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가가 시인 문패 달고 낸 첫 시집 ‘부산’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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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희, 부산 단상 등 41편 묶어

사진가 김홍희가 시인 문패를 달고 낸 첫 시집 <부산>. 지혜 제공 사진가 김홍희가 시인 문패를 달고 낸 첫 시집 <부산>. 지혜 제공

사진가 김홍희는 경계에서 ‘논다’. 논다(play)는 것은 그의 어법인데, 예사롭지 않은 자랑을 섞고 있다. 공자 말에 따르면 놀고 즐기는 것은 아는 것,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있다. <부산>(지혜)은 그런 그의 첫 시집이면서 시집이 아니다. 시와 그 비슷한 시적 산문 등 총 41편이 실렸다. 그중 28편이 지난 2003년 6개월간 <부산일보>에 연재한 ‘풍경이 있는 에세이’에 실렸던 것이다. 이 연재물은 ‘시인 손택수의 글-김홍희의 사진’이라는 빼어난 조합으로 이뤄졌는데, 김홍희는 파격적인 욕심을 내서 ‘포토 단상’을 덧붙였다. 당시 일부 시인 독자들은 “사진가가 사진이나 찍지…”라며 시의 경계를 넘보는 김홍희의 ‘단상’에 신경을 썼다. 그 포토 단상이 이번 시집에 시라는 이름으로 실렸다. ‘황령산’ ‘해운대’ ‘푸조나무’ ‘자갈치시장’ ‘이기대’ ‘영도다리’ ‘서면 1번가’ ‘산복도로’ ‘복천동 고분’ 등 단상은 시집 제목처럼 ‘부산’이란 이름으로 묶일 수밖에 없는 부산 항목의 글들이다.

김홍희는 사진의 연장선상에서 찰나를 궁구하는 철학, 특히 불교를 탐한 적이 있다. 그는 아는 듯 모르는 듯 선적 구절로 독자를 희롱하기도 한다. 그 풍취가 시의 맛을 내는 것이다. 한 번은 고인이 된 시인, 백담사 오현 스님이 “니, 시 쓰제?”라며 등단 문턱까지 그를 끌고 갔다. 그런데 스님이 그의 시 원고를 잃어버리는 바람에 당시 등단 인연이 닿지 않았다. 등단하라는 건지, 하지 마라는 건지, 스님의 복심, 지혜가 알쏭달쏭하다. 스친 그 일로 말미암아 김홍희는 고 송유미 시인의 소개에 힘입어 지난 2019년 계간 <애지>로 등단했다. 사진가가 시인 문패에 애착을 낸 것이다. 잘 쓴다는 소리를 듣는 글도 문패를 달리하면 얘기가 달라진다. 이제 그는 스스로 ‘함정’에 발을 들여놓았다. ‘오리에 무중이니/상무주를 찾는 이여/발밑을 보라’는 그의 한 구절이 무서운 건 그 때문이다.


최학림 기자 theos@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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