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금력·해운업력 있는 기업이 인수하라"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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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MM 매각 불발 반응과 전망

노조·시민단체 “전폭 환영” 표명
“해운업 판 다시 짜는 계기 되기를”
국제 해운동맹 재편 대응 급선무
국적 선사 컨소시엄 등 대안 부상

HMM 매각을 둘러싼 KDB산업은행·한국해양진흥공사와 하림그룹 간 협상이 최종 결렬되면서 향후 재매각 시기와 방법에 관심이 쏠린다. 중국 예텐항에서 만선 출항하는 2만 4000TEU급 HMM 알헤시라스호. 부산일보DB HMM 매각을 둘러싼 KDB산업은행·한국해양진흥공사와 하림그룹 간 협상이 최종 결렬되면서 향후 재매각 시기와 방법에 관심이 쏠린다. 중국 예텐항에서 만선 출항하는 2만 4000TEU급 HMM 알헤시라스호. 부산일보DB

HMM은 2013년 유동성 위기에 빠진 뒤 2016년 채권단 자율협약, 2018년 정부의 공동 관리 등을 거쳐 경영 정상화에 성공했다. 이후 민영화가 추진됐고 지난해 7월 채권단은 공동 매각을 개시했다. 인수 협상대상자로 선정된 하림그룹과 협상 기한인 지난 6일까지 ‘막판 줄다리기’를 벌였지만 결국 매각은 불발됐다. 7개월 동안 이어진 HMM 매각은 원점으로 돌아갔지만, HMM 앞에는 풀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국제 해운업에서 HMM의 경쟁력을 높일 방안이 필요하다고 업계와 전문가는 입을 모은다.

■노조·시민단체 “전폭적으로 환영”

하림그룹의 HMM 인수를 반대해 온 노조와 부산지역 해양시민단체 등은 일제히 매각 무산 소식에 반색했다. HMM해원연합노동조합(해원노조)과 전국사무금융노동조합 HMM지부(육상노조)는 7일 공동 입장문을 내고 “기업의 책임 경영을 위해 HMM 민영화는 필요하지만 3면이 바다인 우리나라에서 해운은 물류를 책임지는 국가 기간산업이기에 일정 부분 정부 관리도 있어야 한다”면서 “그러나 하림은 국가의 최소한의 감시조차 거부했고 자금 조달 계획 또한 부실해 ‘제2의 한진해운 사태’를 초래할 수 있다는 업계의 우려가 계속됐다”고 전했다.

해원노조 전정근 위원장은 “해운업계의 절실한 목소리가 반영된 KDB산업은행과 한국해양진흥공사의 이번 결정은 대한민국 해운산업의 명운을 바꿨다”면서 “이번 매각 무산을 계기로 해양수산부와 해진공이 국내 해운업 밑그림을 다시 짜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강조했다. 해원노조는 7일 사측과 2차 조정 회의를 여는 등 파업 절차를 밟았지만 하림의 HMM 인수 불발로 파업을 철회했다.

부산항을 사랑하는 시민모임, 부산항발전협의회, 해양수산 관련 지식인 1000인 모임 등 부산 해양 관련 시민단체도 이날 HMM 매각 결렬 관련 긴급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 단체는 매각 무산 소식을 환영하면서도 향후 재매각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졸속 매각 대신 제대로 된 기업이 인수에 참여할 수 있도록 산은과 해진공의 잔여 영구채를 처분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시민단체는 “대규모 자금 동원력과 해운 업력을 가진 기업이 인수할 수 있게 민영화 방안을 새로 짜야 한다”면서 “코로나19 이후 운임 하락과 침체기가 예상되는데 이때 제대로 경쟁력을 높이지 못하면 HMM은 순식간에 적자의 늪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새 주인 못 찾은 HMM의 운명은

전문가들은 HMM의 경쟁력을 끌어올릴 수 있는 인수자를 찾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국내 유일 원양 해운 선사인 HMM이 세계 해운시장에서 꾸준히 경쟁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HMM 매각의 궁극적인 목적이라는 것이다. 서강대 전준수 명예교수는 “산은이 보유한 지분을 우선 해진공에 매각한 뒤, 자금 여력이 있는 국적 선사 2~3곳들로 컨소시엄을 구성해 인수하도록 하는 방안을 고려해 볼 만하다”면서 “같은 업종인 만큼 중장기 철학과 목표를 가지고 HMM을 성장시킬 수 있는 가장 바람직한 방안”이라고 말했다.

업계는 HMM이 곧바로 재매각 절차를 밟지 않을 것으로 본다. 산은과 해진공의 잔여 영구채 전환도 올해와 내년 줄줄이 예고된 데다, 전 세계적으로 해운 업황이 불확실한 탓이다.

가장 급한 건 국제 얼라이언스(해운 동맹) 재편에 대응하는 것이다. 모든 선사는 각자 해운 동맹을 맺고 상호 물류를 실어주며 경쟁력을 높인다. HMM이 속한 해운 동맹은 ‘디 얼라이언스’다. 하지만 이 동맹에서 가장 덩치가 큰 세계 5위 선사 하팍로이드(독일)가 탈퇴 후 2위 선사 머스크(덴마크)와 내년 2월부터 새로운 동맹을 맺겠다고 밝히며 전 세계 해운 동맹의 연쇄 지각 변동이 예고된 상태다. 예멘 후티 반군이 홍해를 지나는 선박을 무차별 공격하면서 시작된 홍해 발 물류 대란도 문제다. 새 주인을 맞지 못한 HMM은 현재 경영진의 판단만으로 우선 이 같은 파고를 넘어야 할 처지에 놓였다.

한국해운협회 관계자는 “이번 매각 결렬을 통해 HMM이 한 단계 더 높은 경쟁력을 갖추는 계기가 되었으면 한다”면서 “홍해 발 물류 대란, 국제 항만 동맹 개편에 대처하는 것이 가장 시급한 문제”라고 말했다.


이상배 기자 sangbae@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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