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 ‘김건희 김영란법’, 보수 ‘일 원전시찰단’ 오답 최다 [정치 확증 편향 설문조사]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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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김 여사=처벌 대상’ 인식
보수, ‘민간 전문가 제외’ 몰라
응답자 “너무 많이 틀려 놀랐다”
극단적 과몰입이 편향 키운 듯

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운동 후 첫 주말을 맞은 지난달 31일 오후 부산 지역 한 후보의 유세에 지지자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22대 국회의원선거 선거운동 후 첫 주말을 맞은 지난달 31일 오후 부산 지역 한 후보의 유세에 지지자들이 박수를 보내고 있다. 정종회 기자 jjh@

유권자의 ‘정치적 확증 편향’이 얼마나 심각한지 알아보기 위해 〈부산일보〉가 진행한 설문 조사에서 정치 성향이 보수 또는 진보로 뚜렷한 응답자들은 정치 뉴스의 사실 여부를 구분해 습득하기보다는 정치 성향에 따라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 뉴스를 해석하고 받아들이는 경향이 확연했다. 응답자 일부는 정치적 확증 편향을 부추기는 요인으로 극단적 언어와 혐오로 편 가르기에 열을 올리는 정치권과 이를 여과 없이 실어 나르는 언론을 꼽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집토끼’의 몸집만 키우려는 양당의 정치 행태와 언론의 경마식 선거 보도, 상대를 적으로 치부하는 정치 유튜브와 SNS(사회관계망서비스)가 복합적으로 작용하며 정치적 확증 편향과 양극화가 더욱 심화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사실”

이번 설문 조사에서 보수 성향의 응답자들이 가장 많이 틀린 문항은 ‘일본에 파견된 후쿠시마 오염수 정부 시찰단에 민간 전문가는 제외됐다’로 정답률이 22.2%에 그쳤다. 이 문항은 ‘사실’로, 정부가 파견한 시찰단은 유국희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장을 단장으로,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의 원전 시설과 방사선 분야 전문가 19명, 한국해양과학기술원 해양 환경 방사능 전문가 1명으로 구성됐으며 민간 전문가는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보수 성향 응답자 대부분은 이를 가짜 뉴스로 봤다. 진보 성향 응답자들은 이 문항에 55.8%의 정답률을 보여 차이를 보였다.

진보 성향 응답자들이 가장 많이 틀린 문항(정답률 16.3%)은 ‘청탁금지법(김영란법)에 의하면 공직자의 아내인 김건희 여사는 처벌 대상이다’였다. 이는 ‘거짓’임에도 진보 성향 응답자들 대부분은 이를 사실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현행 청탁금지법에는 공직자 배우자의 금품 수수를 금지하는 의무 조항은 있지만, 의무를 위반한 배우자를 처벌하는 조항은 없다. 진보 성향의 응답자들은 대부분 김건희 여사가 처벌 대상이라고 믿고 있었다. 보수 성향 응답자들은 이 문항에 55.6%의 정답률을 보였다.

반대로 보수 성향 응답자들이 가장 많이 사실과 거짓을 제대로 구분해 낸 문항은 ‘경찰은 이태원 참사와 관련해 공개적으로 사과한 적이 없다’로 84.1%의 정답률을 보였다. 이 문항은 가짜 뉴스로, 윤희근 경찰청장은 이태원 참사 사흘 만에 사과 입장을 발표했다. 반면 이 문항에 대한 진보 성향 응답자들의 정답률은 37.2%에 불과했다. 진보 성향 응답자 대부분이 경찰의 공개 사과가 없었다고 생각했다. 진보 성향의 응답자들이 가장 많이 맞힌 문항은 ‘민주당 선출직 최고위원은 전원 운동권 출신이다’로 무려 95.4%의 정답률을 보였다. 이는 가짜 뉴스로, 민주당 선출직 최고위원 가운데 박찬대 최고위원은 공인회계사 출신으로 운동권과 거리가 멀다. 이에 비해 보수 성향 응답자들의 정답률은 53.9%로, 응답자의 절반가량이 민주당 선출직 최고위원은 모두 운동권 출신이라고 알고 있었다.

동아대 김대경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응답자들은 지지하는 진영에 유리한 내용의 뉴스는 사실과 거짓을 잘 가려냈지만 불리한 뉴스는 그렇지 못하는 경향을 보였다. 이는 많은 유권자들이 정치적 확증 편향에 사로잡혀 있음을 보여주는 결과”라고 분석했다.

■심화하는 확증 편향과 정치 양극화

설문에 참여한 A 씨는 “평소 유튜브와 SNS를 통해 정치 관련 뉴스를 많이 접하고 있는데, 이렇게 많이 틀릴 줄 몰랐다”며 “지지 정당과 관련된 정치 이슈와 정보만 집중적으로 보다 보니 사실 여부를 따져 보기보다는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쪽으로만 정보를 습득하고 해석한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응답자는 “정치는 불신이다” “시민들은 거짓 선동에 현혹되고 있다” 등 정치적 확증 편향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그 원인을 정치권과 언론에서 찾았다. 또 일부는 “평소 정치 뉴스를 더욱 꼼꼼하게 보고 습득해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정치적 확증 편향에 빠지지 않기 위한 개개인의 노력이 필요하다고 봤다.

전문가들은 정치적 확증 편향이 정치 성향별로 더욱 양극단으로 치달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올해 초 한국사회및성격심리학회 역시 ‘2024년 한국 사회가 가장 주목해야 할 사회 심리 현상’으로 확증 편향을 꼽기도 했다.

김 교수는 “유튜브와 SNS, 포털에서 개별 사용자의 검색·시청 기록 등을 바탕으로 콘텐츠를 추천하는 알고리즘이 확증 편향을 키우고 있으며, 특히 정치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늘어나는 젊은 층도 이러한 디지털 환경 속에 이념적 편견에 사로잡힐 확률이 높아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이어 “정치권에 팽배한 인기 영합주의와 상대 진영을 향한 혐오, 이를 여과 없이 경쟁적으로 보도하는 언론이 이러한 디지털 알고리즘, 자극적인 가짜 뉴스와 결합해 정치적 확증 편향을 갈수록 증폭시키고 있다”고 진단했다.

정치적 확증 편향은 무의식적으로 과잉 사회화와 과몰입을 초래하며, 그릇된 신념과 상대 진영에 대한 적개심을 키워 폭력성으로 표출되기도 한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와 배현진 국민의힘 의원 피습 사건이 대표적인 예다.

날로 심화하는 정치적 확증 편향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건강한 토론과 상대론적 관점 못지 않게, 다양한 관점의 뉴스를 접할 수 있도록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부산대 이슬기 미디어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미디어와 정보의 홍수로 과부하에 걸린 개인이 한정된 시간 내에 스스로 선호하는 뉴스와 정보를 습득하려는 것은 인지적 측면에서 자연스러운 현상”이라면서도 “확증 편향을 증폭시키는 알고리즘에 대한 규제가 필요하며, 이와 함께 스스로 확증 편향의 위험성을 인지하고 다양한 관점의 뉴스와 정보를 찾아볼 수 있도록 하는 교육과 훈련도 뒤따라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확증 편향과 정치적 집단화가 심화되면서 상대 진영을 대화와 타협의 대상이 아닌 파괴와 박멸, 복수의 대상으로 여기는 경향이 뚜렷해지고 있다”며 “확증 편향에 빠지지 않은 중도층이 늘어날 수 있도록 정치권과 언론의 자정 노력 또한 필요하다”고 밝혔다.



이대성 기자 nmaker@busan.com , 손혜림 기자 hyerimsn@bus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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