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 비평] 선거는 언론에게 도전이자 기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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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화행 동명대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

후보 발언·여론조사 인용 급급
검증 없고 방관·선정주의 만연
총선 보도 준칙 불구 구태 답습
관행 타파 못하면 유권자 외면

제22대 국회의원 선거가 보름 앞으로 다가왔다. 선거를 민주주의 꽃이라고 한다. 선거가 민주주의 학습의 장이며 민주주의를 성숙시키는 원동력이기 때문이다.

선거에서 언론의 역할은 지대하다. 언론은 선거보도를 통해 여론을 형성하여 유권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뿐만 아니라, 정치인들의 태도에도 영향을 미친다. 유권자들은 여느 때보다 정치 기사에 평균 이상의 시간을 할애하고, 정치인은 민심을 살피고 표심을 얻기 위해 보도에 예민하게 반응한다.

선거에서 언론의 자유만이 최선의 덕목이 아님은 자명하다. 언론이 강한 영향력을 가진 만큼 언론의 선거보도는 규제의 대상이 된다. 언론이 보도의 자유라는 권리를 남용하는 것에 대한 방지 조치도 중요하기 때문이다. 투표일에 근접한 시기에 한 건의 검증되지 않은 의혹 보도가 선거에 미치는 파급력이 얼마나 큰지는 많은 경험을 통해 확인되었다. 선거에서 불공정 보도에 대한 조치는 신속하게, 과하다 할 정도로 강력하게 이루어져야 하는 게 상식이다.

선거보도는 언론에게 한편으로 하나의 도전이다. 선거보도가 유권자 개개인들에게 독자적인 의견 형성을 위하여 포괄적 정보를 제공하여야 하며, 다양한 정당의 차이 나는 목소리에 적정하게 대응하는 균형성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다른 한편으로 선거보도는 언론에 새로운 기회이기도 하다. 언론이 공정한 선거보도를 통해 민주주의 발전이라는 본연의 역할에 기여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이로써 유권자인 독자와 시청자의 신뢰를 축적할 수 있는 절호의 시기이기 때문이다. 각 언론사들이 선거 때마다 선거보도 준칙을 마련하여 객관성, 공정성, 형평성을 전면에 표방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언론은 선거보도 준칙을 통해 객관적이고 불편부당한 보도, 적극적인 검증 보도, 그리고 유권자 및 정책 의제 중심의 보도를 약속한다. 언론에 부여된 역할과 준칙에도 불구하고 이번 국회의원 선거보도에서 언론은 여전히 구시대적 관행을 답습하고 있어 실망스럽다.

정파적 편향성을 당연시하는 듯한 보도 태도, 사당화 행태와 같은 불공정성에 대한 방관자적 태도, 저품질의 천박한 선정주의가 만연하다. 이 같은 현상의 근저에는 당장 버려야 할 보도 관행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다.

첫 번째 관행은 흥미 위주의 일화 중심 보도 행태이다. 후보자의 유세장을 따라다니며 벌어진 사건, 사고를 단순 중계식으로 보도하는 기사들은 후보자의 주장으로 가득하다. 제목의 따옴표 인용 처리 관행은 소위 ‘제목 장사’를 의심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기사의 시작부터 끝까지 ‘외쳤다’, ‘비판했다’, ‘지적했다’, ‘비꼬았다’ 등 시종일관 후보자가 주장한 인용문으로 가득하다. 정작 기자 스스로의 관점은 한 문장도 포함하고 있지 않은 기사가 즐비하다. 말실수와 같은 주변적인 돌발 이슈를 부각시키는 일화 중심 보도 행태는 선거를 흥밋거리로 전락시킬 수 있어 사라져야 할 관행이다.

두 번째 관행은 선거를 스포츠 경기나 전쟁 취급하는 보도 태도이다. 격전지, 벨트, 수세, 공방, 공세 등의 군사 용어와 한판 승부, 뒤집기, 추격전, 난타전 등과 같은 스포츠 용어의 사용은 부적절하다. 선거의 본질을 호도할 수 있으므로 일반적이고 품격 있는 언어로 순화해야 한다.

세 번째 답습하고 있는 관행은 지나치게 여론조사 결과를 부각시키는 보도 태도이다. 선거를 결과 지상주의화할 수 있으며, 유권자의 사표 방지 심리를 자극하여 결과적으로 민심을 왜곡할 수 있다. 판세 분석이라는 이름으로 여론조사를 맹신하는 보도 태도를 보이다가, 선거 후에는 상이한 결과로 판명된 여론조사 내용에 대해 어떤 책임도 반성도 없는 행태는 더 큰 문제이다.

언론은 선거보도에 있어서 보도의 자유라는 권리에 상응하는 책임 의식을 새겨야 한다. 언론 선거보도의 본질은 공명선거를 위한 감시 활동, 객관적이고 공정한 정보를 통해 유권자의 선택을 돕는 것, 선거를 활발한 공론의 장으로 만드는 데에 있다.

정치권의 구태만 지적하고, 언론이 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유권자의 성숙한 정치 인식 변화를 따라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결과적으로 유권자의 수준을 무시하는 처사로 인식된다. 언론은 유권자로부터 외면당하고 정치보다 더 강한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정치권이나 유권자만 바라보지 말고 타인의 시선으로 스스로를 돌아봄으로써, 선거 시기의 도전을 자성의 기회로 삼아 관행을 하나씩 타파해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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