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선율은 통영으로부터 온다 [2024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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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간 속의 영원’ 주제 7일까지
비올라 매력 돋보인 개막 공연
통영 프린지도 5년 만에 재개
“선구자 역할 음악제 되고파”

2024 통영국제음악제가 ‘순간 속의 영원’을 주제로 지난 29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개막했다. 사진은 개막 공연 모습.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2024 통영국제음악제가 ‘순간 속의 영원’을 주제로 지난 29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개막했다. 사진은 개막 공연 모습.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통영의 봄과 함께 해마다 찾아오는 국내의 대표적인 음악 축제 2024 통영국제음악제(TIMF)가 ‘순간 속의 영원(Eternity in Moments)’을 주제로 지난 29일 통영국제음악당에서 개막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지난 2019년 이후 중단됐다가 5년 만에 재개한 ‘통영프린지’까지 가세해 외형상으로는 완전 복귀를 선언했다. 또한 올해는 콘서트홀에서 여는 대부분의 공연을 실시간 스트리밍으로 생중계하고 있다.

올해로 22회째를 맞는 TIMF 상주 연주자는 비올리스트 앙투안 타메스티, 피아니스트 베르트랑 샤마유, 플루티스트 에마뉘엘 파위 등 ‘프랑스 삼총사’가 참여한다. 상주 작곡가는 얼마 전 지병 악화로 세상을 떠난 현대음악의 거장 페테르 외트뵈시다. 통영국제음악제 진은숙 예술감독은 “3월 24일 안타깝게 별세한 외트뵈시를 추모하는 마음을 가지려고 한다”며 “외트뵈시는 제게 음악의 아버지 같은 분으로 20여 년 전 제 작품의 초연을 해 주셨다”고 밝혔다. 이번 음악제 기간 동안 외트뵈시 작품 ‘시크릿 키스’(작곡 연도 2018)와 ‘오로라’(2019) 등 5곡이 연주된다.

개막 공연을 담당한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개막 공연을 담당한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봄날 통영에 오길 잘했네!”

지난 29일 개막 공연으로 선보인 ‘통영페스티벌오케스트라(TFO)1’ 음악회는 타메스티라는 걸출한 비올리스트로 인해 “봄날, 통영에 오길 참 잘했다”는 반응을 초반부터 끌어냈다. 솔로와 실내악 연주자로 활동 중인 타메스티는 “비올리스트의 삶이 이토록 화려할 수 있다니…”라는 평가를 얻고 있다. 이번 개막 공연에서도 그의 장기는 유감없이 발휘됐다.

개막 공연(지휘 스타니슬라프 코차놉스키·독일 하노버 NDR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은 베를리오즈 ‘이탈리아의 해롤드’와 림스키코르사코프 ‘셰에라자드’ 두 곡으로 구성했다.

타메스티는 ‘이탈리아의 해롤드’를 협연했다. 처음 연주가 시작될 때만 해도 무대에 비올리스트 타메스티 모습이 보이지 않아 무슨 일인가 싶었다. ‘걸어 들어오면서 연주를 하려나’ 싶었는데, 웬걸 3분여 동안 오케스트라 연주가 흐른 뒤 왼쪽 무대에서 살금살금 나오더니 하프 옆자리로 이동해 독주하는가 싶더니 어느 순간 하프와 2중주를 연출하는 게 아닌가. 이어 그는 곡이 끝날 때까지 호른 혹은 바순, 더블베이스 옆으로 이리저리 옮겨 다니며 연주했다. 급기야는 다른 연주자 세 명(바이올린 2명, 첼로 1명)과 함께 ‘오프 스테이지 밴드’(무대 바깥으로 나가서 연주) 장면도 연출했다.

현대 창작곡도 아닌, 낭만주의 음악을 들으면서 이런 퍼포먼스를 보게 될 거라고는 상상을 못했기에 관객들은 어리둥절했다. 무엇보다 타메스티가 연주하는 위치에 따라 비올라 소리는 입체적으로 다가왔다. 비올라라는 악기가 저렇게 매력적이었나 싶었다. 곡을 쓴 베를리오즈도 비올라를 돋보이게 했지만, 이를 무대에 멋지게 펼친 건 타메스티의 몫이었다. 두 곡의 앙코르 연주에서도 비올라의 매력은 빛났다. 타메스티는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 1번 전주곡(비올라 편곡)과 힌데미트 무반주 비올라 소나타 제1번 중 4악장을 앙코르 연주했다.

공연 후반부는 ‘셰에라자드’가 장식했다. 바이올린 솔로는 TFO 악장을 맡은 플로린 일리에스쿠(독일 프랑크푸르트 방송교향악단 종신 악장)가 담당했다. 홍콩 신포니에타, TIMF 앙상블 단원, 객원 솔리스트 등 약 90명으로 이뤄진 TFO는 연합팀이라는 한계는 있었지만, 비교적 선전했다는 게 중론이다. 지휘자 스타니슬라프 코차놉스키 역량이 한몫했을 듯싶다.

2024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기자회견.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2024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기자회견. 통영국제음악제 제공

■“유럽과는 다른 색깔 보여야”

임기 5년 중 올해로 3년 차에 접어든 진은숙 예술감독은 더한층 자신감을 내보였다. “(음악제의) 퀄리티만큼은 최상이라고 자부합니다. 앞으로도 이 수준을 계속 유지하기 위해서는 예산 문제 등 밑바닥을 잘 다져야 할 임무가 남아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진 감독은 “음악제의 목표는 다양성 추구라는 점은 변함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우리나라는 클래식의 본고장 유럽과는 위치가 다르며, 우리의 미래 역시 유럽의 미래와는 달라야 한다”면서 “될 수 있는 한 다양한 것을 보여주고 싶었고, 작곡가로서도 그렇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음악제가 초연 작품 등 낯선 레퍼토리가 많다 보니 청중 이해도가 떨어진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진 감독은 입장을 밝혔다. 그는 “대중성에만 포커스를 맞춰서는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한다”면서 “대부분의 사람이 좋아하는 것만 할 수는 없으며, 뭐든 처음에는 인기가 있을 수 없고, 하다 보면 청중들이 따라오게 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많은 사람이 공감하고 즐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그런 걸 선보이는 게 우리의 의무”라며 “당장에는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 못해도 선구자 역할을 하는 음악제가 되고자 한다”고 강조했다.

2024 통영국제음악제 개최 기간에 맞춰 5년 만에 재개한 통영프린지. 사진은 지난 30일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열린 '더티슈' 공연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2024 통영국제음악제 개최 기간에 맞춰 5년 만에 재개한 통영프린지. 사진은 지난 30일 강구안 문화마당에서 열린 '더티슈' 공연 모습. 김은영 기자 key66@

김일태 통영국제음악재단 대표는 “봄철 기상 조건이 좋지 않아서 올해는 예매율 기대치를 조금은 낮춰 잡았는데 예년의 예매율을 유지하는 동시에 유료 관객 수는 늘어서 고무적”이라며 “지속해서 성장 발전하는 분위기가 조성될 걸로 믿는다”고 소감을 밝혔다. ‘지역 기반 축제’임에도 지역민 참여가 부족하지 않으냐는 지적에 대해 김소현 예술사업본부장은 “통영을 포함해 경남 관객이 30% 정도 비중이고, 나머지 70%는 외지 관객인데 극복의 매개체는 프린지라고 생각한다”며 “향후 이런 부분에 대해서도 더욱 프로그램을 강화하겠다”고 덧붙였다.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3월 29일 오후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공연을 관람하기에 앞서 스탠포드호텔앤리조트에서 열린 리셉션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김은영 기자 key66@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지난 3월 29일 오후 통영국제음악제 개막 공연을 관람하기에 앞서 스탠포드호텔앤리조트에서 열린 리셉션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김은영 기자 key66@

한편 이날 개막 공연에는 현직 장관으로는 처음 유인촌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이 참석해 눈길을 끌었다. 공연에 앞서 열린 리셉션에서 유 장관은 “통영음악제가 대한민국은 물론이고 아시아를 넘어 세계적인 음악 축제로 확실히 자리잡기를 소망하며 열심히 뒷바라지하겠다”고 밝혔다. 통영음악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는 천영기 통영시장도 “이제 통영의 봄은 윤이상 선생의 망향을 넘어 아시아가 주목하는 클래식 음악 축제의 모범이 되었다”며 “진은숙 예술감독의 세 번째 작품으로 본격적으로 만개하고 있음을 실감한다”며 감사를 표했다. 2024 통영국제음악제는 오는 4월 7일까지 계속된다.


김은영 기자 key66@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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