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의 수구초심, 명지를 노래하다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언론인 최화웅 씨 ‘울말섬 찬가’
평생의 과제 고향에세이 발간
염전 복원 등 뿌리 이어나가야



최화웅 씨가 자택의 서재에서 <울말섬 찬가>를 들고 있다. 최화웅 씨가 자택의 서재에서 <울말섬 찬가>를 들고 있다.

“명지의 역사는 소금을 굽는 것에서부터 출발했다. 조선 후기 명지에서 일 년에 구워 내는 소금은 수천만 석으로 나라 안에서 제일이었다. 다만 민족 자본으로 제염업을 발흥시킬 기회를 놓친 게 아쉽다. 지금이라도 명지 염전을 복원해야 한다.”

부산지역 원로 언론인 최화웅 씨(81)는 최근 펴낸 <울말섬 찬가>에서 명지가 ‘잠자는 도시’(베드타운)로 전락하고 만 사실을 아쉬워하며, 명지의 중요한 자산인 염전을 몇 곳이라도 복원하자고 주장했다. 최 씨는 1971년 부산MBC 공채 기자로 입사해 부산MBC와 부산 평화방송의 보도국장을 지냈다. 2001년 문예종합지 <문예운동>을 통해 등단한 수필가이기도 하다. 무엇보다 그는 1992년 <MBC NEWS 최화웅입니다>와 같은 사회비평서를 시작으로 <한국민방개척사>를 비롯한 언론이론서, 수필 등 이미 12권의 저서를 출간한 지칠 줄 모르는 글쟁이다.

<울말섬 찬가>는 500쪽이 넘는 분량에 참고 문헌만 150편 이상에 달한다. 언론계 후배인 시빅뉴스 차용범 칼럼니스트는 “저자가 책 제목에 에세이라는 표현을 붙였지만, 그 서술의 폭과 깊이는 일상의 체험과 생각을 쓰는 수필을 껑충 넘어 논리성과 객관성을 완비한 사회과학 연구서에 가깝다. 외관과 내용에서 객관적 논조를 제시한 지역연구서 겸 사회비평서다”라고 높게 평가했다.

‘울말섬’은 김해문화원에서 발간한 <김해의 지명> 등을 통해 알아 낸 부산 강서구 명지동, 그러니까 명지의 고대 지명이다. <울말섬 찬가>는 울말섬 모래톱 이야기, 고대국가의 흔적, 명지 염전은 조정의 국고, 명지의 문화유산, 울말섬의 현주소, 고향은 영원한 그리움까지 총 9부로 구성된 역작이다. 최 씨에 대한 호기심으로 한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은 지난 201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기자 출신인 최 씨가 아파트 입주민을 위한 인문학 교실을 열어 재능기부에 나섰다는 내용이 <부산일보>에 보도된 직후였다.

이 책이 나온 것은 지난해 연말이었지만 인터뷰는 그의 건강 상태 악화로 몇 차례 연기되는 난항을 겪었다. 그는 2011년 만성신부전증 진단을 받고 2014년부터 일주일에 세 차례씩 혈액 투석을 받는 만성질환자이기 때문이다. 사실 2017년 인터뷰 기사에 실린 사진의 얼굴이 너무 까맣게 보였다. 당시에는 간 이식까지 생각하고 있을 때였다고 한다. 그래도 인문학 교실은 5년간 지속됐다. 다음은 우여곡절 끝에 수영구 광안동의 자택에서 진행된 인터뷰 일문일답이다.


최화웅 씨가 자택에서 <울말섬 찬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최화웅 씨가 자택에서 <울말섬 찬가>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다.

-이 책에는 ‘고향에세이’란 부제가 붙었는데 어떤 의미인가.

“명지는 서울에서 국민학교 1학년을 다니다 피란 온 안태본(선조 때부터의 고향)이다. 나이 팔십을 넘기니 나에게 남은 거는 고향이더라. 기자가 되기 전부터 내 고향 명지의 유래와 변천에 대해 생각하기 시작했다. 기자 생활을 시작하면서 동시에 관련 자료를 모으기 시작했다. 퇴직을 하면서 내가 기자 생활을 통해서 명지에 대해 취재해서 알게 된 것을 마무리해야 한다는 생각에 글쓰기가 본격화됐다. 내 일생을 여기에 끌어다 부었다.”

-13번째 저서인데 (건강도 안 좋으면서) 왜 그렇게 열심히 쓰는가.

“당초 원고는 200자 원고지로 5만 매쯤 된다. 교정이 끝난 후에도 계속 추가로 써서 주변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사람이니까 기록을 남기는 게 아닐까 싶다. 내가 살았던 고향에 대해 진실한 기록을 남겨야 하고, 또 관련된 역사가 있다면 찾아서 첨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도 더 쓰고 싶은 마음에 자료를 가지고 있지만, 가족에게 미안해서 좀 더 쓰겠다는 소리는 아직 못 하고 있다.”

-명지는 인구가 급증해 10만 명이 넘는다. 앞으로 명지가 어떻게 성장하길 바라나.

“명지는 육가야 중 가장 강력한 금관가야의 역사가 시작된 곳이다. 광복 이후 명지의 염장에서는 60㎏ 무게로 연간 20만 가마의 소금이 생산됐다. 이 같은 명지 향토사를 전해 줄 향토 도서관이나 향토 역사 문화관이 세워져 삭막한 아파트 단지의 정신적 텃밭으로 가꾸었으면 좋겠다. 그곳에서 바람직한 보존과 개발을 논의하는 삶의 토론장이 마련되길 바란다. 후배들에게 자기가 속해 있는 자연에 대한 뿌리를 잘 지켜 달라고 부탁하고 싶다.” 글·사진=박종호 기자


<울말섬 찬가> 표지. <울말섬 찬가> 표지.




박종호 기자 nleader@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