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설위원의 뉴스 요리] ‘건국전쟁’ 흥행이 씁쓸한 이유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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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정 인물 다룬 다큐 영화로선 이례적 인기
정부·범여권·우익 등 광범위한 띄우기 정황


영화관에 걸린 ‘건국전쟁’ 포스터. 연합뉴스 영화관에 걸린 ‘건국전쟁’ 포스터. 연합뉴스

■흥행

이승만 전 대통령의 정치적 행보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건국전쟁’(감독 김덕영)이 지난 21일 관객 80만 명을 돌파했다. 개봉 20일 만이다. 특정 인물, 특히 과거 정치 인사에 대한 다큐로는 이례적인 흥행 속도다. ‘건국전쟁’ 속편도 곧 제작에 들어갈 예정이다. 이런 열기는 관객의 순수한 호응에 따른 것일까. 그럴 수도 있을 테다. 제작사의 새로운 홍보 기법에 힘입은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해당 제작사는 청년 관람객이 영화표를 인증하면 표값 전액을 되돌려주는 이벤트를 진행해 사재기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론 이변이라 할 정도의 흥행에 대한 설명으로 충족되지 않는 측면이 있다.


■장면1

‘울산시 총무부서는 최근 시청 내 부서와 산하기관 등에 ‘2024년 직원 MT 추진 계획’이라는 공문을 보냈다. … 공무원들이 사용하는 쪽지로 전해져 온 별도의 공문에는 21일부터 27일까지 오후 7시에 남구 삼산동의 영화관 특정 상영관(192석)에서 영화를 관람하는 계획이 제시됐다. 해당 상영관에선 영화 ‘건국전쟁’이 상영된다. … 한 공무원은 “‘자율’이라면서 특정 시간·특정 극장·상영관을 제시해 압박하고 있다”며 “관람하겠다고 나서는 직원이 없자 ‘이러면 (시장에게) 찍힌다’는 말이 나왔다. 결국 강제로 영화를 보게 됐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 다른 공무원은 “여당 인사들의 ‘관람 인증 릴레이’가 벌어지는 영화 관객수를 늘리려 여당 소속 단체장이 공무원을 동원하는 것 아니냐”고 했다. 울산시 공무원노조도 … “많은 부서에서 자율이라는 명목하에 특정 영화 ‘건국전쟁’ 관람을 MT로 정하고 있다”며 “특정 정치성향으로 이슈가 되고 있는 영화를 공무원 조직에서 굳이 단체관람을 추진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묻고 싶다”고 비판했다.’

이는 지난 20일 <세계일보>가 보도한 기사 일부분이다.


■장면2

‘건국전쟁’ 관람에는 유인촌 문화체육부 장관과 김영호 통일부장관 등 현 정부 국무위원들도 적극 참가하고 있다. 김덕영 감독이 지난 13일 SNS에 올린 영상에서 유 장관은 전날 ‘건국전쟁’ 관람 후 “역사적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영화라고 생각되기 때문에 많은 분이 꼭 와서 봐주셨으면 좋겠다”라고 권했다. 김 장관도 지난 17일 ‘건국전쟁’ 관람 후 “큰 감명을 받았다”고 밝혔다. 김 장관은 또 지난 20일 <문화일보> 칼럼을 통해 “‘건국전쟁’은 올바른 역사 인식과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확신이 자유민주통일의 시발점임을 웅변한다”고 역설했다.


이영훈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가 지난 16일 여의도 CGV에서 열린 ‘건국전쟁’ 무대인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영훈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가 지난 16일 여의도 CGV에서 열린 ‘건국전쟁’ 무대인사에서 인사말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장면3

일부 개신교계와 보수·우익 세력이 ‘건국전쟁’ 흥행의 견인차 역할을 하는 양상이다. 부산 세계로교회를 비롯해 서울 여의도순복음교회 등 각 지역의 크고 작은 교회들이 연일 단체 관람을 이어오는 것이다. 부산 세계로교회는 ‘건국전쟁 영화 세계로교회 1200명 관람 후기’란 유튜브 영상을 통해 교인들의 감상후기를 소개해 놓았다. 한국자유총연맹은 지난 15일부터 자체 홈페이지에 댓글 응원과 관람 사진을 올리는 ‘건국전쟁 관람 인증 챌린지’를 시작했다. 한국자유총연맹은 이 챌린지를 다음 달 26일까지 계속할 것으로 알려졌다. 극우 성향 커뮤니티인 ‘일간베스트(일베)’에서도 회원들끼리 후기를 올리는 등 ‘건국전쟁’ 관람을 독려하고 있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한 영화관에서 ‘건국전쟁’ 관람에 앞서 김덕영 감독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 윤재옥 원내대표가 지난 14일 서울 여의도 한 영화관에서 ‘건국전쟁’ 관람에 앞서 김덕영 감독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치권이 더…

정치권, 정확히는 여권이 총선을 앞두고 ‘건국전쟁’ 띄우기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그 선두에는 윤석열 대통령이 있다. 지난 설 연휴 중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건국전쟁’에 대해 “역사를 올바르게 알 수 있는 기회”라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이승만 대통령기념관 건립 사업에 500만 원을 기부하기도 했다. 국민의힘 인사들도 잇따라 대열에 합류했다. 한동훈 비대위원장과 윤재옥 원내대표 등이 ‘건국전쟁’을 관람한 데 이어 현역 의원이나 총선 출마 예정자들도 SNS 등에 관람 후기를 올리고 있다. 그중 부산의 어느 의원은 “오는 4월 총선은 제2의 건국전쟁이다. 반드시 자유 우파가 승리해서 건국-산업화-민주화-선진화로 이어진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를 되찾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한 영화관에서 ‘건국전쟁’ 관람을 마친 뒤 영화관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지난 12일 서울 여의도 한 영화관에서 ‘건국전쟁’ 관람을 마친 뒤 영화관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순수한가?

‘건국전쟁’의 흥행을 미심쩍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다. 이념몰이 목적의 관객 동원 가능성을 의심하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이런 의심은 진영을 떠나 과거에도 있었다.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7년 5·18 광주민주화운동을 다룬 영화 ‘화려한 휴가’가 개봉했을 때 이해찬 전 총리 등 당시 여권 인사들이 앞다퉈 관람했다. 문재인 정부 때도 비슷한 일이 반복됐다. ‘건국전쟁’의 영화적 수준과 역사적 사실에 대한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게 아니다. 그런 것은 상당 부분 개인의 영역이라고 볼 수 있으니까. 하지만 지금 ‘건국전쟁’ 흥행의 배경이 순수하지만은 않다는 사실은 지적할 수 있겠다. 총선을 코앞에 둔 지금 시점이라 특히 더 그렇다.


임광명 논설위원 kmyim@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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