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대폰 없이 본인인증을 하려면…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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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 작가로 유명한 김한나
OKNP ‘본인인증의 달인’전
“본인다움 대해 표현하고파”

김한나 ‘김한나 본인인증 방법 1.방귀 모양 확인’. OKNP제공 김한나 ‘김한나 본인인증 방법 1.방귀 모양 확인’. OKNP제공

10년 전쯤 휴대폰 없는 삶에 대해 취재를 한 적이 있다. 당시 휴대폰이 없는 이들은 공통으로 “나는 생활에 불편이 전혀 없다. 주변 사람들이 불편하다고 토로한다”라고 했다. 대체로 아날로그적인 삶이 얼마나 행복한지에 대해 이야기했고 인생의 신념처럼 휴대폰이 없는 삶을 이어 가겠다고 말했다.

2024년, 무휴대폰자의 삶은 어떨까. 여전히 “나는 불편한 것이 하나도 없다”일까. 아마도 아이와 고령자를 제외하면 정작 휴대폰이 없는 사람을 찾는 것조차 쉽지 않을 듯하다. 40대 작가 김한나가 2024년 휴대폰이 없는 삶에 대해 전시를 통해 세밀하게 보여준다.

부산 해운대 오케이앤피(OKNP)에서 다음 달 7일까지 열리는 ‘본인인증의 달인’전은 토끼 작가로 유명한 김한나의 개인전이다.

지난 20년이 넘는 시간, 작가는 본인의 이름을 딴 ‘한나’라는 소녀와 토끼를 작품 속에 함께 등장시켰다. 둘은 일상의 소소한 순간을 함께하며 다양한 감정을 나눈다.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장면들이기에 관객은 작품에 자기 모습을 투영하고 위로받는다. “제 어린 시절 모습 같아요” “우리 아이 같아요” “제가 생각하는 힐링인 것 같아서 몰입하게 되네요”라는 감상평을 남긴다. 이런 이유로 김한나는 열성팬 층이 두텁고 한국을 넘어 중화권, 동남아까지 팬들이 생겨나고 있다.


김한나 ‘굉장해’. OKNP제공 김한나 ‘굉장해’. OKNP제공

그룹전과 2인전, 3인전 등 단체전을 비롯해 다른 분야와 협업 등 꾸준히 활동을 이어 온 작가는 40여 점의 신작을 들고 4년 만에 부산에서 개인전을 열었다. 워낙 수줍음이 많고 조용한 편이라 언론과도, 관객과의 대화에도 거의 나오지 않는 작가지만 이번에는 자신의 이야기를 좀 더 과감하게 드러낸다. 바로 휴대폰이 없는 사람의 삶이다.

“휴대폰은 단 한 번도 가진 적이 없어요. 불편하다고 생각하지도 않았고요. 근데 요즘 불편한 게 생겼죠. 바로 본인인증이라는 절차죠. 회원 가입을 하려고 해도, 은행을 비롯한 금융 업무도 모두 우선은 핸드폰으로 숫자를 받거나 앱으로 본인인증을 한 번은 해야 하죠.”


김한나 ‘발에 땀 지문 인식’. OKNP제공 김한나 ‘발에 땀 지문 인식’. OKNP제공

김한나 ‘신은 양말로 로그인’. OKNP제공 김한나 ‘신은 양말로 로그인’. OKNP제공

본인인증의 악순환(?)에 머리가 아플 때쯤 작가에게 관심 있게 들린 뉴스가 있었다. 해커로 인해 이동통신 3사가 무방비 상태가 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을 어떻게 인증할지 궁금해졌다. 작가적인 상상력이 발동했다. ‘내가 외우는 노래, 시를 암송하기’ ‘내 글씨로 편지 쓰기’ ‘내가 본 별의 수를 말하기’ ‘나만의 발에 땀 인식하기’ ‘방귀 모양 확인하기’ ‘얼굴 인식 기계 도입하기’ 등이다.

기발한 이 생각은 고스란히 화폭에 담아졌다. 한나와 토끼는 휴대전화 없이 열심히 본인인증을 하는 방법들을 찾아내고 있다. 유쾌한 방법들을 보며 관객은 웃음이 터진다.

작가가 휴대폰 없이 본인인증하는 방법이라는 주제를 선택한 건 바쁘게 살아가며 잃어버린 정체성, 본인다움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관객들이 좋아하는 김한나 작가 특유의 화법은 신작에서도 고스란히 느껴진다. 물감을 아주 얇게 계속 층을 올리다 보니 마치 파스텔화처럼 부드럽고 맑은 느낌이 난다.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고단한 방식이지만 이를 고집하고 있다.


김한나 ‘본인인증 시작’. OKNP제공 김한나 ‘본인인증 시작’. OKNP제공

김 작가는 문인, 출판 분야 관계자들에게 인기가 많다. 한 시인은 “김한나의 토끼는 거북이를 떠올리게 한다”라며 “총명하고 민첩한 토끼라기보다 천천히 내 뒤를 따르며 온전히 나에게 스며드는 토끼”라고 표현했다. 이번 전시에선 시인이자 난다출판사 대표인 김민정 씨가 김한나 작가의 신작 제목들로만 문장을 이어 작가평을 썼다. 기발한 작가평까지 챙겨보길 권한다.




김효정 기자 teresa@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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