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트북 단상] '한국에서 애 낳은 바보'의 제안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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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정 사회부 차장

이 칼럼을 쓰기 위해 자리에 앉기까지, 예상했던 시각보다 꼬박 3시간 35분이 더 흘렀다. 셋째는 아빠를 두고 왜 엄마에게만 책을 들이미는 건지, 숙제 시작 후 5분도 못 버티고 엉덩이가 들썩이는 아들을 다시 앉히는 기술은 왜 엄마만 타고 나는 건지 모르겠다. 학교 알림장에 3주째 ‘○○ 안 해 온 사람’ 목록에서 아들 번호가 사라지지 않으니 준비물과 숙제도 다시 챙겨야 했다. 집안일까지 완수한 뒤 노트북 앞에 앉으려는데, 셋째는 솜이 튀어나오는 애착 인형 바느질도 해 달란다. 그렇게, 퇴근하고 처음 등을 기대고 앉은 시간이 밤 10시였다.

안다. 우리 어머니 세대는 이보다 더 고달팠다. 내 삶이 내 것이 아닌 것 같은 삶은 비단 아이 셋 워킹맘만의 것은 아니다.

그런데, 요즘 젊은 사람들이 아이를 낳지 않는다고 한다. 지난해 합계출산율은 또 역대 최저치를 갈아치워 0.72명을 기록했고, 부산은 0.66명까지 떨어졌다. 최근 만난 한 20대 여성은 1~2년 새 주변에 7쌍이 결혼했는데 아이를 낳겠다는 커플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는 진화생물학자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지극히 당연한 진화적 적응 현상이라고 했다. (동물에 비유하자면) 상황이 좋아져야만 새끼를 낳는다는 것이다. 최 교수는 2021년 11월 유튜브에 ‘한국에서 애 낳으면 바보’라는 영상을 올려 화제가 됐는데 “‘과연 아이를 제대로 키워낼 수 있겠느냐’를 심각하게 고민한 뒤에도 애를 낳는 사람이 있다면 계산이 안 되는 분들, 바보”라고 했다.

정부는 출산율을 높이기 위해 각종 수당부터 시작해 아빠 육아휴직, 유연근무제 등 정책을 쏟아내고 있다. 그러나 장벽은 학교에 입학하면 더 높아진다. 초등학교는 유치원과 달리 오후 1시 무렵 끝나는데, 부모는 저녁 6~7시가 돼야 퇴근한다. 매일 맞닥뜨리는 ‘갭’이 5~6시간이다. 최종 목적지가 입시인 경쟁 교육에서 이 갭의 질에 따라 승자가 가려진다. 경제적 능력이 되고, 엄마도 집에 있으면 승자가 될 확률이 높다. 중·고등학생이라면, 엄마의 정보력과 ‘라이딩’이 아이를 ‘좋은 학원’으로 데려가고, 결국 ‘좋은 대학’으로 데려다 준다.

대부분은 경제적 능력과 집에 있는 엄마, 두 조건을 동시에 충족시키기 어렵다. 맞벌이 가정에서 아이만 ‘학원 뺑뺑이’를 돌리다 결국 상담실을 찾는 사례도 많다. 아이와 부모 모두 고생만 ‘진탕’ 하고, 나쁜 결과는 모두 ‘내탓’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직장 대신 아이를 선택한 경력단절 여성들의 좌절 경험치는 우리 사회에 쌓이고 쌓여 ‘출산 파업’의 밑거름이 됐다.

1년 전 스웨덴에서의 일상을 잠시 빌려 오자면, 그곳에선 학교 정규 수업이 오후 3시 무렵 끝났고 부모는 오후 4~5시에 퇴근했다. 방과후 활동이나 체육 활동을 하며 보내는 갭 1~2시간에 대한 부모 만족도도 매우 높아 학원 뺑뺑이를 돌릴 필요도 없었다.

한국 사회도 인구절벽을 ‘재난’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 현금 퍼주기 정책이 효과가 없었다면 학교 정규교육 시간을 더 늘리고 부모 퇴근 시간을 앞당기는 건 어떨까. 육아기 단축근무로 일부에게만 의무와 눈치를 지울 게 아니라, 모든 노동자의 퇴근을 앞당기자. 생애 전주기 가족이 함께 있는 시간이 늘어나야 우리 사회에 자녀도 늘 수 있다.


이현정 기자 yourfoot@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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