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G선상의 아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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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계성 수필가

G선상의 아리아는 가장 굵은 G선의 음율만으로 완성된,
장중하면서도 애조 띤 독창곡이다.
시인의 딸은 그 지순이라는
마음의 가장 굵은 선 하나를 선택하여
어떤 삶 하나를 연주해 마쳤다.

그날은 맨드라미꽃이 비를 맞고 선 어느 오후였고, K 시인은 사위 장례식에 참석하고 돌아온 날이었다. K 시인은 담담히 그 딸과 사위에 대한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시인의 딸은 스무 살 때 운명적인 남자를 만났는데, 목발을 짚고서야 겨우 걸음을 옮기는 청년이었다. 청년은 열 살 때, 성난 어른들이 총을 들고 고함을 지르며 뛰어다니는 5·18 광주의 어느 거리에 서 있었다. 어떤 총알이 날아와 아이의 허리를 관통했다. 아이는 아무 의도도 없이, 다만 흥분과 증오로 가득 찬 미친 현장에 우연히 서 있었을 뿐이었다. 그날로 아이는 두 발로 뛰어다닐 수 없게 되었고, 누군가가 말을 걸어 주기만을 기다리는 수줍은 청년이 되었다.

시인의 딸은 이 우울한 청년에게 처음 친절한 말을 걸어 준 명랑한 아가씨였다. 그후 청년의 유일한 친구가 되었고, 세월이 흐르면서 이 불행한 청년의 삶의 일부가 되었다.

그러나 늘 허리띠를 잡고 늘어지는 불행은, 청년의 허리 병을 악화시켜 기어이 그를 휠체어에 앉혀 버렸다. 이제 이 청년에게 필요한 것은 휠체어를 밀어주며, 그 잔인한 운명과 같이할 사람이었다. 하지만, 청년은 이미 사랑하는 여자와 육체적 사랑도 나눌 수 없었고 아이도 생산할 수 없는 몸이었다.

딸은, 이미 인생의 봄과 여름, 그리고 가을을 경험한 어머니에게 이 불행을 짊어진 청년과 혼인하겠다고 선언했다. 희생이 타락한 영혼을 수렁에서 구한다는 이야기는, 종교나 낭만주의 문학이 추구하는 비현실적 관념이다. 울면서 말리는 어머니에게, 딸은 이 외로운 청년을 사랑한다며 혼인을 강행했다. 그래서 이 사랑스러운 딸은 평생 시인의 아픈 가슴이 되었다. 살림도 가난하고 아이도 없었지만, 이 청년과 딸은 30여 년간을 한결같이 사랑하는 부부로 살았다.

맨드라미꽃이 막바지에 이를 때쯤, 시인의 딸을 평생 붙잡고 있던 청년이 세상을 떠났고, 이제 흰 머리카락이 잡히기 시작하는 딸은 혼자가 되었다. 이제 딸은 어떻게 살아야 할까?

이 이야기를 들을 때, 내 귀에는 저 솔베이지의 노래가 자꾸 되풀이 되어 맴돌았다. 한 남자만을 조건 없이 사랑했다는 사실에서, 두 여자는 동일했다. 젊은 여인이 사회적, 물질적 성취나 성적 욕망을 포기한다는 것은 현실적 삶을 포기한 것과 같을 것이다. 아찔하도록 설레고 감미로운 젊음과 고혹적인 쾌락을 휴지처럼 구겨서 버릴 수 있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을까? 백치(白癡) 같아 분별하거나 셈할 줄도 모르는, 지순(至純)함이라는 단 하나의 마음밖에 없을 것이다.

여러 개의 현으로 온갖 희노애락을 표현하는 현란한 바이올린이, 단 하나의 현으로 오직 하나의 주제만 노래한다면 그것도 음악이 될까? G선상의 아리아는 가장 굵은 G선의 음율만으로 완성된, 장중하면서도 애조 띤 독창곡이다. G선이 울리면 바이올린은 전체가 진동한다. 시인의 딸은 그 지순이라는 마음의 가장 굵은 선 하나를 선택하여 어떤 삶 하나를 연주해 마쳤다. 듣는 내 삶의 바닥조차 진동시키는 장중한 연주였다. 온갖 조건이 따라붙는 시정의 사랑을 보며, 시인의 딸은 무슨 생각을 할까?

삶은 그 내용이 참으로 절실했다고 하더라도, 세월이 흐르면 하나의 이야기에 불과해진다. 서글프게도 이 여인의 이야기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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