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내줘야 할 슬롯 대부분이 에어부산 인기 노선 [날개 꺾이는 에어부산]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상. 문제는 슬롯

특정 시간대 운항 허가권인 슬롯
항공사 수익 좌우할 핵심 무형자산
대한항공 합병에도 슬롯 반납 조건
자사 슬롯 지키려 에어부산 희생양
김포~하네다 노선 목록서 빠진 대신
김해 출발 일본 노선 상당수 대상에
탑승객 1000만 에어부산 타격 우려

부산 김해국제공항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에어부산 항공기. 정종회 기자 jjh@ 부산 김해국제공항 활주로에서 이륙하는 에어부산 항공기. 정종회 기자 jjh@

2029년 완공될 가덕신공항이 성공하기 위해선 거점 항공사를 중심으로 한 운수권은 물론 슬롯 확보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특히 일본과 미국처럼 항공자유화협정으로 운수권 없이 슬롯만 확보하면 오갈 수 있는 나라의 경우 슬롯을 제때 확보하지 못하면 새로운 노선을 취항하거나 기존 취한 노선을 증편하는 데 큰 어려움이 따를 수 있다.

■슬롯도 문제다

3일 항공업계에 따르면, 슬롯은 항공기가 공항에 이착륙하거나 이동하는 데 배분되는 시간으로, 특정 시간대 운항을 허가받는 권리다. 슬롯은 기간, 횟수 등 조건을 지켜 운항하면 권리를 보장받을 수 있다. 미국과 일본(하네다공항 제외)처럼 항공자유화협정을 맺으면 운수권 없이 슬롯 확보만으로도 양국을 오갈 수 있다. 특히 슬롯은 항공사끼리 협의가 가능한 데다 시간대별로 편차가 커 소위 황금 시간대 슬롯 확보를 위해 항공사 간 경쟁이 치열하다.

운수권은 양국이 항공회담을 통해 운항 횟수, 방식 등을 합의하는 것이다. 이달 초 결정된 인도네시아와 항공회담으로 부산 김해공항에서 인도네시아 발리와 자카르타를 오갈 수 있게 된 것은 자카르타·발리 노선에 대한 운수권을 확보한 덕분이다. 인도네시아는 아세안 10개국 중 직항 자유화가 체결되지 않은 국가다. 운수권을 확보하지 못하면 해당 노선을 오갈 기회조차 없다.

이처럼 운수권과 슬롯은 항공사가 새로운 노선에 취항하거나 기존에 취항하던 노선 증편을 위해 갖춰야 할 필수 조건으로, 항공사의 핵심 무형 자산으로 분류된다. 특히 항공사 수익과 직결된다는 점에서 전 세계 항공사가 슬롯 확보에 사활을 걸고 있다.

인기 허브 공항의 경우 슬롯이 다 차 있는 경우가 많아 운수권을 확보했다고 하더라도 주요 슬롯을 배정받기가 어려울 수 있다. 이 때문에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기업 결합 심사 과정에서 해외 경쟁당국이 내건 조건 대부분이 운수권 양도와 슬롯 반납이다. EU 경쟁당국은 인천~파리·프랑크푸르트·로마·바르셀로나 운수권 양도를 조건으로 승인을 내줬다. 중국도 부산~칭타오·베이징, 인천~장자제·시안 등 주요 노선 운수권과 슬롯 반납을 조건으로 기업 결합을 승인했다. 대한항공 측은 자사의 운수권과 슬롯 등은 남겨둔 채 아시아나항공이나 에어부산 등의 노선을 양도하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항공업계는 중첩된 상당수 슬롯이 해외 항공사로 넘어가면서 국가 항공산업의 경쟁력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유럽 노선은 티웨이, 미주 노선은 에어프레미아로 이관되면서 국내 항공사가 운수권을 확보하기는 했지만, 운영 정상화까지 상당기간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보인다. 영국의 경우 히드로공항 슬롯(왕복 28개)은 타국적사인 버진애틀랜틱으로 넘어갔다.

한 항공업계 관계자는 “항공사가 시간대별로 수익을 달리 창출한다는 점에서 슬롯 확보도 운수권 만큼이나 중요하다”며 “황금 시간대 슬롯을 한번 반납하면 되찾아오기가 상당히 힘들다”고 밝혔다.

■에어부산 일본노선 최강자 ‘흔들’

일본 경쟁당국의 요구로 에어부산이 위기에 처한 것도 슬롯 때문이다. 일본 경쟁당국이 양도 노선에 대거 포함시킨 곳은 나리타공항을 오가는 노선들이다. 단거리 비행이 주를 이루는 국적 저비용항공사(LCC) 사이에서 일본 노선은 핵심 먹거리다. 지리적으로 가깝고 이용객이 많아 수익 창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한다.

에어부산의 지난해 말 일본 정기노선 전체 누적 탑승객은 1000만 명을 넘어섰다. 2010년 부산~후쿠오카 노선 취항 이후 오사카, 도쿄(나리타)에 잇따라 취항하면서 2015년 200만 명을 넘어선 이래 매년 100만 명씩 탑승객을 늘렸다. 코로나19로 주춤했지만, 2022년 900만 명을 돌파한 데 이어 1년 만에 또다시 승객 100만 명을 보탠 것이다.

일본인 관광객들이 에어부산을 이용하는 빈도도 높은 편이다. 지난해 1~9월 김해공항을 통해 입국한 일본인 13만 9000여 명 가운데 8만 4000여 명이 에어부산을 탑승했다. 김해공항 입국 일본인 10명 중 6명이 에어부산을 이용한 셈이다.

일본 경쟁당국의 요구로 반납해야 할 슬롯 상당수가 에어부산의 인기 노선이라는 점에서 에어부산이 입을 타격이 엄청나다. 반납할 가능성이 있는 슬롯만 왕복 기준 224개에 이른다. 김해공항에서 출발하는 삿포로와 후쿠오카의 운항 및 여객 점유율은 절반이 넘으며, 오사카 역시 각각 43.9%와 47.8%에 이른다. 반면, 도시에 근접해 있고 운항 거리가 짧아 황금 노선으로 분류되는 김포~하네다 노선은 양도 슬롯 목록에서 제외됐다.

한 LCC업계 관계자는 “대한항공의 알짜 노선은 유지된 데 반해 LCC들이 주로 운영하는 노선들이 양도 목록에 들어갔다”며 “에어부산의 수익성 악화 가능성이 크다”고 우려했다.


윤여진 기자 onlypen@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