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증원 찬성하지만 공공의료 고민 없어 아쉬워”… 병원에 남은 전공의 익명 인터뷰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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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더기 이탈한 병원에 남은 그들
‘다른 생각 전공의’ 익명 인터뷰

현재 의사 집단행동은 명분 부족
국민 설득 모색보다 투쟁 앞세워
정부 차원 지역 공공병원 세우고
지역 의대 졸업 의사 정착 도와야
의사 1인만 책임지는 체계에서는
연봉 3억 원 넘어도 보건소 안 가

전공의 집단이탈이 17일째 계속되며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7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전공의 집단이탈이 17일째 계속되며 의료공백이 장기화하고 있는 7일 대구 한 대학병원에서 의료진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오전 11시 기준 전국 100개 수련병원 전공의 1만 2912명 중 병원을 이탈한 전공의는 1만 1994명이다. 전체의 92.9%로, 병원에 남은 전공의가 7.1%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지난달 24일 전공의 집단행동이 시작된 지 4일 만에 SNS에 ‘다생의’(다른 생각을 가진 의대생·전공의) 계정(@any_medics)이 등장했다. ‘다른 생각’을 품고 병원에 남은 소수의 전공의가 있지만, 이들의 목소리를 들어볼 기회가 별로 없었다. 〈부산일보〉는 서면과 전화를 활용해 다생의 소속 전공의 A씨와 인터뷰했다. 향후 피해를 우려해 익명으로 A 씨와의 인터뷰를 편지 형식으로 정리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비수도권 의대를 졸업하고 부산의 한 병원에서 근무하는 전공의 A입니다. 저는 병원 현장을 지켜야겠다는 의사로서의 신념에 따라서 남기로 결정했습니다. 전공의 파업 명분이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겉으로는 더 나은 의료를 위해서라지만 전공의 사직 대란이 지나치게 의대 정원 증원 숫자와 집단행동에만 집중하는 것에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현재 ‘다생의’에서 활동하는 전공의와 의대생은 다양합니다. 집단행동에 동의하지 않는 전공의도 있고, 가정을 지켜야 하거나 돈을 벌어야 하는 현실적 이유로 남은 사람도 있습니다. ‘다생의’에서 활동하는 부산 전공의 숫자는 말씀드릴 수 없지만, 그리 많지는 않습니다.

병원 현장에 남아있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뉴스에 등장하는 것처럼 파업에 동참하지 않은 전공의 목록이 소위 ‘참의사 리스트’로 떠돌 정도로 내부 비난 목소리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그래서 외부적으로 당당히 ‘다생의’라고 밝히기 어렵습니다. 신분이 밝혀지면 따돌림 당할 것이 뻔하거든요. 익명 의사 커뮤니티에서도 주류 의견과 반대되는 의견을 제시하면 수많은 악성 댓글이 달리고 모욕이 따라옵니다. 의사 집단이 폐쇄적이라 그만큼 다른 의견에 열려 있지 못하기도 합니다.

현재 의사 집단의 행동은 더 나은 의료를 위한다는 명분이 부족합니다. 무엇을 위해 파업을 하는지, 어떻게 국민을 설득할지보다 단순히 ‘의대 정원 증원 전면 백지화’ 투쟁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다생의’는 기본적으로 의사 증원에 동의합니다. 다만 2000명 증원이라는 숫자에 많은 관심이 집중되면서 공공의료에 대한 고민이 별로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습니다. 공공의료에 대한 생각이 없는 증원은 수도권의 피부과, 성형외과 같은 미용에 종사하는 의사를 늘릴 가능성이 많고, 의사 생존 경쟁을 부추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정부가 공공의료기관을 충분히 공급하고, 공공의대를 설립해 공공의료에 종사할 의사를 더 길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지역의사제 도입도 필요합니다. 장학금 방식이 아니라 아예 지역의사 숫자를 정해 놓고 따로 뽑는 방법도 있습니다. 과거 한국에서 공중보건장학제도를 실시했지만 의사 지원이 미미해 다른 방식의 지역의사제가 도입되면 좋겠습니다.

의사에게 5~9년은 그렇게 긴 기간이 아닙니다. 의대 졸업 후 인턴 1년, 레지던트 4년까지 수련하면 5년입니다. 10년 이상 지역 근무를 의무화하는 지역의사제 도입이 필요합니다. 지역의사제로 배출된 의사가 일할 곳도 있어야 합니다. 지역 공공병원과 공공의원 등 공공의료기관을 확충해 의사가 안정적으로 일할 수 있고, 환자가 양질의 치료를 받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의대 커리큘럼은 종합병원 위주로 구성돼 있는데요, 1차 의료를 배우거나 체험할 기회가 없는 점이 아쉽습니다. 지역의료는 병원급이 아닌 의원에서도 많은 부분 담당하고 있는 만큼 의대 교육 자체에 지역 기반, 1차 의료 수련 내용이 더 많이 담기면 좋겠습니다. 보건복지부에서 시범적으로 1차 의료 실습사업을 하고 있지만 역부족입니다.

지역 의료체계도 변해야 합니다. 어느 지역 의료보건소가 연봉 3억 6000만 원을 제시했지만, 지원하는 의사가 없다는 보도가 있었는데요, 단순히 연봉 문제가 아니라 의사 1명에게 지나치게 의존하는 구조라 의사들이 기피한 겁니다. 의사 1명이 야간·주말 콜 대기를 계속해야 하고, 개인사업자 등록에 손해보험 가입 의무화로 의료사고나 분쟁 발생 때 의사 개인이 해결해야 해 지원하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소도시뿐만 아니라 많은 병원에서 의사를 구하기 어려운 상황이기는 합니다. 어렵게 배출된 의사가 소도시에 가기 꺼리는 이유는 출신이나 삶의 터전 자체가 수도권인 경우가 많아서라고 생각합니다. 지방 의대에도 서울 특히, 강남 3구나 자사고 출신이 많은 편이라 이들이 굳이 지역에 남아 있을 이유를 찾지 못합니다. 제가 지역의사제나 공공의대가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큰 이유 중 하나입니다.

저는 전공의가 몇 남지 않은 병원에서 오늘도 환자들과 만납니다. ‘다생의’의 생각이 ‘다른 생각’이 아닌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부산에서 일하는 전공의 A 올림.


손희문 기자 moonsla@busan.com , 조영미 기자 mia3@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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