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위기는 위기 이후에 온다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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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론 전쟁, 출구는 있다 / 이영훈

위기 대처 방식에 대한 ‘참고서’
기업 위기의 다양한 사례 분석
개인의 일상적 위기 때에도 통용

<여론 전쟁, 출구는 있다> 표지. <여론 전쟁, 출구는 있다> 표지.

누구나 살아가면서 위기를 맞는다. <여론 전쟁, 출구는 있다>의 저자는 “(위기) 발생 이후가 진짜 위기”라고 강조한다. 지금 처한 위기가 무엇이든 간에, 정작 치명적인 위기는 아직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 위기를 대처하는 방식에 따라 더 큰 위기가 뒤따르기도 하고, 반대로 현명하게 위기를 해결할 수도 있다는 의미다.

실제 사례를 들어보자. 1982년 미국 시카고에선 6명이 연쇄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사망자 모두 죽기 전에 타이레놀 캡슐을 복용한 것으로 드러났다. 존슨앤드존슨은 즉각 캡슐 전량을 수거했고, 공개적으로 문제의 심각성을 알렸다. 사건 직후 타이레놀 판매량은 절반으로 떨어졌지만, 시민들은 회사의 용기 있는 행동에 찬사를 보냈다. 이후 존슨앤드존슨은 3년 만에 과거의 점유율을 회복했다. 반대의 사례도 있다. 2010년 도요타 자동차의 부품 결함으로 미국에서 일가족 네 명이 사망한 사고가 발생했다. 그러나 도요타는 자사의 결함이 아니라 운전자의 부주의라고 주장하다가 여론의 거센 반발을 샀고, 결국 1000만여 대의 차량 리콜 명령까지 받았다.

위기 사건을 대하는 두 기업의 차이는 무엇이었을까. 저자에 따르면 ‘위기 커뮤니케이션’ 성공 여부의 차이다. 위기 커뮤니케이션이란 ‘기업이 무엇을 잘못했는지’ 그리고 ‘사람들은 이 사건을 어떻게 평가하는지’를 정확히 인식한 후 그에 맞는 적절한 대응 메시지와 해결 방향을 찾아 실행하는 것을 말한다.

저자는 자칫 ‘하나마나한 공자님 말씀’처럼 들리기 쉬운 이야기를 ‘위기 삼각형’ ‘포지션 방정식’ 등으로 구체화·도식화함으로써 보다 명쾌하게 설명한다.

위기에는 삼각형의 세 꼭지처럼 세 가지 구성요소가 있는데, 저자는 이를 ‘위기 삼각형’이라 불렀다. 세 가지 구성요소는 ①‘위기’ 그 자체와 ②위기를 초래하고 또한 위기를 겪고 있는 ‘가해자’ ③위기로 인한 ‘피해자’이다. 세 구성요소를 꼭지점으로 삼각형을 그릴 때, 세 개의 빗변은 각각의 질문을 만든다. ‘위기-피해자’ 빗변(X)은 사건의 영향(피해 정도)과 의미를 묻는다. ‘위기-가해자’ 빗변(Y)은 사건의 책임 소재를 가린다. ‘가해자-피해자’ 빗변(Z)은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어떤 보상과 대안을 내놓을 것인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이어지는 ‘포지션 방정식’은 위기 당사자(가해자)가 어떤 입장을 취할 것이냐를 결정하는 의사결정 방식이다. 세 개의 빗변(X, Y, Z) 중 X, Y에 여러 선택지를 각각 대입해 Z의 값을 이끌어낸다. X값은 ‘위기와 피해의 인과관계’에 대한 입장이다. 이를 ‘인정’하거나 ‘축소’하거나 ‘부정’할 수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원전에서 내뿜는 방사능과 원전 인근 갑상선암 피해자의 인과관계다. 한수원은 ‘부정’이라는 입장을 택하고 있다. Y값은 위기-피해의 인과관계를 전제로 ‘가해자가 위기를 일으켰냐’의 여부다. 이번엔 ‘인정’하거나 ‘부정’하거나 혹은 ‘인정하되 의도는 없었다’라는 선택지가 존재한다. X, Y값을 어떻게 선택하느냐에 따라 Z값(보상과 대안)도 달라진다.

책은 전반적으로 기업 위기에 대해 다룬다. 실제로 위기를 겪은 기업과 그 기업의 대처 방식을 다양한 사례로 설명해 흥미롭게 읽힌다. 기업 위기를 다루지만 대처 방식은 일상생활에서 개인이 겪는 위기에도 충분히 통용된다. 특히 4월 총선을 앞두고 막말 등으로 위기를 겪고 있는 정치인들이 읽으면 좋겠다. 아뿔싸, 이미 손 쓰기엔 때늦은 정치인도 머리 속에 떠오른다. 이영훈 지음/한국경제신문출판사/336쪽/2만 원.


김종열 기자 bell10@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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