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고준위 방폐장 확보 없는 '원전 최강국' 의미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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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전소 내 폐기물 포화 임박
영구 처분장 추진 최우선해야

윤석열 대통령, 원전 산업 민생토론회 발언.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 원전 산업 민생토론회 발언. 연합뉴스

경남에는 두산에너빌리티를 위시해 원자력발전(원전) 분야 기업이 270여 곳이나 포진해 있다. 세계 최강을 다투는 한국 원전 산업의 명실상부한 심장부다. 물론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으로 시장이 위축되면서 경영에 어려움을 겪었고, 인력까지 유출되는 모진 시련을 겪었다. 비 온 뒤에 땅이 굳어지듯, 요즘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원전 생태계의 복원에 그치지 않고 새로운 시장 개척에 나서려는 의욕이 넘친다. 지난 2일 지역 기업 31곳이 창원원자력기업협의회를 조직해 소형모듈원자로(SMR), 사용후핵연료 건식 저장 등 미래 시장 선점에 나섰다. 여기에 경남 창원시뿐만 아니라 정부도 협력과 지원을 약속하고 있다. 원전 산업 재도약의 용틀임이다.

윤석열 대통령은 22일 창원에서 열린 ‘다시 뛰는 원전 산업, 활력 넘치는 창원·경남’을 주제로 가진 민생토론회에서 “SMR을 포함하는 원전산업지원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약속했다. 윤 대통령은 다양한 지원 방안도 제시했다. 3조 3000억 원 규모의 원전 일감과 1조 원 규모의 특별 금융 지원이 그것이다. 또 원전 제조를 위한 시설 투자나 연구 개발에도 조세특례제한법이 적용될 수 있게끔 시행령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이미 한국은 기술력을 내세워 이집트, 폴란드, UAE(아랍에미리트) 등에서 굵직굵직한 수출과 협력 성과를 내고 있는데, 여기에 국가적 지원책이 더해지면 국부 창출의 한 축으로 부상할 것이 기대된다.

활기를 되찾은 한국 원전 산업이 비상하려면 풀어야 할 묵은 난제가 있다. 바로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처리다. 국내에는 ‘지구상에서 가장 위험한 물질’로 불리는 사용후핵연료 등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을 처분하는 장소(방폐장)가 없다. 원전이 가동된 1978년부터 사용후핵연료가 원전 부지 내 임시 저장 시설에 대책 없이 쌓였는데 곧 포화 시점이 임박하면서 지역민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에 따르면 2030년부터 한빛, 한울, 고리원전 순서로 습식 저장조가 포화된다. 고준위 방폐장 건설에 최소 37년이 소요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미 너무 늦었다.

세계 주요 원전 운영국이 방폐장을 짓고 있거나 부지 확보 절차를 진행 중인 데 비하면 아직 한국은 기약이 없다. 방폐장을 확보하기 위한 고준위방폐물특별법이 21대 국회 막판까지 논의되고 있으나, 용량과 시한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그 사이 기존 원전 내 임시 저장 시설이 포화된 뒤 추가로 설치되거나, 사실상 영구 처분장처럼 사용될 것을 지역 주민들은 우려한다. 임시 시설이 차면 법에 따라 발전소 운영은 중단된다. 방폐장이 없으면 유럽연합의 녹색분류체계(택소노미)를 충족하지 못해 원전 수출에도 차질을 빚는다. 방폐장이 없으면 원전 최강국도 없다. 정부와 한수원은 장밋빛 로드맵 이전에 방폐장 문제부터 먼저 해결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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