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발니 죽음 언급 말라” 공안 정국 열어젖힌 푸틴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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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권 정적 옥중 돌연사 이후
대선 앞둔 러시아 검열 강화
나발니 동생까지 수배 명령
추모객도 최소 400명 체포

지난 1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옥중 사망한 반체제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를 추모하려던 여성이 경찰에 끌려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꼽히던 나발니는 지난 16일 시베리아 교도소에서 수감 중 사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지난 17일(현지시간)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옥중 사망한 반체제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를 추모하려던 여성이 경찰에 끌려가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의 최대 정적으로 꼽히던 나발니는 지난 16일 시베리아 교도소에서 수감 중 사망했다. 로이터연합뉴스

러시아 야권 지도자 알렉세이 나발니의 옥중 돌연사를 둘러싸고 러시아 당국이 검열과 통제를 한층 강화하고 나섰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3월 대선을 앞두고 공안 정국을 조성하려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당장 나발니의 가족과 측근부터 당국의 표적에 올랐다. 20일(현지시간) 러시아 관영 타스 통신은 최근 나발니의 친동생 올레그 나발니가 러시아 내무부의 수배 명단에 두번째 올랐다고 보도했다. 내무부 관계자는 경찰이 올레그에 대한 새로운 형사 사건을 수사하기 시작했다면서도 구체적인 혐의는 공개하지 않았다.

올레그는 앞서 2022년 1월 다른 사안으로 수배 명단에 올라있다. 그는 2021년 형인 나발니의 석방 요구 시위를 벌인 이후 코로나19 방역 위반 혐의로 집행유예 1년을 선고받았으나 당국은 그가 보호관찰을 따르지 않았다며 수배 명령을 내렸다.

이 같은 당국의 조치는 나발니가 지난 16일 시베리아 교도소에서 의문사한 이후 유족들이 그의 시신이라도 보여달라고 호소하는 와중에 나온 것이다. 러시아 당국은 나발니 추모 물결에도 강경 대응을 고수하며 지금까지 추모객 등 최소 400명을 체포했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인권단체 OVD-인포를 인용해 “체포 명단에는 추모 예배를 열려던 신부 등이 포함됐으며 이 같은 체포 인원은 2022년 9월 우크라이나전 동원령 반대 시위 이후 최대 규모”라고 짚었다.

그러면서 “푸틴 대통령이 3월 대선에서 5번째 임기를 확정할 때까지는 크렘린궁이 탄압을 제한할 것으로 관측됐지만 이제는 체포가 더 광범위한 탄압의 예고로 이어질지 우려된다”고 NYT는 전했다.

나발니의 정치적 동지이자 ‘포스트 나발니’ 중 한 명으로 꼽히는 야권 인사 일리야 야신도 옥중에서 위협을 감수하겠다고 호소했다. 그는 20일(현지시간) 변호사와 주고받은 연락에서 나발니의 죽음과 관련해 “내게도 위험이 있다는 것을 나도 안다. 내 목숨은 푸틴 손에 달렸고 지금 위험에 처했다. 하지만 나는 독재에 맞서겠다”고 투쟁 의지를 다졌다.

앞서 나발니의 부인인 율리아 나발나야도 돌연 소셜미디어 엑스(X·옛 트위터) 계정이 차단되는 일을 겪었다. 20일 오후 율리아의 엑스 계정은 약 45분간 ‘이 계정은 X 운영 원칙을 위반했으므로 일시 정지됐다’는 메시지만 표시됐다. 율리아는 비통함 속에서도 유럽연합(EU) 등을 돌며 푸틴 대통령을 ‘살인자’로 지목하고 국제사회 대응을 호소해 왔다.

러시아 보안당국은 반역죄 카드도 꺼냈다. 러시아 연방보안국(FSB)은 20일 우크라이나를 지원했다는 이유로 미국과 러시아 이중 국적자인 33세 여성을 반역죄로 기소했다. 하지만 현지 법률단체는 이 여성이 체포된 명목이 우크라이나 자선단체에 51.80달러(약 6만 9000원)를 기부했다는 것이라고 맞섰다.

유럽에서는 앞서 우크라이나로 망명했던 러시아 조종사가 최근 의문의 죽음을 맞기도 했다. 지난 13일 스페인에서 지난해 우크라이나로 망명한 러시아군 조종사 막심 쿠즈미노프가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됐다. 쿠즈미노프는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우크라이나로 망명한 첫 러시아군 조종사다. 지난해 8월 러시아군 전투기 부품을 실은 헬리콥터를 몰고 우크라이나로 넘어갔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는 “그의 죽음이 유럽 영토에서 러시아가 명령한 암살에 따른 것인지 의심된다”고 보도했다.

하지만 친푸틴 블로거인 세르게이 마르코프는 “이 같은 뉴스는 모두에게 우크라이나 정권과 절대 손잡지 말고 목숨부터 구하라는 점을 상기시킨다”고 독설을 퍼부었다.

러시아 당국은 국제 사회의 비판 속에서도 오히려 여론 통제를 강화하기도 했다. 모스크바 법원은 20일 간첩 혐의로 붙잡혀 있는 에반 게르시코비치 월스트리트저널(WSJ) 기자의 재판 전 구금 기간을 다음 달 30일까지로 연장했다. 구금 기간이 연장된 것은 이번이 네 번째로 다음 달 말이면 1년이 된다.


권상국 기자 ksk@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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