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공의 없으면 안 돌아가는 대형병원 의료체계 고쳐야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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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턴·레지던트에 과도한 의존
응급·중증 의료체계 핵심 역할
업무중단 땐 의료 공백 되풀이
일반 개원 쉬워 필수의료 기피
의존도 낮추려면 전문의 늘려야

전공의들의 집단행동 이틀째인 21일 부산 서구 부산대학교병원 외래 진료 접수·수납 창구 앞에 많은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전공의들의 집단행동 이틀째인 21일 부산 서구 부산대학교병원 외래 진료 접수·수납 창구 앞에 많은 환자들이 대기하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한국 전체 의사의 약 13%에 불과한 전공의 집단행동으로 의료 공백이 벌어지면서, 과도하게 전공의에게 의존하는 의료체계를 손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향후 정부가 새로운 의료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의사 단체가 반발하고, 의료 공백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될 가능성이 크다.


■전공의 사직 러시 이유는

21일 의료계에 따르면 부산대병원 전공의 236명(치과 제외) 중 216명이 사직서를 제출해 약 91.5%가 집단행동에 동참했다. 동참률 차이만 있을 뿐이지 동아대병원 전공의 138명 중 110명이 사직서를 제출하는 등 전공의가 있는 부산 9개 병원의 사정은 비슷하다.

이들이 2020년 전공의 파업과 마찬가지로 집단행동이 가장 효율적이라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국내 전공의는 1만 5000명 수준으로 전체 의사 11만 5000명 대비 약 13% 수준이다. 하지만 전공의가 대형 종합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 야간과 휴일에 당직을 서고 중증이나 응급환자 수술에 참여한다. 대형병원이 돌아가는 핵심 역할을 하는 셈이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전공의가 업무 중단을 선언하면 응급·중증 환자는 갈 곳이 없어진다. 중·소형병원은 응급처치만 하고 대형병원으로 전원을 보낸다. 지금처럼 전공의가 없는 상황에서 대형병원에 전원을 보내지 못하니 아예 중·소형 병원은 환자를 받지 않는 식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다. 의료 공백이 발생하고 ‘응급실 뺑뺑이’가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인턴, 레지던트 등 전공의는 보통 연 단위로 2월 말께 재계약을 하는데, 한때 전공의 단체는 재계약을 하지 않는 방식의 소극적 대처도 고민했다. 하지만 정부가 업무개시명령을 내려 심하면 ‘의사면허 취소’ 행정처분까지 내리겠다며 초강경 대응을 선포하자 집단 사직서라는 방식으로 강경하게 나왔다.

전공의가 일반 직장인과 달리 사직서를 쉽게 낼 수 있는 이유는 면허 자격과도 연관이 있다. 보통 의대 수련 과정을 거치고 국가고시를 치르면 일반의사 자격을 얻는데, 언제든 개원이 가능하다. 최근에는 전문의 자격을 얻어 개원하는 일이 일반적이고, 의원 개원이 만만하지는 않지만, 보통의 직장인이 사직서를 내는 것과 무게는 다른 셈이다. 그래서 보건복지부가 업무개시명령 불응 때 ‘의사면허 취소’라는 카드로 전공의를 압박한다.

■장기적 의료체계 손봐야

정부와 의사 단체의 갈등이 환자를 볼모로 폭발한 이유는 수십 년 해묵은 난제라는 이유로 손대지 못했기 때문이다. 2020년 전공의 파업의 연장선상이기도 하다.

그 이면엔 일반의사로 의사 자격증을 획득하면 미용 의료 시장에 진출할 수 있고, 고수익이 보장되면서 필수의료를 기피할 수밖에 없는 왜곡된 현실이 자리 잡고 있다. 의사 집단 내부에서도 최소 3~4년 대학병원급에서 수련을 하지 않으면 개원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의 제도가 필요한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온다.

너무 쉬운 개원 자격과 보상 체계가 시장 구조를 흔들고 소아청소년과, 산부인과, 응급의학과 같은 필수의학과는 매년 의사가 모자라는 일이 반복된다. 부산시병원회 김철 회장은 “제도적 뒷받침이 없으면 이 같은 갈등은 계속 벌어질 수밖에 없다”면서 “정부의 의료수가 조정을 통해 대형병원이나 대학병원에서 더 많은 전문의를 고용해 응급중증의료체계에 전공의 의존도도 낮추는 구조적 개혁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편, 정부의 강경한 법 집행은 현실화하는 모양새다. 윤희근 경찰청장은 21일 관계 부처 합동브리핑에서 “업무개시명령을 받고 따르지 않으면 의료법 위반으로 처벌할 수 있고 공정거래위원회가 공정거래법 위반으로 고발할 경우에도 수사할 수 있다”고 밝혔다. 경찰은 아직 보건복지부 차원의 공식 고발은 없다고 밝혔다. 하지만 시민단체가 이번 단체행동을 주도한 한국의과대학·의학전문대학원협회과 대한전공의협회 비대위원장과 집행부에 대해 고발장을 접수했다고 전했다.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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