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어지는 이야기] 오래 씹을수록 오래 산다
손은주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영양팀장/동남권항노화의학회 식품영양이사
어릴 때 누구나 한 번쯤 ‘꼭꼭 씹어 먹어라’는 말을 들은 기억이 있을 것이다. 천천히 오래 씹는 것이 건강에 좋다는 것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밥을 빨리 먹는 것으로 유명하다. 고대안산병원 김도훈 교수팀이 건강검진을 받은 8775명의 식사 시간을 분석한 결과 5~10분이 44.4%로 가장 많았으며, 10~15분은 36.2%, 5분 미만은 7%로 거의 90%가 15분 이내 식사하며, 절반 이상은 10분 이내로 식사를 마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을 빨리 먹는 사람은 씹는 횟수도 적다.
왜 이렇게 오래 못 씹고 빨리 먹을까? 한국인의 ‘말아 먹는’ 식문화도 한 요인이 될 것이다. 물에 밥 말아 먹기와 국에 밥 말아 먹기와 함께 된장찌개에 밥을 말아 술안주로도 먹는다. 식사 시 다른 곳에 집중하면 식사 속도 조절이 어렵고, 오래 씹기도 쉽지 않다. 식사 시 TV 시청이 대표적이 예이다. 최근 1인 가구나 ‘혼밥’하는 사람들이 늘면서 TV나 핸드폰을 보며 식사하는 경우가 많아졌다. 노화가 진행되면 치주질환 등으로 씹기가 어려워진다. 명지대 박혜련 교수팀이 국민건강영양조사 6기 조사를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 만 65세 이상 48.1%가 음식을 씹는 데 어려움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음식을 충분히 씹지 않고 빨리 먹으면 과식할 수 있다. 포만감을 느끼려면 식욕억제호르몬인 렙틴이 필요하고, 렙틴은 식사 시작 후 최소 15분이 지나야 분비된다. 식사를 15분 내로 하게 되면 렙틴이 분비되지 않아 포만감을 덜 느끼게 되고 이는 과식으로 이어질 수 있어 비만의 원인이 된다. 또한 과식을 하면 음식물이 위에 머무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위산에 더 많이 노출돼 위장관계 질환의 가능성이 커질 수 있다.
천천히 오래 씹으면 침샘을 자극해 침의 분비를 촉진시킨다. 침은 항균·살균 효과로 음식물의 유해 세균을 죽이고, 충치 예방과 탄수화물 분해를 통해 소화를 돕기도 한다. 침 속 ‘페록시다아제’라는 효소는 세포 노화를 촉진하는 활성산소를 제거해 체내 면역력을 높이는 효과도 있다.
오래 씹으면 치매도 예방할 수 있다. 씹는 행위는 대뇌피질을 자극하고, 뇌로 가는 혈류를 증가시켜 뇌세포에 충분한 산소와 영양소를 공급해 치매에 걸릴 위험을 낮출 수 있다. 최근 연세대학교 치과대학 연구팀은 60세 이상 고령 환자가 발치 뒤 임플란트 등의 치아 복구조치를 취하지 않고 빈 곳을 방치해 씹는 능력이 떨어지면 치매 발생 위험이 커진다고 보고한 바 있다.
전문가들은 적어도 30회 이상 씹으라고 권고한다. 그러나 이는 쉬운 일이 아니며 음식의 부드럽고 딱딱한 정도가 다르기 때문에 횟수를 목표로 정하는 것은 어려울 수 있다. 횟수를 세기 보다는 음식물이 쉽게 삼킬 수 있도록 작아지고 충분히 부드러워 질 때까지 씹는 습관을 들여 보자. 젓가락은 숟가락에 비해 한입에 넣는 음식의 양이 상대적으로 적으므로 젓가락 사용을 늘리는 것도 좋다. TV시청이나 핸드폰 보는 습관을 줄이는 훈련도 필요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