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로365] 누군가를 변호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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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소연 법무법인 예주 대표변호사

정계 진출 법조인들 담당 사건으로 곤욕
‘나쁜 변호사’ 프레임으로 후보 사퇴까지
잘못된 수사 관행 개선할 수 있는 길
‘변호인 조력’ 헌법에 보장된 권리
국민 인권 보장·기본권 보장 목표
특정 사건 변호 이유로 손가락질 안 돼

법조인들이 정계에 진출하면서, 변호사 시절 그가 어떤 사건들을 담당했었는지도 검증의 한 대상이 되고 있다. 과거 성폭행범을 변호하면서 무죄를 다투며 피해자에게 가해를 하였다는 이유로 공천받은 후보직을 사퇴하기도 하고, 몰래카메라 범을 변호했다는 이유로 후보 사퇴 요구를 받기도 한다. 흉악범 등을 변론했다고 ‘나쁜 변호사’ 프레임을 씌워, 상대 후보의 공격거리로 삼고, 국민의 대표가 될 자격이 없다는 식의 여론몰이가 팽배하다. 심지어 과거 맡았던 사건이 국민의 눈높이에 맞지 않았다고 변호사가 사과까지 하다니, 변호사의 역할에 대해 사뭇 의문이 든다. 성범죄나 살인죄 등 흉악범을 변호한 변호사는 국민의 대표가 될 자격이 없는 걸까.

7년 전 ‘인천 8살 초등생 유괴·살인’ 사건에서 변호를 맡았던 변호사는 “저도 사형해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자괴감이 든다”며 “변호인이 해줄 게 없다”고 말했고, 판사는 그런 말은 하지 말라며 변호인을 저지했었다. ‘진주 아파트 방화 살인사건’의 범인 안인득을 변호했던 변호사는 “저희 변호인도 이런 살인마를 변호하는 게 맞는 걸까 고민했다”면서 “저도 인간이다. 그러나 우리 법에는 징역형을 선고하는 사건에는 필요적 변호 사건이 있다. 변호사가 무조건 붙어야 한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해당 사건을 변호하면서 담당 변호사들이 느꼈을 고뇌는 십분 이해하나, 법정에서 피고인의 이익을 대변할 변호사가 한 위 발언들이 적절했는지에 대해서는 의문이다.

2016년 미국 대통령 선거 때의 일이다. 트럼프와 힐러리의 후보자 토론에서 트럼프는 여성과 아동의 인권을 위해 일하겠다던 힐러리가 12세 소녀를 강간한 강간범을 변호하고 가벼운 처벌을 받게 했다며 사퇴를 하라고 맹비난을 했다. 당시 힐러리는 판사로부터 국선 변호를 맡아달라는 연락을 받고 거절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고, 결국 변호인으로 해야 할 의무를 최선을 다해 수행했다. 힐러리는 법원에서 받아들여지지는 않았지만, 피해 어린이의 정신감정을 요청하기도 했고, 증거를 살펴보다 과학수사대가 실수로 폐기해 버린 강간의 결정적 증거인 속옷을 문제 삼았다. 결국 검사와 형량 협상에 합의하여 피고인은 가벼운 처벌을 받게 되었다. 당시 힐러리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최선을 다해서 내 고객을 변호해야 할 직업적 의무가 있다. 그리고 나는 그렇게 한 것뿐이다.”

정의를 외치며 힘들게 얻은 법 지식으로 누가 봐도 ‘나쁜 놈’을 변호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 때, 유명 배우 O.J. 심슨 사건이 떠오른다. 살인범으로 기소된 O.J.심슨을 변호해서 무죄를 끌어낸 변호사는 “재판에서 검찰은 많은 잘못을 저질렀고, 우리 변호인은 이를 지적했을 뿐입니다. 만약 우리들이 지적하지 않았다면, 검찰, 경찰은 잘못된 수사 관행을 계속했을 것이고 더 많은 사람들이 억울하게 유죄가 되었을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변호사가 최선을 다해 변호할 때 사법제도는 더욱 정의롭고 완벽해진다는 것이다.

혹자는 그래도 그런 사건을 변호해야 했느냐고 비난할지도 모르겠다. 변호사 윤리규약 제16조 제1항은 “변호사는 의뢰인이나 사건의 내용이 사회 일반으로부터 비난을 받는다는 이유만으로 수임을 거절하지 않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한 헌법 제12조에는 “누구든지 체포 또는 구속을 당한 때에는 즉시 변호인의 조력을 받을 권리를 가진다”고 정하고 있다. 누구나 자신이 저지른 범죄만큼 처벌을 받게 하고, 자신이 저지르지 않은 범죄까지 처벌받지 않도록 국민을 돕는 것이 변호사의 의무이자 사명이다. 특정한 사건을 변호하였다는 이유만으로 변호사가 사회적 지탄의 대상이 되도록 보도하는 것은, 결국 국민의 인권 침해 방지와 기본권 보장을 목표로 한 변호사 제도의 근간을 흔들 수 있다. 변호사가 사건 수임 여부를 결정하고 그 사건에서 어떤 변론을 펼칠지는 변호사가 결정할 수 있는 영역이다.

그러나 억울함을 호소하는 의뢰인에게 자백을 강요할 수는 없다. 다만, 의뢰인이 억울한 점이 있다면 수사 절차상의 미비와 증거의 적법성에 대해 법적 테두리 안에서 변호를 할 뿐이다. 그래야 수사 과정에서 적법 절차가 지켜지고, 법치국가가 올바로 설 수 있다. 자백 사건에서 피해자의 회복을 돕고, 더불어 피고인의 형량을 줄이는 것도 변호사의 역할이다. 과거는 그의 철학과 가치관을 엿볼 수 있기에, 변호사가 사건과 의뢰인을 대하는 태도 등 과거의 행보가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지, 그가 국민의 대표성을 가질 자격이 있는지 여러모로 살펴봐야 함에는 공감한다. 그러나 헌법상 보장된 변호사의 조력을 받을 권리에 따라 조력을 한 변호사에게 왜 변호를 하느냐고 화살을 향하는 관행은 멈춰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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