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영화 정치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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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 정말 그랬어요?” 20대 초반의 남성이 눈시울을 붉히면서 아버지와 통화하거나, 엔딩 자막이 올라오는 극장 한 편에서 참았던 울음을 터트리는 모습이 최근 극장가에 비일비재하다.

지난해 개봉한 영화 ‘서울의 봄’은 젊은 관객들이 쿠데타와 반 쿠데타 주역들의 엇갈린 삶에 동화되면서 ‘심박수 인증 챌린지’ 같은 이벤트까지 등장할 정도였다. 1950년 한국전쟁 이후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가족을 위해 희생한 아버지의 고된 삶과 역경의 모습을 그린 ‘국제시장’(2014년)도 사람들 사이에서 숱하게 회자됐다. 정치 성향에 따라 평가가 나뉘지만, 청년 세대들은 역사책에서나 읽었을 근현대사를 재구성한 영화적 내레이션에 빠져드는 모양새다.

민주화 운동 등을 다룬 ‘변호인’(2013년) ‘택시 운전사’(2017년) ‘남산의 부장들’(2020년) 등 진보 성향의 영화와 건국과 산업화, 안보를 주제로 한 ‘태극기 휘날리며’(2003년) ‘연평해전’(2015년) ‘인천상륙작전’(2016년) 등 보수 성향의 영화가 쏟아지고 있다. 영화 주 소비층인 젊은 세대들은 인스타그램 등 SNS에 관람평을 올리고, 정치에 대한 입장을 공유하고 있다. 영화가 사람들의 정치 인식 수준을 높이는 대중문화의 순기능을 발휘하는 셈이다.

이들 영화 감독들은 한결같이 “정치색을 제외했다”라고 주장하지만, 보수와 진보 정치권은 아이덴티티 형성과 지지자 결집, 표몰이 등을 위해 색깔 논쟁을 확산시키고 있다. 소위 ‘영화 정치’이다.

최근에는 현대 정치사를 조명한 이승만·김대중 전 대통령의 다큐멘터리 영화인 ‘건국전쟁’과 ‘길 위에 김대중’이 이례적인 흥행을 기록하고 있다. 4·10 총선을 앞두고 정치인들도 잇따른 극장행으로 팬덤 형성에 앞장서는 모양새다. 이들 영화는 시대적 상황과 역사적 평가에 대한 논란은 있지만, 한국 사회에서 실제로 존재했던 인물과 사실을 다루면서 파장을 불러일으켰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역사적 사실을 재구성한 영화는 오늘날 정치적 이해관계에 자유로울 수는 없지만, 스토리 그 자체로 평가해야 한다고 비평가들을 말한다. 정치권은 영화 한 편이 나올 때마다 정치 마케팅에 몰두할 것이 아니라, 유권자들이 역사적 사건을 스스로의 관점으로 해석하고, 즐길 수 있도록 기다려 주는 것이 필요해 보인다. 영화는 영화일 뿐이기 때문이다.


이병철 논설위원 peter@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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