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피아노의 몰락?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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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권진원의 ‘나무’(2006년)는 격조 있는 음반이다. 단출한 피아노 반주와 어우러지는 목소리가 깊고도 그윽하다. 수록곡이 죄다 절창인데 그중 ‘피아노’라는 노래는 옛 추억을 상기시킨다. ‘우리 동네 세탁소 앞 빨간 우체통 사이로/ 언제나 들려오던 예쁜 피아노 소리/ 바이엘과 소나티네 하농과 모차르트/ 가난한 우리 동네 예쁜 피아노 소리/ 멋지지 않나요 가진 것 없지만/ 꽃잎과 파란 하늘 사이로 예쁜 피아노 소리.’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기억한다. 1980~90년대 집 거실의 한쪽을 늘 차지하고 있던 피아노를. 동네 아이 10명 중 절반이 엄마 등쌀에 밀려 피아노 학원에 다니던 시대였다. 바이엘과 체르니 같은 교재, 째깍째깍 박자를 알리는 메트로놈 소리, 넓은 건반들을 간신히 두드리던 작은 손. 그런 추억이 서린 악기가 피아노다.

당시 피아노는 자동차와 함께 한국 중산층을 상징했다. 클래식 음악을 향유하려는 전반적인 문화가 있었던 것도 아닌데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현상이었다. 가격도 수백만 원을 호가해서 구입하려면 큰마음이 필요했다. 권진원의 노래처럼 가난한 동네에도 간혹 피아노 선율이 흘렀다. 그 소리에 매혹된 어떤 아이들은 미래의 피아니스트, 그 작은 소망을 꿈꿨을지도 모를 일이다.

국내 피아노 브랜드의 양대 산맥은 삼익과 영창이었다. ‘온 세상을 울리는 맑고 고운 소리~’로 시작하는 TV 광고는 아직도 많은 이의 귓가를 맴돈다. 두 브랜드는 전성기 때 전국 대도시 대리점에서 하루 300대 이상의 피아노를 팔았다. 1977년을 기점으로 계속 늘어난 피아노 판매는 1991년 정점을 찍은 뒤 서서히 줄어들다가 IMF 외환위기 때부터 급감했다.

그런 피아노가 이제는 숫제 애물단지 신세로 전락했다는 뉴스다. 출생아 수가 줄어드는 저출산의 여파로 수요가 급감한 탓이다. 층간 소음도 피아노 수요가 떨어지는 원인으로 꼽힌다. 이런저런 이유로 중고 피아노를 찾는 이는 거의 없다고 한다. 폐기가 수순인데, 이마저도 만만찮다. 워낙 육중하다 보니 전문 업체를 부를 경우 8만~10만 원의 돈을 줘야 한다.

대세는 역시 디지털이다. 피아노 업계도 디지털 악기 개발에서 활로를 찾는다. 감성의 악기인 피아노도 시대 흐름을 피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 피아노를 수강하려는 성인들이 늘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끊긴 꿈을 다시 이으려는 어린 시절의 그들일까. 세상이 아무리 변해도 음악을 향한 순수한 열망까지 지울 수는 없으리라.


김건수 논설위원 kswoo33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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