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의료현장 파행… 환자들 고통 속 절규 들리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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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지역 전공의 80% 사직서 제출
환자 피해 없도록 행정력 총동원해야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 대란'이 가시화한 가운데 20일 오후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에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가 작성한 '의사들의 집단 진료 중단 사태에 대한 대국민 호소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의과대학 정원 확대에 반발하는 전공의의 집단 사직으로 '의료 대란'이 가시화한 가운데 20일 오후 부산 서구 부산대병원에 전국보건의료산업노조가 작성한 '의사들의 집단 진료 중단 사태에 대한 대국민 호소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의대 정원 2000명 확대를 둘러싼 정부와 의료계의 거센 갈등으로 부산을 비롯해 전국 의료현장이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서울 ‘빅5’ 대형병원에 이어 부산대·동아대·해운대백병원과 부산성모병원, 창원삼성병원 등 지역 병원에서도 전공의들이 집단행동을 시작했다고 한다. 부산 9개 병원 전공의 중 80%가 넘는 650여 명이 이미 사직서를 냈고, 부산대병원은 신규 인턴 50여 명이 임용 포기 각서를 썼다고 한다. 전국적으로 221개 수련병원 전공의 절반 이상이 병원을 떠났고, 의대생 집단 휴학도 시작됐다. 이로 인해 6개월이나 기다렸던 수술이 전날 취소되는 등 의료현장이 아수라장이 되고 있다.

부산지역 대학병원들은 “비상진료 시스템으로는 당장 일주일 버틸 여력밖에 없다”라고 밝혀, 사태가 장기화하면 한계에 직면할 수밖에 없는 실정이다. 부산대병원에서 배우자 수술을 앞둔 한 보호자는 “의대 증원과 환자 진료가 도대체 무슨 상관”이냐면서 절규하고 있다고 한다. 환자들만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진 격’으로 피해를 고스란히 받는 셈이다. 하지만, 병원 곳곳에는 진료 지연과 퇴원을 안내하는 안내판만 속절없이 붙고 있다. 전공의와 의대생들은 의료 윤리를 저버린 집단행동이 국민의 반감만 사고, 오히려 의사 증원의 필요성만 부각한다는 점을 유념해야 한다.

전공의들은 지금이라도 의료 윤리와 냉정을 되찾고, 환자 곁으로 돌아가야 한다. 의사는 의술로 사람을 살려야지, 그 의술로 환자와 국민을 겁박해서는 안 된다. 의대 정원 확대 논의도 사람을 살리려는 목적에서 비롯됐다. 지금도 비수도권 농어촌 지역에는 수억 원의 연봉을 내걸어도 ‘노인 질병 전문의’를 모집하지 못하는 등 지역의료체계가 붕괴된 실정이다. ‘응급실 뺑뺑이’ 등 지역·필수·공공의료체계 붕괴의 심각성을 누구보다도 잘 아는 의사들의 의료현장 이탈이 매우 이율배반적인 이유다. 부산대병원 의사들은 지난해 7월 간호사 파업 사태 당시 “우리 병원은 동남권 환자들의 최후의 보루”라면서 “환자들을 위해 돌아와 달라”고 촉구하던 그 마음을 스스로 되새겨야 할 시점이다.

만에 하나 제때 치료받지 못해 환자가 사망한다면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진다. 전공의가 없으면 병원 응급 시스템이 무너진다는 약점과 국민의 고통을 인질 삼은 전공의들의 집단행동에는 그 어떤 명분도 찾을 수 없다. 자칫 ‘아픈 환자의 절규는 듣지 않고, 내 밥그릇만 지키겠다’는 집단 이기주의로 비칠 뿐이다. 정부와 국민에게 논리적으로 입장을 피력하되, 응급·위중한 수술과 중환자실 등은 정상적으로 가동해야 한다. 정부는 대화와 협상의 문은 열어두지만, 지역의료체계 회복 등 국민 생활과 직결된 의사 증원은 적당히 물러설 사안이 아니다. 부산시와 정부는 환자 피해가 없도록 진료 대책에 행정력을 총동원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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