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격만 묻고 돌아선 손님… 고물가에 전통시장 설 대목 ‘실종’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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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례상 28만 1500원 역대 최고
사과 56.8% 비롯 과일 물가 급등
비싼 가격에 지갑 열 엄두 못 내
상인 “가게 닫아야 할 판” 하소연
고물가 위기 버틸 섬세한 정책을

설 명절을 앞두고 마지막 휴일인 4일 부산 해운대구 반여농산물도매시장에서 시민들이 선물과 차례 등에 사용할 과일을 고르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설 명절을 앞두고 마지막 휴일인 4일 부산 해운대구 반여농산물도매시장에서 시민들이 선물과 차례 등에 사용할 과일을 고르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5일 오전 10시께 찾은 부산 동래구 복천동 동래시장. 대목인 설 명절을 코앞에 뒀지만 시장은 한산했다. 상인 대부분은 휴대전화를 보거나 텅 빈 가게에서 물건을 손질하고 있었다. 비를 막기 위해 올려둔 비닐 가림막이 매서운 바람에 펄럭이며 이따금 정적을 깰 뿐이었다.

동래시장에서 과일 가게를 운영하는 박갑순(77) 씨는 실파 한 묶음 값을 물어본 손님이 ‘1만 2000원’이라는 답을 듣고 등을 돌리는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박 씨는 “곧 설인데 안 비싼 야채가 없으니 손님도 지갑을 열지 않는다”며 “도매로 1박스에 2만 5000원이던 오이가 올해는 5만 원이나 하니 가격을 올리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이어 “채소는 시간이 지나면 상하니 결국 싸게 팔아야 하는 상황이 반복된다. 장사를 그만둬야 하나 싶다”고 호소했다.

시장을 찾은 시민 장바구니도 텅 비어 있었다. 박혜숙(79) 씨는 “1만 원이면 사던 동태 4마리를 1만 3000원에 구매하려 하니 선뜻 지갑이 열리지 않았다”며 “설 물가가 너무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올해 설 명절을 앞두고 성수품을 사려는 소비자 지갑을 꽁꽁 얼어붙게 만드는 품목은 과일을 비롯한 농수산물이다. “가격이 올라도 너무 올랐다”는 시민들 하소연이 넘쳐난다. 설 대목을 기다리는 전통시장 상인들은 ‘가게를 닫아야 할 처지’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 설 차례상 비용은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한국물가정보가 전통시장 차례상 비용을 조사한 결과, 올해 4인 가족 기준 차례상 비용은 28만 1500원으로 나타났다. 설 차례상 비용은 2021년부터 상승세를 보였으나 특히 올해는 지난해보다 2만 3000원이나 뛰었다. 한국물가정보 이동훈 팀장은 “보통 그해 작황에 따라 품목별로 가격이 오르내리기 마련인데, 올해는 일부 공산품을 제외하고는 이례적으로 품목 전체가 오른 양상”이라고 밝혔다.

특히 사과 등 과일 물가가 크게 올랐다. 통계청 국가통계포털에 따르면 지난 1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지난해 같은 달보다 2.8% 오른 가운데, 농축수산물 소비자물가지수는 122.71로 1년 전보다 8.0% 올랐다. 이는 1월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2.8%)의 2.8배 수준이다. 농축수산물 중에서도 과일 물가 상승률이 28.1%로 전체 소비자물가 상승률 평균의 10배가 넘었다. 과일 품목별 상승률은 사과가 56.8%로 가장 높았다.

시민 근심도 깊다. 이날 오후 2시께 부산진구 부전동 부전시장에선 사과 3개를 1만 원에 팔고 있었다. 소비자 정승혜(56) 씨는 “싼 가격에 즐겨먹던 사과는 가격이 너무 올라 이제 엄두도 못 낸다”며 “어제는 반여농산물도매시장을 찾았는데 예전이면 3만 5000원에 판매하던 귤 한 박스가 4만 원이 넘어가는 것을 보고 발길을 돌렸다”고 말했다. 정 씨는 시장에서 구매한 작은 콩잎 봉지 하나만 쥐고 시장을 떠났다.

상인들은 코로나19 이후 제사 문화도 바뀌어 이중고를 겪고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손 모(78) 씨는 “100명이 가격을 물으면 10명이 살까 말까 한 상황”이라며 “코로나 이후로 제사를 없앤 집이 많다던데 경기도 안 좋으니 매출이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5분의 1 이하로 크게 줄었다”고 말했다. 손 씨는 가격을 묻고 자리를 뜨는 손님을 보내고 한산한 거리를 지켜봤다.

전통시장을 살리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정식 (사)중소상공인살리기협회장은 “전통시장 살리기 대책으로 많이 사용되는 온누리상품권의 경우 5만~10만 원 정도 목돈을 마련해 상품권으로 전환하는 경우가 많은데 요즘같은 고물가 시대에는 그마저도 마련하기 어려워하는 시민들이 많다”며 “적은 돈이라도 전통시장에서 물건을 사면 캐시백 해 주는 등 상인들과 시민들을 위한 섬세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양보원 기자 bogiz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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