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쩡한 임대업체도 파산 위기… 세입자는 돈 떼일까 잠도 못 자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부산닷컴 기사퍼가기

부동산 침체가 부른 전세 시장 경고음

부산의 대형 부동산 임대업체가 파산 위기에 처하면서 세입자 피해가 우려된다. 사진은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밀집해 있는 부산 수영구와 남구 일대. 부산일보DB 부산의 대형 부동산 임대업체가 파산 위기에 처하면서 세입자 피해가 우려된다. 사진은 아파트와 오피스텔이 밀집해 있는 부산 수영구와 남구 일대. 부산일보DB

경기 악화·고금리·전세사기 탓

부산 업체 지난달 기업회생 신청

“전세금 제때, 제대로 받을지…”

세입자들 당혹감에 불안감 커져

부동산 경기가 최악을 거듭하면서 부산의 건실한 부동산 임대업체들도 경영난을 견디지 못하고 위기에 빠져들고 있다. 전세 보증금 반환조차 못 하는 업체까지 나오면서 세입자들은 전세금 대란을 우려하고 있다.

6일 부산회생법원 등에 따르면, 해운대·남·수영구 등지에서 오피스텔, 빌라 등 부동산 임대 사업을 하는 A업체는 지난달 법원에 기업회생을 신청했다. 부동산 시장 악화와 고금리 등 여러 악재가 겹치면서 정상적 회사 운영이 힘든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특히 부산 지역 곳곳에서 일어난 전세사기가 A업체 경영난을 부추겼다. 전세사기 불안을 느낀 기존 세입자들이 계약을 중도 해지하는 반면 신규 전세 수요자는 쉽사리 나타나지 않았다. 자금 순환이 막히자 경영이 빠르게 어려워졌다. 2019년 창립한 A업체는 부산 각지에 오피스텔 빌라 등 모두 26개 건물을 확보하고 임대업을 벌여왔다. 관리 세대만 850세대가 넘고 장학금 전달, 코로나19 시기 관리비 인하 등 사회 공헌도 활발히 해왔다.

하지만 A업체는 지난달 회생 절차가 진행 중이라는 사실을 세입자들에게 일괄 통보했다. A업체는 “회사를 믿고 선택해 준 그 마음에 무거운 책임감을 가지고 경영했으나 더이상 전진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며 토로했다.

A업체 관계자는 이날도 자사 관리 건물을 돌며 세입자를 대상으로 간담회를 열었다. 간담회에서는 회사 상황을 공유하고 향후 대응 방안을 안내했다.

세입자들은 갑작스러운 소식에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혹시 전세금을 돌려받지 못하는 것 아니냐는 불안감이 가장 컸다. 다만, 이 업체 관리 건물은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보험에 가입된 상태인 것으로 파악됐다.

세입자 B 씨는 “어떤 사전 소통도 없이 갑자기 간담회에서 회사 상황을 들어 너무 혼란스럽다”며 “HUG 보증보험에는 들어 있지만, 정말 전액을 그대로 받을 수 있을지, 제때 받을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말했다.

세입자들은 특히 전세 보증금 반환을 받으려면 일정 기간이 소요된다는 점을 답답해 한다. HUG로부터 전세 보증금을 반환받는 데에는 전세 계약이 만료된 날로부터 최장 3개월이 걸릴 수 있다. 세입자들은 집을 옮기려면 당장 돈이 필요한 형편이다. 은행 대출 연장 여부를 고민하는 세입자도 있다.

전세사기를 걱정하는 세입자도 있었다. 다음 달 결혼 예정이라고 밝힌 글쓴이는 포털사이트 블로그에 “살림을 하나로 합쳐야 하는데 너무 머리가 아프고 불안하다”며 “은행, HUG 중 어디부터 먼저 해야 할지 잘 모르겠다”고 도움을 청했다.

세입자들은 A업체가 어느 정도 규모가 있는 전문 업체여서 이번 일이 더 충격적이라는 반응을 보인다. A업체는 세입자 불편을 돕는 센터를 두는 등 전문 임대업체였다.

일부 세대 보증금 반환 못하자

건물 전체 보증보험 가입 불가

업체 “한 번 삐끗하면 못 일어서”

HUG “채무 불이행 당연한 조치”

전세사기 사건 속출로 당국의 임대인·임대업체 관리가 엄격해지면서 이런 상황이 역설적으로 임대업계 경영난을 부추기는 결과를 낳는다는 주장이 나온다. 임대업체에 과도한 책임을 요구하는 제도 탓에 회복할 기회가 없어진다는 것이다.

부산 전역에 26개 동, 852세대를 관리하며 부동산 임대업을 해 온 전문 임대기업 A업체는 경영난을 견디다 못해 최근 법원에 회생신청을 했다. 그 결정타가 된 일은 바로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신규 보증보험 가입 거부였다. A업체가 지난해 7월 일부 세대 전세 보증금 반환을 정상적으로 처리하지 못하자 HUG가 대신 지급했다. HUG는 이후 전세 보증금을 갚을 때까지 A업체가 소유한 26개 동 전부에 신규 보증보험 가입을 거부했다.

곧바로 A업체는 어려움에 처했다. 당시는 전세사기 불안감이 퍼져나가던 때여서 보증보험 가입이 안 되는 건물에 들어오려는 세입자는 없었다. 2%대였던 A업체 공실률은 최근 20%까지 치솟았다. 자금이 막히면서 경영난은 더욱 심해졌다.

또 전세 계약 만료가 돌아오는 세입자가 잇따랐고 A업체가 HUG에 갚아야 할 돈도 늘어갔다. A업체가 현재 HUG에 갚아야 할 금액은 150억 원가량이다. 전세 보증보금이 한 번 막힌 시점부터 A업체는 다시 일어설 힘을 잃어버린 셈이다.

A업체는 임대인이 소유한 모든 건물이 아닌 문제가 있는 세대에 대해서만 보증보험 가입 여부를 판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 회사 대표는 “현재 HUG 측 행정은 일종의 ‘연좌제’라 생각한다. 문제 세대에 대해서만 보증보험 신규 가입을 거부하면 다른 세대에서 발생하는 수익으로 이를 갚을 수 있다”며 “국토교통부와 HUG에 개정 요구를 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HUG는 규정에 따른 당연한 조처라는 입장을 밝혔다. HUG 관계자는 “건물이 달라도 HUG로서는 채무를 불이행한 사람이 소유한 곳인데, 신규 보증보험을 들어주지 않는 건 당연하다”고 전했다.

A업체 회생 신청이 부산 임대업계 현주소를 보여준다는 목소리도 있다. A업체처럼 경영난을 겪는 임대업체가 수두룩하다는 것이다.

부산지방회생법원에 따르면, 이날 기준 A업체를 포함해 임대업체 3곳이 도산 절차를 진행 중이다. 표면에 드러나지 않은 사례까지 고려하면 임대업체 경기는 최악이라는 게 부동산 업계의 시각이다. 과도한 스트레스 등으로 임대인이 극단적 선택을 한 일도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한 공인중개사는 “법인 부동산 매물은 필요한 서류가 많아 공인중개사들도 기피한다. 전세 계약 10개 중 8개가 개인이 소유한 부동산 매물”이라며 “A업체뿐만 아니라 전세 사기로 회전이 멈추면서 어려워진 업체가 상당히 많다”고 전했다.


김준현 기자 joon@busan.com

당신을 위한 AI 추천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