 괴테 하우스·실러 하우스, 프랑스 파리 루브르·오르세 미술관 등을 탐방하며 생생한 유럽 예술문화를 경험하는 기회를 가졌다. 부산 청년예술인들은 이 여정을 통해 분명 견문을 넓히고, 새로운 예술 영감과 창의적인 예술 활동을 위한 에너지를 얻었을 것이다.

‘메세나’는 기업의 문화예술 지원 활동을 의미하는 프랑스어이다. 고대 로마 아우구스투스 황제 시대의 정치가 가이우스 마에케나스(Gaius Maecenas)의 이름이 프랑스어로 차용된 것이다. 마에케나스는 시인 베르길리우스, 호라티우스 등 당대 예술가들과 친교를 맺으면서 그들의 예술 창작 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해 로마의 예술부흥에 기여했다. 1966년 미국 체이스 맨해튼 은행 회장이었던 데이비드 록펠러가 ‘기업의 사회공헌 예산 일부를 문화예술 활동에 할당하자’고 건의한 것을 계기로 1967년 미국에서 기업예술지원위원회(BCA)를 발족하면서 이 용어를 처음 사용했다고 한다. 그 후 각국의 기업과 기업인들이 메세나 관련 기구를 설립하면서 20여 개국에 메세나 관련 기구가 조직됐다. 한국에서는 1994년 4월 한국메세나협회가 발족했다. 이어 경남메세나협회(2007년) 제주메세나협회(2015년), 세종메세나협회(2020년)가 설립돼 활동 중이다.

2021년 부산메세나협회가 탄생하면서 부산지역에서 메세나가 더욱 활발해지는 토대가 마련됐다. 부산메세나협회(회장 백정호·동성케미컬 회장)는 문화예술을 통한 사회 공헌을 실천하기 위해 지역기업들이 뜻을 모아 2021년 11월 만들어졌다. 2024년 1월 현재 40개 회원사가 참여하고 있다. 이 기업들은 주로 예술단체나 프로젝트에 지정기부를 하거나 예술단체와 기업이 결연하는 ‘예술지원 매칭펀드’ 사업에 참여한다. 협회는 회원사를 대상으로 포럼이나 음악회를 열고 있다.

메세나 파급 효과는 크다. 메세나를 통해 기업은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예술인들과 문화예술단체들은 지원을 통해 활발한 예술 활동을 펼칠 수 있다. 기업과 예술인, 예술단체가 상생하고, 지역경제와 문화예술의 균형 발전도 기대할 수 있다. 최근 K팝, K무비, K드라마 등 K컬처가 세계적으로 인기를 얻으면서 한국의 기존 상품들도 문화를 통해 부가가치를 키우고 있다고 한다. 메세나 활성화를 통해 산업경제와 문화예술의 힘이 시너지를 발휘하고, 부산과 한국의 경쟁력을 키워갔으면 한다.


김상훈 기자 neat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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