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새 ‘되팔러’ 신고 12배… 공연예술계 ‘암표 전쟁’ 골머리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인기 공연 티켓 웃돈 천정부지
50년 된 낡은 법 ‘온라인’ 제외
‘매크로’ 적발 한계… 대책 필요
해외에선 관련 범죄 강력 처벌

공연·문화예술계가 암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신고된 공연 암표 건수는 2020년 359건에서 2022년 4244건으로 2년 새 무려 11.8배 증가했다. 부산일보 DB 공연·문화예술계가 암표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신고된 공연 암표 건수는 2020년 359건에서 2022년 4244건으로 2년 새 무려 11.8배 증가했다. 부산일보 DB

암표 문제로 공연 티켓을 전부 취소했던 가수 장범준이 2월 콘서트에 NFT(대체불가능 토큰) 티켓을 도입한다. 인기 가수의 공연 티켓을 선점한 뒤 웃돈(프리미엄)을 붙여 재판매하는 이른바 ‘리셀러(reseller)’들이 활개를 치자 직접 칼을 빼든 것이다.

콘서트·뮤지컬·연극 등 한국 공연 산업 전반에 퍼진 암표 문제가 날이 갈수록 심각해지고 있다. 티켓 가격을 수십 배까지 부풀려 판매하는 데다 사기 피해까지 잇따르지만, 관련 법은 여전히 미비한 실정이다. 공연·문화예술계에선 ‘암표와의 전쟁’을 끝내려면 시대에 맞게 법을 손질해 대응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암표 기승에 공연계 ‘골머리’

암표 가격은 인기 공연일수록 천정부지다. 지난해 열린 걸그룹 블랙핑크의 대만 현지 공연은 암표 최고가가 1700만 원까지 치솟았다. 인기 가수 임영웅의 전국 투어 콘서트 VIP 가격은 16만 5000원이었지만, 온라인에 정가의 30배가 넘는 500만 원에서 550만 원에 암표가 올라오기도 했다. 지난달 열린 피아니스트 임윤찬 연주회는 R석 기준 정가 15만 원이었지만, 인터넷 중고거래 사이트엔 10배에 달하는 150만 원짜리 암표가 나와 기승을 부렸다.

암표 피해는 해마다 큰 폭으로 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부와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공식 신고된 공연 암표 건수는 2020년 359건에서 2022년 4244건으로 2년 새 무려 11.8배 증가했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가 2023년 공연 티켓 예매를 한 전국 남녀 572명을 설문 조사한 결과 19~29세 32.8%가 “암표 구매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30~39세·40~49세는 각각 25%가 암표 구매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문제는 암표를 적발해도 처벌할 충분한 법적 장치가 없다는 점이다. 경범죄 처벌법상 오프라인 암표 거래에 대한 벌금은 최대 20만 원에 불과하다. 암표 규제 관련 법은 50년 전 만들어진 그대로다. 암표 매매 금지 장소에 ‘역, 나루터, 정류장’은 있지만 암표 매매의 온상인 ‘온라인’이 없는 시대착오적인 문제도 있다. 이연욱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 사무국장은 “얼마 전에 티켓 리셀 사이트를 공정위에 신고했지만, 법적으로 할 수 있는 게 없다는 답변을 받아 허탈하다”고 말했다.


가수 장범준이 이달 진행하는 공연 티켓을 NFT로 발행한다. 버스커버스커 제공 가수 장범준이 이달 진행하는 공연 티켓을 NFT로 발행한다. 버스커버스커 제공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얍 판 츠베덴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 연주회.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피아니스트 임윤찬과 얍 판 츠베덴 서울시립교향악단 음악감독 연주회. 서울시립교향악단 제공

■암표 처벌 규정 역부족

지난해 2월 국회 문턱을 넘은 암표상 처벌 규정은 오는 3월 22일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이 역시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엔 역부족이란 지적이 나온다. 공연법 개정안 신설 규정은 티켓 예매 시 자동 반복 입력 프로그램(매크로)을 이용해 티켓을 선점한 후 이를 웃돈을 얹어 되팔 경우 부정 판매로 본다. 부정 판매에 해당되면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그러나 이 사무국장은 “매크로 티켓을 적발하는 자체가 쉽지 않다”고 지적했다. 이종현 한국대중음악공연산업협회 회장 역시 최근 국회 공청회에서 “(웃돈의 규모 등이 명확하지 않는 이상) ‘부정 판매’라는 문구 자체가 애매하기 때문에 암표 문제가 계속 발생할 것”이라고 봤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국내에선 가수들이 직접 암표와의 전쟁에 나선 상태다. 아이유와 성시경, 임영웅, 장범준, 다비치 등은 자신들의 콘서트를 앞두고 불법 거래 티켓이 기승하자 암표상을 적발하는 등 암표 근절에 앞장서주길 당부했다. 한 가요기획사 관계자는 “불법거래 의심 구매의 경우엔 강제 취소와 소명을 보내기도 한다”며 “하지만 이렇게 적발하는 건 한계가 있어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말했다.


NFT 티켓. 모던라이언 제공 NFT 티켓. 모던라이언 제공

■캐나다·대만 등…해외는 어떻게

해외에선 일찌감치 관련 법규를 손질해 암표 문제에 대응하고 있다. 한국음악레이블산업협회(이하 음레협)가 최근 발표한 ‘암표 구제에 관한 해외 사례 조사 보고서’를 보면 대만은 암표 적발 시 정가의 10배에서 50배에 해당하는 벌금을 부과한다. 특히 컴퓨터 조작 등 부당한 방법으로 티켓을 구매하다 적발되면 3년 이하의 징역, 300만 타이완달러(약 1억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을 매긴다.

캐나다는 2차 판매에 대해 입장가의 50%를 초과할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를 어길 시엔 5만 캐나다 달러(약 5000만 원) 또는 2년 미만의 징역을 받는다. 벨기에는 티켓 원가보다 높은 가격으로 재판매하는 것을 금지하고, 적발 시 최대 6만 유로(약 8000만 원)의 벌금을 부과한다.

일본은 콘서트, 스포츠 경기 등 입장권을 정가보다 비싸게 재판매하는 것을 불법 전매로 규정하고 처벌하고 있다. 온라인, QR 코드 등 전자티켓도 모두 해당한다. 적발 시 100만 엔(약 1000만 원) 이하 벌금이나 1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 중국도 티켓 재판매와 데이터 조작 등을 불법으로 규정해 단속하고 있다.

윤동환 음레협 회장은 “해외에선 매크로가 등장하기 시작한 2018년도부터 이미 암표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법 개정을 진행했다”며 “K팝의 발전으로 문화 선진국이라 외치고 있지만, 법은 문화 후진국으로 범죄자들이 불법행위를 할 수 있는 무법지대로 전락했다”고 꼬집었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지금까지는 콘진원에서 암표 모니터링을 해왔지만, 올해부터는 문체부에서 직접 모니터링할 예정”이라고 했다.


남유정 기자 honeybee@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