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지역인재전형 확대, 지역 교육 지형 바꿀까 [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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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입시 업계가 들썩이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사진은 8일 서울 한 학원에 부착된 의대 입시 홍보 현수막. 연합뉴스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에 입시 업계가 들썩이는 조짐이 보이고 있다. 사진은 8일 서울 한 학원에 부착된 의대 입시 홍보 현수막. 연합뉴스

서울 강남구 대치동 휘문고 길 건너편 S학원 인근. 오후 늦은 시간, 고급 승용차들이 비상등을 켠 채 도로 3~4차선을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거하고 있다. 어떤 이는 그냥 우두커니 차를 세운 채 차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 학원에서 나온 자녀들을 다음 학원으로 데려다주기 위해서다. 의대 증원이 발표된 다음 날인 7일, 이 일대는 대형학원의 ‘의대 진학 설명회’가 잇따라 열리면서 학부모와 학생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부산에서 고등학교 재학 중인 딸과 함께 2년째 방학마다 대치동 학원가를 찾는다는 송 모 씨(48)는 “의대 정원 확대가 발표되고 나서, 학부모들의 눈빛이 달라졌다”면서 “완전 장난 아니다”라고 말한다. 송 씨는 “일타강사가 몰린 대치동 학원가에 오랫동안 단련된 서울 학생들을 보고 있으면, 지방 학생이 정시로 상위권 대학에 가는 것이 가능한지 의문이 든다”고 토로했다.


■‘의대 증원+지역인재전형 확대’ 파장 폭발적

정부는 지역 의료를 살리기 위해 2025년도부터 지역 국립대와 정원 50명 이하 미니 의대를 중심으로 의대 정원을 2000명으로 대폭 늘리고, 신입생의 60%까지 지역인재전형을 확대하기로 했다. ‘비수도권 위주 의대 정원 2000명 확대’와 ‘지역인재전형 비중 60% 이상 확대’가 동시에 결합되면서 의대 지역인재전형 선발 인원이 현재 1068명에서 최소 2배가량인 2018명으로 급증할 예정이다. 현재 지방권 의대 27곳은 전체 모집정원 2023명의 52.8%인 1068명을 지역인재전형으로 선발하는 추세를 감안하면 최소 2배 이상 급증하는 셈이다. 대한민국에서 파급력이 가장 큰 입시 정책의 변화로 엄청난 후폭풍이 불고 있다. 벌써부터 지역인재전형을 노리고 중학생들의 지방 전학 얘기마저 나올 정도다.


정부가 내년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기로 한 가운데 의대 입시를 문의하는 직장인과 대학생의 문의가 벌써 쇄도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의 한 학원에 부착된 의대 입시 홍보 현수막. 연합뉴스 정부가 내년 입시부터 의대 정원을 2000명 늘리기로 한 가운데 의대 입시를 문의하는 직장인과 대학생의 문의가 벌써 쇄도하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의 한 학원에 부착된 의대 입시 홍보 현수막. 연합뉴스

■지역인재전형 비율 계속 높아질 듯

현재까지 지역인재 입학 비율을 60%로 높였던 지역 대학들이 향후 80%까지 올릴 가능성도 점쳐지고 있다. 실제로 부울경 일부 의대의 경우 지역 출신 신입생 비중을 전체 정원의 80% 이상으로 확대하는 방안도 검토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지역사회에서는 의대 증원분을 지방 의대로 집중할 것과 증원 인원 100%를 지역인재전형으로 선발해야 한다고 요청하는 상황이다. 눈앞에 닥친 지역 의료체계 붕괴에 대처하기 위한 현실적인 대책이라는 판단이다. 의대 지역인재전형 규모는 향후 더욱 확대될 전망이다.

지역 A 의대 입학 업무를 담당했던 K 교수는 “졸업 후 지역에 남는 것은 지역인재전형 학생들”이라고 단언한다. K 교수는 “의대생 졸업 이후 경로에 대한 통계를 내고 있다”면서 “지역인재전형 학생들은 졸업 후 20~30% 외에는 대부분 지역에 남지만, 수도권 출신들은 20~30%를 빼고는 서울로 돌아간다”고 밝혔다. 지역 출신이 지역에 남을 확률이 통계적으로도 훨씬 높다는 결론이다. 현실적으로 인턴과 레지던트를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지역에서 학생을 선발할 수밖에 없고, 지역 의료 서비스를 위해서는 지역인재전형이 긴요한 정책임을 증명하는 셈이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월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조규홍 보건복지부 장관이 2월 6일 정부서울청사에서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 발표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역인재전형 100% 확대 가능성은

K 교수는 “전국 경쟁으로 뽑힌 학생과 지역인재전형으로 입학한 학생들은 내신 등급이 0.3 정도 차이가 나지만, 의대 교육에는 큰 차이가 없다”라고 단언한다. 하지만, 일부 지역에서 나오는 100% 지역인재전형은 입시 체계상 불가능하다는 지적이다. 대학 입학에서 최저등급을 요구하는데, 수시는 물론이고 정시에서도 이를 맞추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지역 의대 관계자들은 대학 자율로 맡기더라도 지역인재전형 비율은 80%가 최대치라고 조심스럽게 예측했다. 지역 의대 관계자는 “상당수 지역 의대가 벌써부터 지역인재전형 입학 비율을 60% 수준으로 확대하고 있고, 의대 증원과 함께 이 비율도 높아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지역 학생에게 기회 될까

부산 지역 고등학교 입시 담당 교사들은 “의대 입시를 준비하는 지역 학생들에게는 확실히 기회가 늘어난다”고 입을 모은다. 의대 정원이 2000명 늘어나면 현재 서울대·고려대·연세대 이공계 합격생의 78.5%가 의대 진학 가능권에 속하게 된다. 신입생 10명 중 8명은 의대에 지원해도 합격할 수 있다는 뜻이다. 지역 고등학교를 졸업한 비수도권 합격생의 경우 그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다.

부산 S고 입시 담당 H 교사는 “2000명 정원이 늘어나고, 지역인재전형까지 확대되면서 지금 고3에 올라가는 학생들은 전국 일반계 고등학교에서 최소 한 명씩은 의대에 더 들어간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서 “지역 학생은 전국보다는 지역 내부에서의 경쟁이 훨씬 수월하다”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당장은 올해 새학기부터 수도권 상위 대학 신입·재학생의 중도 이탈이 급증하고, N수생이 대거 몰리면서 최저 등급 컷이 높아질 우려도 나오고 있다. 지역 대학 입학처장을 역임했던 W 교수는 “지역 공대의 몰락, 2024년도 합격생의 등록 포기 등 장기적으로 논란은 불가피하겠지만, 지역 의료 공백 해소와 국가균형발전 차원에서는 당근책이 될 수도 있다”고 전망했다.


의사단체가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에 반발하면서 '총파업' 등 집단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이동하는 의료진. 연합뉴스 의사단체가 정부의 의과대학 입학정원 확대에 반발하면서 '총파업' 등 집단행동을 준비하고 있다. 사진은 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서 이동하는 의료진. 연합뉴스

■공공기관 지방 이전 등 가속화 계기

지역에서는 지역 의대 중심의 의대 증원과 지역인재전형 비율 확대가 지역균형발전 차원에서 도움이 될 것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다. 의대 증원으로 청년인구가 늘고, 의료체계가 갖춰지면 지역 발전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한다.

수도권에서 지역으로 이전했던 공기업과 공공기관의 ‘기러기 부부’들에도 미세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매주 금요일 오후마다 KTX에 몸을 싣고 서울 집으로 가던 분위기에서 서울 집을 정리하고 지역으로 결합하는 추세가 두드러질 전망이다. 또한, 자녀를 가진 공기업 직원의 경우 근무처를 서울본부에서 지역 본사 우선 지원으로 흐름이 바뀔 전망이다. KDB산업은행 등 공공기관 직원들이 지방 이전에 반대하거나, 단독 부임하는 속내도 결국 ‘자녀 교육 환경’이기 때문이다. 지역인재전형에 지원하려면 고등학교를 해당 지역에서 졸업해야 가능하다. 3년 뒤인 2028학년도부터는 중학교부터 의대 소재 지역에서 다녀야 한다. 지역 소재 공공기관의 경우 가족 전체가 자연스럽게 지역 본사 소재지로 옮길 가능성이 한층 높아진 상황이다.

의대 지역인재전형 확대가 이런 수도권 중심의 교육 열기에 미세하게나마 균열을 낼 수 있다는 바람도 생겨나고 있다. 또한, 강남 학원가를 중심으로 자녀만 지역 중고교로 진학시키는 ‘지방 유학’ 문의도 쇄도하고 있지만, 자녀 교육 특성상 쉽지는 않을 전망이다. 지역 학원 관계자는 “비수도권 학생, 특히 의대가 밀집한 부울경 학생들이 의대를 진학하기에 수도권보다 매우 유리한 구도가 됐다”며 “부모 직장 등 조건이 갖춰지면 초등학교 때부터 아예 지방으로 이주하는 가족이 늘 수 있다”고 내다봤다. 이 같은 흐름은 국가균형발전에도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과 수도권 인구의 지역 분산이 자연스럽게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비치된 휠체어. 연합뉴스 8일 서울의 한 대학병원에 비치된 휠체어. 연합뉴스

■지역 공공기관 지역균형인재 취업도 노려볼 만

의대 지역전형 확대 정책 발표에 앞서 비수도권 공공기관이 신규 직원을 뽑을 때 전체 채용 인원 중 35%를 지역인재로 선발하도록 하는 내용의 ‘지방대학 및 지역균형인재 육성에 관한 법률’도 국회를 통과되면서 지역균형발전에 청신호로 작용하고 있다. 앞으로 비수도권 공공기관의 지역인재(지역대학 졸업자 또는 졸업예정자) 채용 비율을 35%로 의무화했다. 상시 근로자 300인 이상 기업에 대해서도 지역인재 채용을 독려하도록 하는 규정을 넣었다. 지방대 출신 취업 준비생들의 공공기관 취업과 이로 인한 정착 가능성이 한층 높아질 전망이다.

문제는 대학 입학 단계에서 거점 국립대와 서울 중위권 대학에 동시 합격하면, 서울로 가는 추세를 막기는 역부족인 상황이다. S 교사는 “10년 이상 고3 제자와 학부모들을 보고 있으면, 4~6년 뒤에 지역 공공기관 입사를 염두에 두고 대학을 결정하지는 않는다”면서 “공공기관 지역인재 전형은 지역 출신 대학생들이 고향에 남을 수 있는 정책으로 생각된다”라고 설명했다.


8일 서울 목동 학원가에 부착된 의대 입시 홍보 현수막. 연합뉴스 8일 서울 목동 학원가에 부착된 의대 입시 홍보 현수막. 연합뉴스

■다양한 우려와 기대

서울 상위권 대학은 물론이고, 지역에서도 이공계 출신들의 잇따른 이탈이 예상된다. 특히 지역 대학의 이공계 우수 인재들이 대거 의대로 흡수될 경우 자동차·조선 관련 제조업 위주의 부울경 산업 현장을 주도할 인재를 찾기 어려울 우려가 높다. 일각에서는 의사만 양성하고, 대학 이공계 R&D 예산은 축소하는 국가에 과연 미래가 있느냐는 의문마저 제기할 정도이다. 의대 증원으로 인한 이공계 이탈 현상은 불을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또한, 이번 의대 증원 확대 정책과 관련해 윤석열 정부가 던지는 메시지의 불명확성도 우려를 증폭시킨다. 과연 심각한 지역의료체계 복원과 지역균형발전 차원인지, 혹은 정권마다 매번 총선을 앞두고 내세우는 여론 호도용 정책인지도 모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청년세대의 수도권 쏠림 탓에 부산을 비롯한 비수도권의 인구 감소가 심각한 상황에서는 바람직한 측면도 배제하기 어렵다. 의사 전문직의 지역 정착과 지역의료체계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된다면, 지역 주거 환경도 한층 높아질 것은 분명하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혁신도시 조성과 공공기관 지역 이전 정책 등도 한층 힘을 받을 것이라는 기대마저 갖게 된다. 지방의대의 증원과 지역인재 채용 확대가 국가균형발전과 수도권 인구집중 완화, 지역 회생의 마중물 역할을 하기를 바란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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