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모룡 칼럼] 대변항 멸치 축제의 역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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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해양대 동아시아학과 교수

20여 년간 여러 차례 어항 정비해
광장 조성… 조형물에 야간 조명
최근엔 철 지난 개발로 몸살 겪기도

물가·인건비 오르고 일할 사람 없어
올해 멸치 축제 취소 너무 안타까워
부산시나 시민사회라도 나섰으면

유난히 포근하고 비도 자주 내린 겨울이었다. 봄소식을 전하는 매화가 평년보다 한 달 일찍 핀 곳도 많다고 하니 급하게 당도한 봄이 마냥 반갑지만 않은 게 기후변화에 관한 불안을 슬그머니 되살아나게 하는 탓이다. 개학을 앞두고 일에 쫓기다 잃어버린 입맛이라도 찾자는 심사로 부산 기장 대변항을 찾았다. 멸치찜에 쌈을 싸서 먹는 밥은 더없는 음식이다. 송수권 시인은 경남 창녕 우포의 붕어조림을 천상의 맛이라고 했다는데 대변항의 멸치찜도 그에 뒤지지 않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연거푸 보름에 걸쳐 두 차례나 멸치찜 신세를 지면서 꺼칠하기만 했던 입맛을 도로 회복하는 호사를 누렸다.

대변항은 다대포항, 천성항과 더불어 우리 부산이 자랑하는 세 개의 국가어항 가운데 하나이다. 전국에 걸쳐 110개의 국가어항이 있는데, 해역의 어획 자원이 풍부하고 내항하는 어선이 많을 뿐만 아니라 어업과 양식 가공이 활발한 경우에 국가가 개발하고 지원하는 항구에 해당한다. 대변항은 알다시피 멸치와 미역으로 유명한 곳이다. 1971년부터 국가어항(당시의 1종 어항)이었으니 그 역사가 만만치 않다. 본디 대변포(大邊浦)로 불린 곳인데 조선 후기에 대동미 창고가 있는 포구라는 의미의 대동고변포(大同庫邊浦)에서 유래했다고 하니 조선 조정이 대동미를 실어 나르던 항구였다고 할 수 있다. 1914년 일제의 행정구역 개편으로 동쪽 용암마을과 서쪽 무양마을을 합쳐 대변리로 하였다고 한다. 이 고장에 사는 초등학생들이 어감을 탓하며 교명을 바꿔 달라고 해 2018년 대변초등학교를 용암초등학교로 교체한 일도 있었다.

여기서 대변항의 유래나 지명을 논할 생각이 아니다. 무엇보다 20여 년 보아온 대변항의 변화를 말하고자 한다. 국가의 지원으로 여러 차례 바다를 매립하고 매축해 어항을 정비했다. 방파제를 키우고 물양장을 늘리는 등의 작업을 했고 관광 기능을 겸비한 다기능 어항으로 발전시켜 주차장을 확대하고 2016년 멸치광장을 조성하는 한편 멸치를 상징하는 조형물을 세웠다. 어항을 중심으로 매끈하고 넓은 공간으로 변신하는 가운데 노변 천막 상점들도 서편에 새로 지어진 임시 건물에 모이게 되었다. 지난 20년 사이에 나타난 엄청난 풍경의 변모다. 오랫동안 아름다운 어촌으로 알려졌고 영화 ‘친구’의 무대가 되기도 했다.

노점이 있을 때 비록 단골은 아니나 가끔 생미역이며 갈치 등을 구매한 적이 있어서 수소문으로 새로 생긴 건물의 가게를 찾아가니 손님의 발길이 드물어지고 매상이 이전의 노변 가게보다 못하다는 하소연을 듣게 됐다. 어항 확충이라는 뒤늦게 찾아온 근대화 바람에 그만 정다운 장소를 잃고 말았다. 과연 주차장을 만들고 광장을 조성하면 더 많은 관광객이 모일까? 멸치 상징 조형물에 야간 조명까지 비추기도 하지 않았는가? 개발이 아니라 재생으로 패러다임의 전환이 이루어진 한참 뒤에 대변항은 철 지난 개발의 몸살을 겪은 셈이다. 지난주 금요일 저녁에 다시 들렀는데 문을 열지 않은 가게가 적지 않았고 주차장에 빈자리도 많았다. 꽃샘바람 탓인지 풍경이 썰렁하기만 했다.

더욱 놀란 일은 4월이면 열리던 대변항 멸치 축제가 취소되었다는 소식이다. 부산의 축제 가운데 빛축제와 불꽃축제 등과 함께 수위에 놓이면서 지역 특산물을 내세운 축제로 최고의 자리에 있는 축제가 아닌가? 달맞이언덕의 벚꽃이 화들짝 지고 난 아쉬움을 대변항 멸치회와 소주로 달래던 부산 사람들의 추억이 사라지는가? 물가가 오르고 인건비가 오르는 마당이니 기장군이 예산을 올려주어도 추진 단체가 그 적자를 메울 방도가 없는가 보다. 더군다나 함께 일할 사람이 부족하다고 한다. 축제의 주체가 주민이다 보니 멸치 어장이 활성화하는 4월에 청년을 모으기 힘들고 고령화로 부녀회도 제 기능을 찾기 어렵다는 소식이다. 코로나가 만연하던 두 해를 빼고서 1997년부터 매년 4월, 한 해도 거르지 않은 축제를 열 수 없다니 실로 통탄할 일이 아닐 수 없다. 내년을 기약한다고 하나 그 전망이 밝지만 않다는 게 중론이다. 국가어항으로 어항 정비와 관광지 조성에 쏟아부은 엄청난 국비와 비교해 1억 2000만 원이라는 군비는 새 발의 피에 미치지 못할 예산이다. 물론 재정 운용에 다소 어려움을 겪는 기장군으로서도 여기에 더 많은 예산을 투여할 여력이 없으리라 짐작한다. 그렇다고 부산을 대표하는 축제를 고령화를 탓하거나 기초 단체의 책임으로만 미루어도 될 일인가? 부산시가 나서거나 이도 어렵다면 시민사회가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방안은 없는 것일까? 부족한 재원을 투여해 광장에 전을 펼치고 유흥을 돋우면서 요리를 내어놓는 기왕의 축제가 아니라도 기존의 가게에 더 많은 시민이 내왕하게 하는 공락(共樂)의 잔치는 불가능한 일일까? 아니면 광장에 난전을 열어 추억의 마당이라도 만들면 어떻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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