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감] 매화 한 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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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정아 소설가

그렇게 참고 버티다 보면 언젠가 끝은 왔다.
그 고통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끝날 때까지 괴로움을 고스란히 체감하며 견디다 보면
몸에도 마음에도 근력이 붙는 것이 느껴졌다.

며칠 전 길을 걷다가 올해의 첫 매화를 보았다. 봄이 되면 수많은 종의 꽃들이 피어나겠지만, 겨울이 채 가기 전에 찬바람을 견디며 고고하게 꽃을 피우는 매화는 언제나 경이롭다. 그런 특성 때문에 예로부터 많은 선비들이 매화를 예찬했을 것이다. 특히 퇴계 이황의 매화 사랑은 유명하다. 역사적으로 증명된 사실인지는 모르겠으나 그에게도 애절한 러브 스토리가 전해지는데, 그 이야기에도 매화가 중요한 매개로 등장한다. 퇴계가 단양 군수로 있던 시절, 두향이라는 관기(官妓)가 그를 흠모했고 두 사람은 시(詩), 서(書)에 대한 교감과 함께 서로를 깊이 사랑하게 되었다. 그러나 둘의 사랑이 시작된 지 9개월 만에 퇴계는 경상도 풍기 군수로 전근을 가야 했고, 규정상 관기를 데리고 다닐 수는 없었기 때문에 그는 혼자 떠나게 된다. 그때 두향은 무너지는 마음을 견디어내며 퇴계에게 매화 화분을 선물했다고 한다. 이별 후 그들은 죽을 때까지 다시 만나지 못하고 서신만 주고받았는데, 퇴계가 두향에게 보낸 시 가운데 이런 것이 있다. ‘누렇게 바랜 옛 책 속에서 좋은 말씀을 보면서/ 비어 있는 방안에 초연히 앉았노라./ 매화 핀 창가에서 봄소식을 다시 보니/ 거문고 마주 앉아 줄 끊겼다고 한탄을 말라.’ 나는 차가운 공기 속에 피어난 하얀 매화를 보면서, 어찌할 수 없는 이별 앞에서 그저 매화 화분을 건네야 했던 두향의 마음을, 그리고 그 매화 화분을 앞에 두고 공부를 이어나가는 퇴계의 마음을 떠올려 보게 된다.

나는 일주일에 두 번 요가 수련을 하고 있다. 사실 처음 한두 달 동안은 그저 선생님의 시범을 눈치껏 따라 하기에 급급했고, 몸의 중심을 잡기도 호흡을 고르기도 힘들었다. 요가를 하면 정신 수련이 된다는데, 정신 수련은커녕 내 몸뚱어리 하나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한다는 자괴감에 빠지기 일쑤였다. 하지만 몇 달 동안 계속 보고 듣고 따라 하면서 육체적 고통을 견디다보니 동작이 몸에 익으면서 자연스레 배우게 되는 바가 있었다. 나의 요가 선생님은 잔소리가 심한 편인데, 힘들어도 참고 견뎌보려는 노력을 충분히 하지 않는 것처럼 보일 때 특히 화를 많이 낸다. 카운팅을 하다 말고 폭풍 잔소리를 한다. 그럴 때는 진심으로 절망스럽고 그냥 자리에 주저앉아버리고 싶다. 선생님이 ‘열’까지 세어야 힘든 자세를 풀고 한숨 돌릴 수가 있는데 ‘아홉’에서 카운팅을 멈춘 채 갑자기 화를 내고 잔소리를 시작하면 어떻게 견디라는 것인가. 그런 원망이 들기는 하지만 그래도 나는 끝까지 참고 버티는 쪽이다. 학창 시절에도 그랬다. 운동 신경이 별로여서 체육 점수는 그리 좋지 않았지만 체력장을 할 때만큼은 늘 만점을 받는 종목이 있었다. 오래달리기와 오래 매달리기. 그냥 참고 견디면 되는 것 말이다. 심지어는 수업 시간에 단체 벌을 설 때 끝까지 바른 자세로 손을 잘 들고 있다고 칭찬을 받은 적도 있다. 다른 아이들이 몸을 배배 꼬고 팔을 은근슬쩍 내려서 머리에 걸치고 할 때, 나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양팔을 귀 옆에 딱 붙인 채 끝까지 버텼다. 그때 내 마음속에 무엇이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다. 오기였는지 슬픔이었는지 희망이었는지. 다만 내가 확실히 알고 있었던 것은, 그렇게 참고 버티다보면 언젠가 끝은 온다는 사실이었다. 그 고통이 영원히 계속되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순간을 회피하고 싶지는 않았던 것 같다. 끝날 때까지 괴로움을 고스란히 체감하며 견디다 보면 몸에도 마음에도 근력이 붙는 것이 느껴졌다.

물리적으로 이 겨울이 끝나더라도, 누군가는 여전히 남아있는 지독한 한기를 고통스럽게 버텨내야 하는 상황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우리는 마음의 근력을 단단하게 쌓아나갈 수 있으리라 믿는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는, 작고 하얀 매화 한 송이가 정갈하게 피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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