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태우의 맛있는 여행] 지구의 마지막 경고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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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랫폼콘텐츠부 선임기자

유럽에서 기차여행 인기가 다시 높아지고 있다. 각국 정부가 기차여행을 활성화시키려고 야간기차 부활, 노선 증설, 시설 개선 등에 나선 덕분이다. 운항시간이 1~2시간 이내인 지역에서는 항공기 운항을 중단시키려는 계획도 추진된다. 단거리 구간에서는 항공기 대신 기차를 타라는 이야기다. 유럽 여러 나라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딱 한가지다.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탄소 배출을 줄여야 하는데 기차가 거기에 가장 걸맞은 교통수단이기 때문이다. 기차 이용객 1인당 탄소 배출량은 항공기의 10분의 1 이하 수준이다.

그런데 유럽에서 기가 막힌 상황이 일어나 기차여행 확대를 추진하는 각국 정부를 당황하게 만들었다. 우습게도 원인은 기후변화다. 기후변화 탓에 알프스 등 산악지역의 눈이 녹아 산사태가 일어나는가 하면 폭우가 쏟아져 홍수도 빈번하게 발생하는 것이다. 기후변화가 더 나빠지는 걸 막기 위해 기차여행을 강조하는데, 기후변화 때문에 기차여행이 방해를 받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영국 런던에서 프랑스 파리로 가는 유로스타 열차가 최근 겨울 폭우로 일어난 템스강 홍수 때문에 운행을 취소하는 일이 벌어졌다. 이번만 그런 게 아니었다. 최근 수년 사이 영국에서는 폭우, 산사태로 열차 운행이 지연, 취소되는 일이 빈번해져 정부가 대책 마련에 나섰다.

알프스 권역인 오스트리아의 경우 2023년에 홍수, 산사태 탓에 열차 운행이 1900회가 지연되거나 취소됐다. 오스트리아 양대 철도회사인 레일젯과 OeBB 측은 전례 없는 일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기후변화 때문에 일어난 산사태 등으로 철도가 막히는 것은 유럽만의 일은 아니다. 미국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지난주 미국 샌디에이고 인근 샌클레멘테에서 산사태가 일어나 열차 운행이 중단됐다. 이런 사고는 최근 3년 사이 다섯 번째여서 철도를 이용하는 지역 주민을 불안케 했다.

기차 운행을 방해하는 것은 홍수, 산사태만이 아니다. 여름에는 폭염 탓에 철로가 늘어나고 전기 합선이 일어나 기차 운행을 방해한다. 오스트리아를 포함해 유럽의 철도 중 상당부분은 19세기 말~20세기 초에 건설됐는데 21세기 기후변화 시대의 폭염을 견디지 못한다는 것이다.

기후변화 악화를 늦추기 위해 확대하려던 유럽과 미국의 기차여행이 기후변화 후유증에 시달리는 것을 두고 일부에서는 ‘지구의 마지막 경고’라고 표현한다. 이것을 두고 지나친 걱정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것이 지구의 경고라면, 기후변화가 이대로 계속 악화될 때에는 지구가 경고에 그치지 않고 ‘복수’를 하는 것은 아닐지 두렵지 않을 수 없다. 인내심이 바닥날 경우 지구는 앞으로 인류에게 어떤 모습을 보이게 될까.


남태우 기자 leo@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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