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다 하다 딸 부고까지… 더 악랄해진 보이스피싱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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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성 앱 주소 포함 문자·카톡
대량 전송해 개인정보 빼앗아
청첩장·택배 문자·카드 결제 등
스미싱 범죄 교묘하고 은밀해져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이지민 에디터 mingmini@busan.com

‘저의 딸이 오늘 저녁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났기에 삼가 알려드립니다.’ 지난 주말 한밤중 권 모(45) 씨는 가슴이 덜컹 내려앉았다. 친한 지인이 자녀를 잃었다는 부고 문자를 보냈기 때문이다. 권 씨는 지인이 직접 보낸 문자여서 의심할 생각도 못 했다. 문자에는 딸의 부고와 함께 출처가 불분명한 인터넷 링크 주소가 걸려있었다. 상심이 클 지인에게 바로 연락하는 게 실례라고 생각해 권 씨는 링크를 누르지 않았다.

하지만 그 선택으로 권 씨는 다음 날 안도할 수 있었다. 새벽 일찍 ‘문자 링크를 절대 누르면 안 된다’는 연락을 지인으로부터 받고 나서였다. 권 씨가 문자 속 링크를 눌렀으면 개인정보가 고스란히 범죄 조직에게 넘어갈 뻔했다. 안타깝지만 이 문자를 받은 사람 가운데 피해자가 4명 나왔다.

최근 스미싱을 필두로 한 보이스피싱 범죄가 더욱 교묘하고 은밀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스미싱은 문자 메시지와 피싱의 합성어로, 악성 앱 주소가 포함된 휴대폰 문자 메시지나 카카오톡 메시지를 대량 전송해 이용자가 해당 주소를 클릭하도록 유도하는 범죄수법이다.

과거 무차별적으로 피해자를 찾던 보이스피싱 조직은 최근에는 각종 개인정보를 수집해 개인 맞춤형 문자를 보내며 피해자의 돈을 노릴 정도로 진화했다. 이른바 ‘김미영 팀장’으로 대표됐던 보이스피싱 수법은 옛말이 됐다.

부고나 청첩장을 가장한 스미싱 문자까지 만들어 돌리는 등 인간 심리 허점까지 파고드는 행태도 보인다. 또 최근 스미싱 범죄는 극소수 피해만 낳는 것을 넘어 피해자 휴대전화 정보를 타고 또 다른 피해자를 찾아 문자가 전파되는 다단계 식 피해마저 양산하고 있다.

권 씨의 경우도 도미노처럼 스미싱 문자가 전파된 사례였다. 권 씨보다 며칠 일찍 같은 부고 문자를 받은 박 모(52) 씨는 문자 내 링크 주소를 클릭하는 바람에 전화번호 등 개인정보가 깡그리 유출됐다. 박 씨는 링크 클릭 후 자신 전화번호로 딸의 부고 문자가 지인들에게 전송된 사실을 확인하기도 했다.

권 씨는 “어린 딸이 세상을 떠났다는 문자를 받으니 지인에게 사실 여부를 확인할 생각조차 나지 않더라”면서 “누군가의 자녀 생명까지 범죄에 이용하는 시대가 됐다고 생각하니 분노마저 치민다”고 전했다.

실제 보이스피싱 범죄 조직은 데이터 수집 기술이 발달한 점을 십분 활용하는 행태를 보인다. 부고나 청첩장을 가장한 스미싱 문자는 물론 카드 결제, 해외 직구 등을 가장한 스미싱 범죄도 횡행하고 있다. 계절이나 시기에 따라 범죄 방식도 빠르게 바뀐다. 연말에는 건강검진이 많아진다는 점을 노려 건강보험공단 알림 문자를 악용한다거나 설 명절을 앞둔 요즘은 택배 문자를 빙자한 스미싱 문자가 시도되는 식이다.

최근의 스미싱 범죄는 탈취한 개인정보를 통해 대출, 소액결제 등 금융 피해를 낳는 사례도 적지 않다. 지난해 부산에서는 ‘엄마 나 폰 고장났어’ 라는 문자를 받은 한 여성이 인터넷 주소를 클릭했다가 개인정보가 유출돼 큰 피해를 입었다. 범죄 조직이 여성의 개인정보로 2750만 원의 대출을 받았기 때문이다. 부산경찰청에 따르면 스미싱 발생 건수는 2022년 51건에서 지난해 116건으로 무려 2배 이상 늘었다.

부산경찰청 관계자는 “악성 앱 활용 방법이 점차 교묘해지고 있으니 지인의 문자라 해도 절대 문자 내 인터넷 주소를 클릭하지 말고 당사자에게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변은샘 기자 iamsa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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