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텔라데이지호 20억 기습 공탁, 피해자 가족 또 가슴 쳤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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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 대표 등 피고인 선고 9일 전
피해자 동의 없이 나 홀로 공탁
감형 목적 형사공탁 악용 지적
유가족 “7년간 희생 매도” 반발
실제 공탁금 수령도 40% 불과

지난 7일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의 부산지방법원 앞 집회. 정종회 기자 jjh@ 지난 7일 스텔라데이지호 실종자 가족의 부산지방법원 앞 집회. 정종회 기자 jjh@

선원 22명이 대서양에서 실종된 스텔라데이지호 사건 선고(부산일보 지난 8일 자 2면 등 보도) 직전 피고인이 감형을 목적으로 약 20억 원을 법원에 기습 형사공탁을 진행해 논란이 인다. 피해자 보호를 위해 개정된 ‘형사공탁 특례제도’가 당초 취지와 달리 가해자 구제의 기회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지법 제5형사부(부장판사 장기석)는 지난달 24일 업무상과실치사 등의 혐의로 기소된 스텔라데이지호 선사 폴라리스쉬핑 대표 김완중(67) 씨 등 임직원 7명에 대한 공판을 마지막으로 모든 변론을 종결했다. 선고만 남은 상황에서 피고인 측은 선고기일 9일 전인 지난달 29일 약 20억 원을 법원에 기습적으로 형사공탁했다.

피고인 측의 기습 공탁은 2022년 12월 9일 시행된 형사공탁 특례제도로 가능해졌다. 형사공탁은 형사재판을 받는 피고인이 합의금·손해배상 등의 명목으로 법원에 돈을 위탁하는 제도다. 통상 피고인이 피해자에게 용서받지 못했을 때 공탁금을 맡기면서 ‘반성하고 있고 금전적 보상 의지도 있다’는 의사를 피력하는 수단으로 쓰인다. 형사 합의보다는 효력이 없지만 재판부가 형량을 결정할 때 감경 요소로 작용한다.

재판부는 스텔라데이지호 사건 선고 당시 “유족이 여전히 피고인들의 엄벌을 바라고 있어 공탁에 따른 유리한 정상은 피고인들이 성실히 피해 회복을 할 의사가 있다는 정도로만 제한적으로 반영한다”고 밝혔다.

기존 형사공탁의 경우 공탁서에 피해자의 이름·주소·주민등록번호 등을 반드시 적어야 했다. 하지만 신설된 공탁법 제5조의 2항(형사공탁 특례)에 따라 피해자 인적사항을 모르더라도 사건번호만 알면 공탁이 가능하도록 바뀌었다. 개정안의 취지는 피해자 사생활을 지키고 피해 회복을 돕겠다는 목적이다. 과거 가해자들이 불법적인 수단으로 피해자의 개인정보를 알아내거나 합의를 종용함으로써 발생하던 2차 가해 문제를 막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간단해진 공탁 절차가 피해자를 보호하지 못하고 오히려 가해자를 구제할 기회로 악용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피고인 측은 피해자가 공탁금 수령 거부 의견이나 탄원서를 제출하지 못하도록 선고 직전에 공탁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동의 없는 기습 공탁에 피해자들이 공탁금을 받아 간 비율은 크게 낮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기존 형사공탁의 경우 2022년 12월부터 지난해 11월까지 전국 법원에 접수된 2715건(총 314억 6349만원) 중에 2693건이 출급됐다. 하지만 형사특례공탁은 전체 2만 3861건(총 1402억 5702만 원) 중 절반도 되지 않는 9164건만 찾아갔다. 10명 중 6명은 공탁금을 거부한 셈이다.

또 피해자는 피고인의 공탁금 접수 사실을 인터넷 공고를 통해서만 알 수 있다. 법원 공탁소는 공탁 사실을 형사재판부와 검찰에만 통지한다. 이조차도 우편으로 이뤄져 수령까지 상당 시간이 소요된다.

스텔라데이지호 미수습 가족들은 기습 공탁에 크게 반발했다. 스텔라데이지호 대책위원회 허영주 공동대표는 “사랑하는 가족이 실종 후 7년 동안 몸과 마음이 망가지면서 진상 규명과 재발 방지를 위해 싸운 모든 희생이 매도되는 공탁금을 절대 수령할 의사가 없다”며 “본인들의 신변 보호를 위해 쓰는 돈은 아깝지 않고, 스텔라데이지호 선박 관리에 쓰는 돈은 그렇게 아까워해서 선원들의 생명을 바닷속에 내동댕이쳤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말했다.

국회에서도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정안이 4건이나 발의돼 법사위에 계류 중이다. 법원이 공탁 사실을 피해자에게 알리거나 변론종결 기일 14일 전까지만 형사공탁을 가능하게 하는 등 다양한 방법이 제기됐다. 지난해 8월 이원석 검찰총장은 일선 검찰청에 “피해자 의사를 적극 반영해 기습 공탁을 막을 것”을 지시하기도 했다.


김성현 기자 kksh@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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