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대화와 타협의 실종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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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이 만신창이가 되고 있다. 정치·사회적으로 극심한 갈등을 겪고 있어서다. 서로 대립하고 충돌하는 과정에서 터져 나오는 파열음이 예사롭지 않다.

지역·필수의료 붕괴를 막기 위한 의대 정원 확대를 둘러싼 정부·의료계 간 마찰이 확산일로다. 지난 19일 속칭 ‘서울 빅5 병원’ 전공의들이 정부 의대 증원 계획에 반발해 사직서를 낸 집단행동이 전국 대학병원으로 번진다. 전공의들의 결근 탓에 곳곳에서 수술과 입원이 취소되거나 연기돼 진료 차질을 빚고 있다.

의사는 환자를 지키며 대표자를 내세워 협의하고 정부는 의료계를 적극 설득해 합의점을 찾는 게 정상적이다. 하지만 대한의사협회는 집단행동을 멈출 생각이 없다. 의대생들까지 동맹휴학을 결의하며 가세했다. 정부는 업무개시명령을 내리는 한편 엄정 수사와 의사면허 정지 등 초강수로 맞서기로 했다. 양측이 물러설 기색 없이 강 대 강 대치를 이어가면서 국민 생명을 볼모로 한 치킨게임이 벌어지는 양상이다.

이같이 대화와 타협을 모르는 모습은 이미 국민의힘과 더불어민주당의 정쟁을 통해 신물 날 만큼 봐왔다. 오죽했으면 거대 양당의 협치를 잊은 극단적 이전투구에 염증을 느낀 중도층에게 선택지를 주겠다며 지난 9일 개혁신당이 창당됐겠는가. 그런데 거대 양당 내 세력 싸움에 밀린 이들이 만든 개혁신당마저 새 정치 비전도 없이 주도권 다툼을 일삼다 11일 만에 결별해 개탄스럽다. 민주당은 4·10 총선을 앞두고 친명(이재명)계와 비명·친문(문재인)계 간 볼썽사나운 공천 내홍이 심각하다.

이 모두 제 밥그릇과 기득권을 지키려고 자기주장만 고집한 데서 생긴 갈등이다. 원만한 타결을 위한 대화와 타협 노력을 보기 힘들어 안타깝다. 최근 50인 미만 사업장 중대재해처벌법 확대 적용과 유예, 일본 후쿠시마 원전 오염수 해양 방류 등의 문제에 대한 논란 역시 그랬다.

눈앞의 이익에 연연하다가 오히려 큰 것을 잃거나 대의를 그르친 사례는 동서고금에 많다. 상대 입장을 이해하고 조금씩 희생해 화합하는 길이 공멸 방지에 도움이 된다. 고참과 신참 선수들의 분열에 휩싸인 축구대표팀이 반면교사다. 가장 중요한 팀워크가 깨져 다수 해외파를 비롯, 역대급 초호화 진용으로 64년 만의 아시안컵 우승을 자신하던 꿈은 물거품이 됐다. 지나친 과밀화로 몸살을 앓는 수도권과 인구 감소로 소멸 위기 지역이 속출하는 지방의 공멸 우려도 마찬가지다. 대화와 타협, 배려와 양보가 절실하다. 국가 경제·외교·안보가 다 어려운 시기라 더욱 그렇다.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강병균 논설실장 kbg@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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