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을 합의부에… 스텔라데이지호 선고 무효될 뻔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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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주 업무상 과실치사 선고 직전
부산지법 재판부 배당 오류 발견
선고 기일 추가 재정합의로 무마
그대로 선고 땐 상급심 파기 사유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 등 미수습 가족들이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판결을 촉구 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 등 미수습 가족들이 지난해 12월 20일 오후 부산 연제구 부산지방법원 앞에서 책임자에 대한 엄중한 판결을 촉구 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강선배 기자 ksun@

법원이 2017년 대서양에서 침몰해 선원 22명이 실종된 스텔라데이지호 사고와 관련해 재판부를 잘못 배당한 사실이 뒤늦게 드러났다. 부산지법 형사단독부가 맡아야 할 사건을 형사합의부가 진행하는 어이없는 실수가 발생한 것이다. 법원은 선고 직전 해당 문제를 파악해 바로잡았지만, 법조계에선 “만약 그대로 선고가 났다면 항소심에서 파기 사유가 되는 중대한 잘못”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부장판사 장기석)는 지난해 12월 20일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스텔라데이지호 선사 폴라리스쉬핑 대표 김완중(67) 씨 등 임직원 7명에 대한 결심 공판을 열었다. 검찰은 김 씨에게 금고 5년, 나머지 임직원 6명에게는 금고 3~4년을 구형했다.

지난해 5월 1일 첫 공판 기일을 시작으로 총 5차례 공판을 진행한 재판부는 이날 변론을 종결하고 선고 기일만을 남겨뒀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26일 재판부는 다음 해인 1월 24일 공판을 한 차례 더 열겠다고 밝혔다. 뒤늦게 변호사를 통해 이 같은 사실을 접한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 등 미수습자 가족들은 부랴부랴 부산으로 내려와야 했다. 미수습자 가족은 대부분 서울, 경북, 전남, 부산 등 전국 각지에 거주하며 모든 공판에 참석해 왔다.

추가 공판이 열린 것은 법원이 처음부터 단독 재판부에 재판을 맡기지 않은 오류를 바로잡기 위해서다. 부산지법은 지난달 24일 공판에서 이 사건을 단독 재판부에 재배당하지 않고 지금까지 재판을 진행해 온 합의부가 심리를 진행하겠다고 선언하는 ‘재정 합의’ 결정을 밝혔다. 법원이 재정 합의라는 방법을 써 오류를 봉합하려 한 것이다. 재정 합의는 판사 1명이 심리하는 단독 재판부 사건을 3명의 판사가 심리하는 합의부로 배당하는 절차다.

법원 예규에 따르면 △선례나 판례가 없는 사건 △선례나 판례가 서로 엇갈리는 사건 △사실관계나 쟁점이 복잡한 사건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 중대한 사건 등은 합의부로 재배당할 수 있다. 법원은 스텔라데이지호 재판이 ‘중대한 사건’이어서 재정 합의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스텔라데이지호 사건을 합의부에 배당하려면 처음부터 재정 합의 결정을 내렸어야 했다. 형사사건은 1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고하는 사건은 합의부, 그 이하의 사건은 단독판사가 진행한다. 김 씨의 경우 업무상과실치사 혐의(5년 이하의 금고, 2000만 원 이하의 벌금)로 단독부 관할이다. 이 사건은 명백한 단독부 관할이지만 처음부터 합의부가 진행한 명백한 ‘배당 오류’였다. 재판부는 지난달 24일 공판에서 이대로 선고가 날 경우 항소심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며 배당 오류를 시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조계에선 선고까지 갔다면 심리 권한이 없는 재판부가 심리한 것으로 상급심에서 파기 사유가 되는 중대한 실수라고 지적한다. 통상적으로 법원 접수계에 사건이 접수되면 법원 직원이 기준에 따라 사건을 합의부나 단독 재판부로 분류한다. 분류된 사건은 각 법원 수석부장판사 결재를 받아 전자 시스템에 따라 자동 배당된다. 직원이 사건을 잘못 분류하더라도 수석부장판사나 재판부가 바로잡아야 하는데 그렇지 못했다. 부산의 한 변호사는 “만약 그대로 선고가 났다면 피고인이 선고 자체에 대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는 사안”이라며 “뒤늦게 발견한 것은 다행이지만 자주 일어나지 않는 법원의 큰 실수다”고 밝혔다.

부산지법 관계자는 “재정 합의 결정 없이 그대로 판결했다면 항소심에서 파기 사유가 될 수 있다”며 “다만 합의부가 진행한 사건에 대한 증거나 조사 내용조차 무효가 되지는 않고 해당 내용을 바탕으로 단독 판사가 다시 심리를 진행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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