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취과 전공의 전원 이탈… 수술방 절반 문 닫았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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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주요 병원도 의료 공백
중증환자 수술 차질 우려도

21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규탄하는 팻말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21일 서울 용산구 대한의사협회 회관에 정부의 의대 정원 증원 정책을 규탄하는 팻말이 놓여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 집단행동 부작용이 벌써 부산 각 병원에서 불거지고 있다. 마취과 전공의 전원이 이탈해 수술 일정이 줄줄이 조정된 병원이 나오는가 하면, 수술 일정을 절반 이하로 낮춰 중증·응급 환자에만 대응하는 병원도 여러 곳이다. 비교적 쉬운 수술마저도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 머지 않아 암 환자를 비롯한 중증환자 수술마저 차질을 빚는 순간이 올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진다.

21일 부산 의료계에 따르면 부산 지역 대학병원들은 전공의 이탈에 대응하기 위해 수술 일정을 기존 대비 30~50%가량 줄였다. 일단 병원들은 암 환자와 생명이 위급한 중증환자를 우선적으로 수술한다는 방침을 세웠다. 급하지 않은 수술이나 진료는 대부분 후순위로 밀렸다.

부산 A 대학병원은 평소 하루 평균 100건 정도 수술을 했으나 이를 40여 건 수준으로 줄였다. 이 병원에서는 마취과 전공의 전원이 사직서를 냈기 때문이다. A 병원의 한 의사는 “수술 일정이 줄줄이 연기될 것이란 우려가 현실이 됐다”며 “중증도와 위급성을 선별해 수술을 진행하는 방침을 세웠지만, 이대로 장기간 지속한다면 병원 의료진과 시스템 자체에 과부하가 걸릴까 걱정이 크다”고 전했다.

부산 B 대학병원 역시 마취과 전공의 8명 전원이 자리를 비웠다. 어쩔 수 없이 수술 일정도 조정됐다. 이 병원은 평소 수술실 13개를 운영했지만 이날부터 6개만 운영하고 있다. 위급성이 크지 않아 후순위로 밀린 수술은 기약 없이 미뤄지고 있다고 한다. B 병원에서 근무하는 의사는 “수술방이 문을 닫는 바람에 전립선 수술 등 하루 평균 2~3건 정도 쳐낼 수 있던 수술이어도 현재는 하루 1건씩밖에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대부분 대학병원이 수술 일정을 미루거나 진료·입원까지 줄이면서 환자와 보호자 성토가 거세지고 있다. 특히 수술을 앞둔 암 환자나 항암 치료가 필요한 환자처럼 생명이 위급한 경우에는 어떤 불똥이 튈지 모른다며 불안해하고 있다. 이날 딸 항암 치료를 위해 함께 부산 한 대학병원을 찾은 박이순(77) 씨는 “딸이 난소암에 걸려 수술을 받고 항암 치료를 일곱 번째 받았다. 주변에 암 투병하는 사람들 얘기를 자주 들을 수 밖에 없는 환경인데, 파업 소식 이후에 주변 안부를 물어보면 암 수술과 치료를 제때 받지 못할까 하루하루 걱정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토로했다.

빠른 시기에 의료 공백이 해소되지 않으면 환자와 의료진 간 갈등이 더욱 심화할 것이라는 예상이 나온다. 부산대병원의 한 교수는 “현재 상태가 암 환자를 우선적으로 수술방에 배정할 수 있는 여력이 있는 상황이라 해도, 암 환자들 수술이 며칠씩 딜레이되고 있는 게 현실”이라며 “환자 입장에서 수술 날짜를 받으려면 외래 진료와 각종 검사를 거쳐 수개월 기다렸다 겨우 수술 날짜 받는 건데, 일정이 연기되면 소위 ‘멘붕’을 겪게 된다. 수술 일정이 연쇄 조정되면서 항의나 불만이 쏟아질 것으로 예상돼 병원에 긴장감이 크다”고 말했다.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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