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지워지는 한반도 이미지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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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남선이 1908년 11월 1일 발간한 잡지 〈소년〉은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종합 잡지이다. 잡지인들은 이날을 기념해 잡지의 날로 정했다. 첫 호에 실린 ‘해(海)에게서 소년에게’는 신체시의 효시가 됐다. 시인들 역시 이 시가 처음 발표된 이날을 시의 날로 정해 기념해 오고 있다. 여기서 또 하나 잊지 말아야 할 게 있다. 한반도를 호랑이에 비유한 지도를 최남선이 처음 생각해 이를 잡지 창간호에 실었다는 사실이다.

최남선은 호랑이를 우리 민족, 한민족의 상징으로 보았다. 당시 일본의 지리학자 고토 분지로는 한반도를 토끼 모양에 비유해 조선이 반도 국가이기에 외부의 침략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일본은 한반도인들은 토끼의 이미지처럼 순하고 순응적인 기질을 지녀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으로 그들의 식민 지배를 합리화했다. 최남선은 한반도를 호랑이에 비유해 이런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주장에 정면으로 맞섰던 것이다. 한반도는 호랑이뿐만 아니라 용이나 무궁화 등 여러 가지 형태로도 표출돼 왔다.

국제 스포츠 대회에서 남북한 단일팀의 단기(團旗)로 사용된 한반도기 역시 우리 민족, 동족이란 상징성을 갖는다. 이 기는 1989년 남북체육회담에서 남북한이 합의해 제정했다. 이후 1991년 세계탁구선수권대회를 시작으로 남북 단일팀 단기로 공식 사용돼 왔다. 한반도기는 흰색 바탕에 하늘색 한반도 지도가 그려져 있는데 동족이란 상징성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현재의 남북한 분단 상황에 대비돼 통일 또는 평화에 대한 상징으로 받아들여지곤 한다.

지난해 말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남한을 적대적 교전국으로 규정한 후 “통일·동족이라는 개념을 제거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후 북한 내 여러 부문에서 동족, 통일을 상징하는 한반도 이미지가 하나둘 삭제되고 있다. 북한 공식 무역·투자 전용 사이트 ‘조선의 무역’ 홈페이지의 한반도 이미지 그림이 최근 사이트에서 사라졌다. ‘조선의 출판물’ 사이트 첫 페이지에 있던 한반도 이미지도 보이지 않는다.

민족이나 통일, 동족을 상징하는 한반도 이미지가 북한 내에서 사라지는 건 가슴 아픈 일이다. 남과 북은 한 민족이라는 개념이 북한 내에서 영영 지워질까 걱정이다. 김정은이 ‘통일’ ‘동족’을 지우려는 모습은 마치 옛 동독이 ‘독일 단일민족론’을 부정하며 서독과 단절해 분단을 고착화하려 했던 자멸적 시도와 흡사하다. 매우 안타깝다. 진정 북한은 적대의 길을 걷고자 함인가.

정달식 논설위원 dosol@


정달식 논설위원 dosol@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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