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밀물썰물] 미국과 싸우는 미국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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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정치컨설팅 기업 유라시아그룹은 2024년을 정치적으로 ‘볼드모트(해리 포터 시리즈에 등장하는 최고 악당)의 해’로 정의하고 3개의 전쟁이 세계를 지배할 것이라고 했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이 포함됐는데 나머지 하나는 미국과 싸우는 미국(the US vs. itself)이 꼽혔다. 미 대선이 정치적 분열을 심화하고 세계 안보와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의미다. 앞선 두 전쟁보다 ‘자신과 싸우는 미국’이 더 큰 위협이 될 것이라는 게 유라시아그룹의 경고였다.

11월로 예정된 미 대선 대진표가 민주당 바이든과 공화당 트럼프의 리턴매치로 확정되자마자 서로를 향해 독설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세계 민주주의의 보루라는 수식이 무색한 상황이다. 풍자나 여유 같은 것은 찾아보기 어렵다. 바이든이 7일(현지시간) 국정연설에서 트럼프를 ‘내 전임자’로 지칭하며 ‘푸틴에게 머리를 조아렸다’고 공격하자 트럼프는 ‘극단적 좌파 미치광이들만 이용할 내용’이라며 바이든을 ‘사이코’라 직격했다. 바이든 ‘나이 리스크’와 트럼프 ‘사법 리스크’ 프레임이 부각된 가운데 상대 후보에 대한 조롱성 광고까지 등장했다.

미 대선은 이제 세계 각국의 걱정거리다. 특히 트럼프 대세론이 확산하면서 ‘트럼프 2.0 시대’에 대한 우려가 커졌다. 누가 당선되든 글로벌 리더로서 미국의 역할과 책임은 축소되겠지만 트럼프는 이를 훨씬 가속하고 독재자들에 대한 호의적 정책을 추진할 것이라는 전망 때문이다. 미국의 민주주의가 위협받는 것은 물론이고 세계 권위주의 국가들이 득세할 가능성도 높다는 것이다. 트럼프는 푸틴을 천재라고 칭하며 존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글로벌 통상이나 기후 및 에너지 정책에 대한 후퇴도 우려되는 대목이다.

우리라고 예외일 리 없다. 트럼프는 주말 격전지 조지아주 유세에서 “한국과 중국이 세탁기를 덤핑하고 있었고, 우리는 세이프가드로 월풀을 구했다”며 보호무역 타깃으로 한국을 거론했다. 최근 대미 수출과 무역흑자, 투자가 확대되는 상황이어서 더 큰 타격이 우려된다. 김정은과의 친분도 자랑했는데 자신에게 정치적 트로피를 안겨 줄 수 있다고 판단할 경우 직접 대화에 나설 수도 있다. 이 경우 비핵화 원칙을 고수할지 사실상 핵 군축 협상 쪽으로 정책 전환할지도 미지수다. 경제든 외교든 가장 큰 리스크는 불확실성이다. 미 대선의 불확실성이 우리 외교 역량의 중요한 시험대로 떠올랐다.


강윤경 논설위원 kyk9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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